brunch

잘하는 것과 좋아하는 것 선택하기

그러기 전에 선택의 폭을 넓혀보자

by 돈냥이



주말농장을 시작한 첫 해에는 무난하게 상추 두 종류와 열무를 심었습니다. 아는 작물이 많지 않아서 익숙하고 잘 먹는 작물 중에서 골랐습니다. 모종을 심을 때에도 토마토와 오이, 호박 등 우리가 확실하게 먹는 작물만 심었었습니다.


그리고 다음 해에는 좀 과감하게 도전해서 다양한 쌈야채를 심었습니다. 맛이 쓰거나 질겨서 잘 사 먹지 않았던 야채들이었는데, 직접 길러먹으니 아주 싱싱하고 아삭하면서 쌉싸름한 맛이 일품이었습니다.


모종을 심을 때에도 종묘상에서 파는 작물을 살펴보고 토마토와 오이를 다양한 종류로 사서 길러보았고, 잘 사 먹지 않았던 가지도 길러보았습니다. 그리고 우리가 잘 키울 수 있는 종류와 잘 먹을 수 있는 작물의 목록이 하나씩 완성되어 갔습니다.



하나도 발아되지 않아 망한 줄 알았던 당근 2개가 배추 사이에서 자라났다





처음에는 우리가 뭘 잘 키울 수 있는지, 어떤 것을 잘 먹을지 알 수가 없었습니다. 비싼 야채보다는 육식 위주의 식단이었고 봄에 나물을 좀 먹는 것 외에 다양하게 식물성 재료를 먹는 식단이 아니었습니다. 하지만 부담이 적은 씨와 모종값에 용기를 얻어 과감히 시도해 본 결과, 다양한 작물을 섭취할 수 있었습니다.


중구난방으로 심어서 마구잡이로 키우던 것도, 점차 작물별로 구간이 나누어지고 햇볕이 골고루 닿을 수 있게 키와 면적을 고려해서 심을 수 있게 되었습니다. 당연히 수확량도 점차 늘게 되었고요.



좋아하고 잘 먹는 것만 시도했다면 마트에서 사는 것보다 싸게 먹거리를 얻는다는 이익밖에 없었을 겁니다. 하지만 처음 보는 채소도, 잘 안 먹는다 생각했던 작물도 키워보니 색다른 맛이 났고, 좋아하는 것이지만 키우는 정성에 비해 수확량이 미미하면 더 이상 키우지 않는 등 무엇을 키우는 게 가장 효율적인지에 대한 정보가 쌓였습니다.





좋아하거나 잘하는 것을 일찍 알고 그것에 특화된 인생을 일찍 시작해서 성공할 수 있다면 그게 가장 좋을 것입니다. 하지만 세상에는 정말 많은 일이 있고 꼭 한 가지 만을 해야 하는 것은 아닙니다. 나라는 밭에는 언제 먹어도 좋은 쌈야채 외에도 후식으로 먹을 토마토를 심을 수 있고 별로 안 좋아하는 가지를 심어볼 수도 있습니다. 직접 길러서 먹어보아도 별로라고 생각되면 다음 해에는 심지 않으면 그만입니다.


직접 해보지 않으면 알 수 없는 것도 있지만 안 해봐도 괜찮은 것들도 분명히 있습니다. 좋아하지만 직접 길러먹기에는 너무 비효율적이고 잘 기를 수 없다면 그냥 사 먹는 것이 더 나을 수도 있습니다. 중요한 것은 그런 선택의 과정에서 나에게 얼마나 많은 기회를 주었느냐는 것입니다. 무엇을 할지 고민하는 시간을 줄이고 다양한 시도를 시작해봅니다.


세상에 얼마나 많은 종류의 작물이 있는지, 지금까지 내가 잘 먹는 것 외에 더 좋아할 만한 것이 있는지 알기 위해 최대한 많은 선택지를 고려해야 하되 생각보다는 직접 움직여야 알 수 있습니다. 그리고 좋아하더라도 충분히 잘할 수 없다면 다른 대안을 선택하거나 아예 포기하는 용기도 필요합니다.


무엇을 남기고 무엇을 지속하느냐를 결정하는 것은 단발성이 아니라 항상 살펴보고 고려해야 하는 것입니다. 실패하더라도 아무것도 하지 못했던 겨울보다 더 큰 추위가 오지는 않을 것입니다.


keyword
작가의 이전글시작 그리고 계속 준비 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