채소들을 자라서 이제 쌈을 좀 싸 먹을만한 크기가 되면 매년 봄마다 찾아오는 한파가 들이닥칩니다. 씨를 뿌렸다면 그나마 제법 살아남는데 모종은 갑자기 추워진 날씨를 견디지 못하고 얼어서 말라버립니다.
논에 물을 충분히 댈 수 있을 정도로 봄비가 내려주면 밭의 흙도 충분히 적셔주어서 따로 물을 주지 않아도 작물이 잘 자랍니다. 하지만 가뭄이라 할 정도로 공기가 마르면 아무리 물을 길어 날러도 흙이 금세 푸석푸석 말라 약한 작물은 죽어버리고 맙니다
그래서 모종을 심고 난 뒤 한파에 대비해 작게 비닐하우스를 만들어 씌워주시는 분들도 있고, 흙의 수분을 적당히 보존할 수 있도록 비닐로 멀칭을 하시는 분들도 있습니다. 비닐은 나중에 쓰레기가 되기 때문에 되도록 사용을 자제하는 저 같은 사람은 열심히 물을 주고 씨는 조금 더 많이 뿌려야 합니다.
정말 운이 좋은 어떤 해에는 주중에는 비가 너무 강하지 않으면서 충분히 내려주고 봄 내내 온화했던 덕분에 별 신경을 쓰지 않았는데도 수확량이 엄청 늘었었습니다. 주말 농장을 하며 쌓은 노하우에 날씨까지 도와주니 대풍년이었죠.
정말 날씨가 도와줬던 어느 해 봄, 마트 야채코너가 부럽지 않았던
이렇게 매년 날씨가 도와준다면 참 좋겠지만 안 그런 경우가 많습니다. 특히 봄에 날씨가 좋았다면 여름에 강한 태풍이 찾아와 여름 농사를 망쳐 놓는 등 계속해서 좋은 경우는 없었습니다.
비가 너무 안 와서, 비가 너무 많이 와서, 바람이 너무 세게 불어서, 흐린 날이 많아서, 해가 너무 뜨거워서 밭은 엉망이 되어 일은 많이 하는데 수확은 별로 없는 때도 많았습니다. 그런 때 날씨가 안 도와준다며 농사를 포기하는 사람들이 생겨 봄이 지나고 여름이 되면 잡초만 무성한 밭들이 생깁니다.
날씨가 어떻든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정해져 있습니다. 작물이 마르지 않게 적당히 물을 주고 배수가 잘 되게 고랑을 파 줍니다. 강한 바람에 쓰러지지 않게 지지대를 세워주고 뿌리가 잘 고정되게 흙을 북돋아 줍니다. 날씨가 좋으면 기대 이상의 수확이 생기는 것이고 날씨가 안 좋으면 대비를 하고 사후처리를 하면 됩니다.
수확이 그리 많지 않고 일이 많은 봄은 힘들지만 분명 겨울보다는 희망이 있습니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보이고 날씨에 어떻게 대응해야 하는지 방법을 알게 되지요. 그렇게 살뜰히 밭을 살피다 보면 초여름에 들어설 무렵 갑자기, 쑤욱 자라는 열무와 상추를 보면 이제 시작이라는 느낌이 올 것입니다.
겨울이 끝난 것 같은데도 여전히 손에 쥐어지는 것이 아무것도 없다고 해서 노력하는 것을 포기해서는 안됩니다. 그게 봄이라는 계절이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