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은 참 짧습니다. 봄 옷을 입는 시간도 짧지만 농장에서 일하다 보면 겨울에서 여름으로 바로 넘어가는 게 아닌 게 하는 생각이 들곤 합니다. 농장의 여름은 열무를 두 번 수확하면 시작됩니다. 첫 번째 열무는 4주 만에 수확해도 작고 야리야리한데 두 번째 열무는 3주 만에 무청만큼이나 크고 아삭아삭해집니다. 그리고 여름이 시작됩니다.
봄에는 점심을 먹고 농장에 가도 여유롭습니다. 날이 뜨겁지 않아 오히려 햇볕을 쬔다는 기분으로 일을 즐길 수 있습니다. 하지만 여름 한낮의 농장은 그야말로 불가마 속입니다. 때문에 새벽, 해가 뜨기 전에 집을 나섭니다. 아직 어스름이 남아 있을 때 밭으로 가서 흙을 먼저 살핍니다. 장마가 지면 과습을 걱정해야 하지만 언젠가의 마른장마처럼 여름임에도 흙이 말라있으면 물을 흠뻑 주어야 합니다. 온도가 높으므로 흙이 마르는 속도도 빠릅니다.
물을 줄 때 잎에 닿지 않게 흙에만 주는 것도 중요합니다. 작물의 잎에 물방울이 남아있으면 한낮의 태양열에 타버립니다.
온도가 올라가고 습도도 올라가는 장마철이 되면 진흙탕 속을 걸어 밭으로 가는 것 자체가 여간 힘든 일이 아닙니다. 습도만 높고 비가 오지 않으면 물도 줘야 하고 잡초도 뽑아야 합니다. 작물이 빨리 자라는 것만큼 잡초도 많이 빨리 자랍니다. 일을 시작한 지 얼마 되지도 않았는데 땀에 옷이 흠뻑 젖습니다. 늦잠을 자 뙤약볕 아래에서 일하게 되면 모자를 쓰고 선크림을 발라도 피부가 따갑습니다.
비가 오는 날은 우산을 쓰거나 우비를 입고 빠르게 급한 일만 합니다. 잡초는 무시하고 열매를 최대한 수확합니다. 자라는 속도가 빨라 남겨놓으면 웃자랄 것 같은 조금 작은 작물도 수확을 해야 합니다.
달고 포슬포슬한 하지감자
어느 순간 갑자기 새로운 일들을 하게 되고 바뀐 환경에 적응해야 되는 일들이 생기기 시작합니다. 일은 하는데 손에 들어오는 건 별로 없는 시기를 지나 일도 많고 수확도 많은 계절이 되었습니다. 지금 무엇을 하고 있나 잠시 멈춰서 생각해야 알 수 있을 정도로 바빠집니다. 일이 없어서 고민했던 시간이 무색하게 지금은 제발 쉴 시간이 있었으면 할 정도입니다.
신경 써야 할 것도 많고 배워야 할 것도 많고 정리해야 할 것도 많아 체력이 떨어지는 게 느껴질 겁니다. 이제 체력 관리도 해야 할 것 같고 할 일들을 정리해서 체계적으로 해야겠다는 생각도 들 것입니다. 언제 어떤 방식으로 일을 해야 효율적인지를 생각하지 않으면 해야 하는 일을 다 해내지 못할 만큼 일이 많아집니다. 어떨 때는 급한 불을 끄는데 집중하고 나중에 해도 괜찮은 일은 일단 미루어야 하기도 합니다.
일을 마치고 시원하게 샤워를 한 뒤 휴식을 취할 때면, 지난 계절이 생각납니다. 그리고는 봄에 일만 하고 수확은 별로 없어서 실망했던 기억이 떠오르며 피식하고 웃게 됩니다. 그때도 일을 많이 했다 생각했는데 지금이랑 비교하면 새발의 피였다 생각하면서 말입니다.
일이 많아진 만큼 일을 하는 생활에도 점점 적응을 해 갑니다. 조금 어른이 된 듯한 기분도 듭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