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rt.1 그림 팔아요. 5, 7, 9 만원. 골라 골라
그림 작가로 살면서 어떤 때에 가장 보람을 느끼냐면, 내 그림을 보고 그림 앞에서 시간을 머금을 때를 목격한 순간이다.
내가 느낀 감정과 생각을 그림에 담았고, 그림 언어를 읽고 잠시 멈춰서 그림을 느끼는 사람을 만나는 경험은 일반적이지 않고, 빈번하지도 아니하다. 그림 작가의 작품을 소장해 본 적이 있는가? 솔직히 나는 원화 2점을 소장하고 있다. 물론 내 그림 말고 다른 작가의 작품을 구매한 것으로.
하나는 김다희 작가의 '물성의 변의' 시리즈, 다른 하나는 조정은 작가의 '꽃' 시리즈.
전공자임에도 그림을 소장하는 경험은 쉽지 않다. 이유는 짐작하겠지만 가격 때문이다.
첫 개인전을 열었던 2016년. 첫 전시의 손님은 대부분 지인들이다. 미술계 첫발을 축하해주기 위해 귀한 시간을 내주신 모두에게 감사했고,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었으면 하는 마음에 작품 구입문의를 주신 분이 계셨다. 25살의 나는 신인답지 않게, 수줍음 없이 작품 가격을 보여 드렸다. 1호당 8만 원.
졸업전시에서 120호, 60호 그림을 판매했고, 여럿 공모전에서 좋은 성과를 냈기에, 원화가 비싸다는 인식은 보이지 않았고, 내 가치에만 집중하던 때였다.
그림을 그리는 작가에게 중요한 게 무엇인지 지금과는 달랐던 그때.
그리고 이제야, 원화의 가격. 예술. 예술의 역할을 다시금 정리하였다.
갤러리가 싫었다. 잘 팔리지도 않는 그림에 신인이라고 70% 수수료 이야기를 하는 그들이나, 전시 대관료 파일을 보고 '0'이 몇 개인지 세던 기억도 싫었다. 작업실에서 숨 쉬며 붓을 움직이는 것 빼고 예술로 살아가기에는 모든 순간이 돈이었다. 그리고 나는 낭만에 살던 자칭 '낭만 거지'였다.
그러던 내가 어느 순간 안 거지. 자본주의 사회에서 돈을 빼놓고 고상하게 예술을 논하기엔 밥때마다 배가 울리는 내 현실을.
그래서? 무슨 말이 하고 싶냐면,
나는 이런 자본주의 속 미술계에 빅엿을 먹이고 싶다.
브런치에도 작가의 서랍에 글이 많으면 뭐하는가. 발행을 해야지.
나도 작품 보관함에서 원화를 꺼냈다. 그리고 이 원화들을 팔기로 했다.
작가노트랍시고, 이해하기 힘든 술 취한 언어로 내 작품을 이야기하고 싶지 않다.
나는 30대 초반 미술 작가로, '까미노 여행 스케치'라는 책의 저자이다. 책에 수록된 원화 100여 점을 판매한다. 어포더블(affordable) 한 가격으로 5, 7, 9 만원.
자세한 내용은 홈페이지에서 확인하시길.
나는 예술이 더 이상 재테크 혹은 돈 많은 사람들의 고상한 취미생활이 되지 않기를 바란다. 위로받은 그림이나 당신의 열정, 내면을 비추는 그림 있다면 데려가시길.
그림 업로드는 3월 중으로 홈페이지에 올라가나, 작가는 요즘 매우 바쁘다. 몸이 하나라 회사처럼 딱딱 뭔가 올릴 수가 없다. 원화 전시는 수원 독립 책방 <그런 의미에서 책방>에서 3월 9일부터 4월 4일까지 전시된다.
원하는 그림은 전국 서점 어디서든 판매하는 <까미노 여행 스케치>를 구매하여 "몇 페이지 이 그림 구매 가능한가요?"라고 메일을 보내면 된다.
그림은 A, B, C 형으로 가격이 형성되어 있는데 원화를 5, 7, 9만 원에 판매하오니,
가격보다는 원하는 그림을 고르는 것에 집중하시길.
(나는 미술계의 비트코인)
계속해서 작업을 이어갈 테니 이 그림들이 나중에 얼마가 될지는 나도 모르겠지만, 고흐처럼 죽고 나서 몸값이 뛰는 일은 없었으면 한다.
원화는 걸려있어야 한다. 그림을 좋아하는 사람의 수집품이기보단, 예술로서 기능해야 한다.
삶에 지친 순간 생각을 환기시켜주고, 꺼져가던 열정을 다시 일으키는... 이런 게 예술의 기능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