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 이상해

키덜트 소비자와 현직 마케터의 입장 사이에서 도파밍 트렌드를 보다

by 정민

참 이상해.

출근길에서 그 애랑 자꾸 눈이 마주쳐.

오늘도 지하철에 앉아있는데

바로 맞은편에서 그 애를 봤지 뭐야.


가만히 있어도 모든 사람의 시선을 독차지하는 너.

눈꼬리는 살짝 올라갔지만

장난기가 넘쳐 귀여운 큰 눈,

앙증맞은 손,

비현실적으로 화려한 머리 색깔,


이빨은 아홉 개.


요놈 봐라. 이 악마 같은 놈.

넌 대놓고 못된 아이일 것 같아.


근데 그거 알지.

사실 세상은 영웅보다 빌런을 더 사랑하는 거.

그러니 조롱하는 듯한 표정을 가진 널, 갖고 싶어.


너는 뭐니? 토끼니? 도깨비니?

아니면 눈이 번뜩이는 나의 캐릭터 버전이니?

네 이놈.

가방에만 매달려있지 말고,

나만큼 거대해져서 손 잡고 함께 놀아줘.

북실북실한 너에게 안겨

오색찬란하게 빛나는 털을 쓰다듬으며 위로받을 거야.

사람들은 너를 자꾸 입에 올리고

너는 자꾸 내 눈에 띄어.

난 무언가에 홀린 듯 팝마트에 가서 너를 찾아.

당근에서도 널 검색해.

너는 빨갛고 노랗고 차콜 민트 연보라색까지 다양해.


자, 이제 사냥을 시작하지.

난 오늘 밤 너를 데려오려고 여기저기 채팅을 걸어.

왜 프리미엄까지 붙여서 너를 사냐고?

그야 한 번에 내가 원하는 색으로 가지고 싶으니까.

딱 한 번에, 정확하게.


라부부 하이라이트 행운이.

연보라색과 하늘색 영롱한 털.

아주 딱 내 꺼다 헿.


어, 근데 너를 보니 네 친구를 잔뜩 만들어주고 싶다.

기분도 안 좋은데 시발..비용 좀 쓰지 뭐.

망했다.




나는 30대 키덜트(Kid+Adult)다. 귀여운 아이들을 보면 집에 자꾸 데려온다. 유니버셜 스튜디오에서만 구할 수 있는 미니언즈 팝콘통, 잔망 루피 피규어, 드래곤 길들이기의 캐릭터 투슬리스, 그리고 라부부. 라부부가 뭐냐고?

설명해주자면, 라부부는 토끼를 연상시키는 긴 귀와 큰 눈, 뾰족하고 앙증맞은 치아가 특징적인 캐릭터로, 북유럽 숲의 엘프를 모티브로 했다고 한다. 우리나라에서는 라부부를 코스프레했던 블랙핑크 멤버 리사 덕분에 유명세를 타기 시작했다.

라부부는 앙증 맞은 표정으로 앉아있는 'Have a Seat'시리즈부터 알록달록한 그라데이션이 들어간 'Big into Energy' 시리즈까지 다양하다. 기본적으로는 가챠(뽑기)기반인데, 가끔 신의 가호가 깃들면 이빨이 무지개색으로 빛나는 희귀한 ‘시크릿' 제품이 나오기도 한다. 이 아이는 당근에서 몇 십만원대에 거래되기도 했었다.


이렇게 귀여움에 사로잡혀 사냥을 떠나는 나, 문득 생각했다. 이건 나만의 얘기일까? ‘오타쿠'라는 부정적인 이미지는 사라진 지 꽤 오래, 이제 덕질도 개인의 개성과 힙한 취향으로 여겨지는 시대. 그래서 나도 키덜트라는 정체성을 굳이 숨기지는 않는다. 문제는 가끔 미취학 아동 애기들을 마주칠 때다. 지난 달, 오랜만에 만난 사촌오빠의 아들 이안이는 라부부 달콤달콤이를 유치원 가방에 매달고 있었다. 이안이와 라부부 토크를 신나게 하다가 어느 순간 현타가 왔다. 나 혹시 나이값 못 하는 건가? 머쓱...

너는 왜 모으니?

어 그러고 보니 나는 왜 모으니?

귀여운 거 보면 기분이 조쿠든요..

여느 트렌드 분석가는 광적인 수집을 불안한 세대의 ‘감정적 치유’ 방법이라 말한 바 있다. 불확실한 세상과 달리 확실하게 손에 쥘 수 있는 재미와 귀여움이 대세라며. 이처럼 작은 충동에서 시작된 욕망은 이제 하나의 소비 패턴이 되었다.

비슷한 맥락에서 요즘 지하철역에, 길거리 곳곳에, 키링과 피규어를 뽑을 수 있는 가챠샵이 많이 보인다. ‘랜덤’의 문화화. 사람들은 카페에서 친구가 마실 음료를 랜덤으로 주문해주고, 랜덤 데스티네이션으로 떠나는 여행 패키지까지 세상에 나온 마당이다. 뭐가 나올지 모르는 데에서 오는 도파민, 짜릿한 쾌락을 원하는 마음. 바꿔서 말하면, 우리들의 인생이 그만큼 노잼인 걸지도 모르겠다.



풍선껌처럼 쫙쫙 늘어납니다~~~

피부에 딱! 붙어서 블랙헤드를 쏙! 쏙!



이렇게 귀여움과 자극에 이끌려 소비하는 건 비단 키덜트 문화에만 국한된 게 아니다. 모든 산업에서 도파민 경쟁이 판친다. 최근에 풍선껌처럼 늘어나는 어느 핑크색 폼 클렌저의 광고 영상을 접한 적 있다. 제품명은 에이프릴스킨 TXA 99 딥 클렌저. 쫙~ 달라붙어 블랙•화이트헤드를 흡착한다는 이 제품은, 껌 같이 쫀득한 제형으로 피부에 밀착된 후 쭉쭉 늘어나 떼어진다. 영상에서는 노폐물을 빨아들이는 듯한 그 과정을 극적인 퍼포먼스로 보여준다. 이런 신기한 콘텐츠는 소비자의 눈과 마음을 먼저 사로잡고 구매 욕구를 자극한다. 이 영상을 보다가 신기해서 나 역시 지갑을 열 뻔했으니.

유통 환경이 많이 변했다. 예전엔 필요하면 검색해서 비교해보고 샀다면, 요즘은 그냥 숏폼 영상 보다가 신기하다 싶으면 바로 결제. 그래서인지 특정 ‘브랜드’에 충성하는 소비자들이 사라지고, 그 때 그 때 눈을 사로잡는 ‘자극적인 제품’이 더 마음을 끈다.



혹시.. 얼굴이 새까맣게 탄 헬로 키티를 아십니까?

당신이 알고 있는 하얀 키티 말고요.



기업들도 열심히 별짓 다 한다. 예를 들어 올리브영. 어느 날은 헬로키티가 태닝해서 돌아다니고, 어느 날은 틴트가 자물쇠 모양으로 나와있다. 하나의 브랜드만 주력으로 키우는 게 아니라, 다양한 포트폴리오에 트렌드를 적용하고 보완한다. 올 여름에는 산리오 IP와 협업해 수 십개의 입점 브랜드에 ‘태닝’ 산리오 캐릭터를 적용한 바 있다. 길거리에서도 갈색 헬로키티 키링이 눈에 자주 띄었고, 별로 뷰티에 관심이 없던 사람들도 이 콜라보레이션을 구경하러 올리브영에 방문했다. 그중 어뮤즈AMUSE의 태닝 헬로 키티 캐리어 세트는 키티가 훌라춤을 추며 여행을 떠나는 모습을 하고 있어 단연 귀여웠다. 이처럼 품질력으로만 승부하던 과거 정석을 벗어나, 새로운 선택지를 계속 내는 것이 또 다른 답이 되어가고 있다. 그래서 더 자극적인 모양새를 가진 제품들이 쏟아진다. 쏟아진다..쏟아진다....

사실 필자는 소비자로서 이런 새로운 아이템들에 열광하지만, 마케팅 직무 종사자로서는 굉장한 혼란을 겪고 있기도 하다. 필자가 몸 담고 있는 브랜드에서도 일관되게 깊은 몰입을 주기보다, 얄팍한 새로움을 계속해서 생산하는 노선을 택했다. 문제는 이러한 속도전에 가끔 의문이 든다는 점이다. 무언가가 계속 새로 나오는데 10년 후에도 이 속도가 지속 가능할까? 브랜드의 정체성은 이제 다 ‘자극’이 되는 걸까?



이 끝없는 흐름 속에서 나는 도대체 어디쯤에 있는 걸까?

이거 나만 정신 없는거야?


마라탕이 떴다가 탕후루가 떴다가 요아정이 떴다가, 이젠 말차의 시대!

올리고 올리고 또 올리고~!!

쫀득한 쿠키를 아이스 아메리카노에 토핑으로 올리고!

노잼인 건 참을 수 없어요~ 귀여움을 주세요~!

누가 뜰지 모르니 다 띄워보자! 어이 거기, 일단 제품부터 내고 시장 반응 좀 봐.

망하면 쥐도 새도 모르게 내리면 되지.

꽁꽁 얼어붙은 한!강! 위로 고양이가 걸어다닙니다~

나를 좋은 기분으로 만들어줘!

부정적인 감정은 불필요하고 무가치해요~



귀여움과 재미라는 포장지 안에는 도파민, 위로, 허전함, 그리고 다시 욕망이 담겨 있다.

우리는 이 끝없는 소비의 회로 속에서 무엇을 얻는 걸까? 어릴 때부터 이런 자극에 둘러싸였던 친구들은 어떤 어른으로 자랄까?



나는 여전히 모르겠다.


자극이 일상이 된 시대, 우리는 무뎌지지 않기 위해 더 자극적인 것을 찾는다. 지금 이 시대가 우리에게 줄 수 있는 유일한 확실함은, 어쩌면 ‘다음 자극’ 뿐일지도 모르겠다. 자극은 우리를 위로하기도 하지만, 동시에 마비시키기도 한다.

뭐, 오늘 밤도 나는 또 라부부의 악마 같은 귀여움에 홀려 답을 못 내린 채 잠들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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