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들은 놀라곤 한다. 내가 게임 중독이었고, EDM 페스티벌과 클럽에 즐겨 갔다고 하면. 소싯적 범죄에 가까운 장난을 매일 같이 치고 다녔다고 하면. 그리고 이 모든 서사의 중심엔 데미안처럼 나를 매혹적인 악의 세계로 이끌었던 7살의 여자아이가 있다.
가까이 산다는 것만으로도 친한 친구가 될 수 있었던 7살에, 우리는 만났다. 누구와도 격 없이 지낼 수 있던 나이였기에, 그 시작이 어땠는지 기억은 잘 나지 않지만, 우리는 이미 자연스럽게 친구가 되어있었다.
사람들을 만나면 자주 묻는 질문이 있다. 어릴 때 했던 가장 심한 장난이 뭐냐고. 떠오르는 사건이 없는지 그들은 쉽게 대답하지 못한다. 나는 그녀와 함께 동네에 주차된 자동차들의 엠블럼과 알파벳을 뜯어내 전리품처럼 수집했다. 그래서 우리 동네 수많은 SONATA들은 ONATA로 다시 태어났다. 운전자가 된 지금, 똑같이 되돌려 받는다고 생각하면 하늘이 무너질 형벌이다. 그런 못된 장난을 쳤기에, 드라마 소년심판을 볼 때 가슴이 벌렁거렸다. 블랙박스가 없던 시절이었기에, 그리고 김혜수 같은 냉철한 심판자가 없었기에 천만 다행이었다고 생각했다.
그렇게 우리는 수많은 것들을 파괴하고 다녔다. 우린 RPG의 원조라고 할 만한 모든 게임을 초등학교 때 마스터했다. 매일 던전에 들어가 몬스터를 때려잡았고, 서버에서 아이디가 맨 위에 뜨는 탑 랭커의 영광을 누렸다. 심지어 우리는 우리 자신도 파괴했다. 매일 같이 놀이터 미끄럼틀 위에서 ‘탈출’을 하며 놀다가 턱이 깨지기도, 다리가 부러지기도 했으니까. 그리고 입고 있던 청바지가 다 뚫릴 정도로 롤러블레이드를 자주 탔고, 자주 넘어졌고, 자주 피를 흘렸다.
수많은 파괴 끝에 질린 우리는 창조적인 태스크를 수행하기도 했다. 만화방에 가서 온갖 순정만화와 판타지 액션물들을 봤다. 빈 집에서 불을 끄고 귀신 영화를 함께 보기도 했고, 세간의 야한 인터넷 소설로 허락되지 않은 세계를 탐험하기도 했다. 가상 세계에서 카페, 동물원, 놀이공원을 차리고, 공주를 만들어내기도 했다. 이러한 경험들로부터 구축된 상상의 세계 속에서 우린 그 무엇이든 될 수 있었다.
함께 발을 들인 악의 세계에 균열이 생기기 시작한 것은 중학교에 올라가면서이다. 그 이유는 내가 변했기 때문이다. 함께 무언가를 계속 파괴하고 창조하기를 반복하다가, 문득 조금 더 높은 레벨로 나아가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공부를 열심히 하고 싶었고 자아실현도 하고 싶었다. 매사에 욕심이 있었던 나는 공부하는 시간을 최대한 확보하려 했다. 그래서 시험기간에는 고작 하교길의 수다 떠는 시간을 아끼자고, 그녀를 기다리지 않고 혼자 집에 와버렸다.
그렇게 우리의 삶은 멀어지기 시작한다. 유년 시절 공통의 추억이라는 같은 뿌리에서 나왔지만, 우리의 가지가 갈라지기 시작한 이후로는 더 이상 닿지 못했다. 그녀는 중학교 3학년 때 미국으로 유학을 갔고 나는 외고에 진학했다. 그 후 소식이 궁금해 SNS를 통해 염탐하곤 했다. 그녀는 그녀답게, 고등학교 때 이미 진한 연애를 하고 있었다. 남자친구가 바람을 펴서 헤어졌다며 화를 내기도 했고, 친구와 절교한 후의 복잡미묘한 심정을 업로드하기도 했다. 내가 20대가 되어서야 겪은 일들을 이미 미성년의 시기에 겪은 것이다. 분명 나보다 더 풍부한 감정을 느끼며 삶에 대해서도 더 빨리 알아갔을 것이다.
반면, 나는 성실한 학습자이자 제도에 순응하는 사회인으로 거듭났다. 상위권 대학 졸업에 대기업 재직중이라는 꼬리표로 요약되는 착실함. 그렇게 열심히 살아왔건만, 정녕 내가 되고 싶었던 더 나은 사람이 되었는지는 잘 모르겠다. 오히려 미래를 생각하지 않고 현재의 즐거움에만 몰두했던 그 시절이 그립기에.
가끔 이런 생각을 하곤 한다. 그 시절 그녀와 더 많은 시간을 보냈더라면, 내 세계는 지금보다 더 넓어지지 않았을까. 남다른 나만의 길을 갈 수도 있지 않았을까. 그래서 지금보다 더 매력적인 사람이 되지 않았을까. 친구를 함부로 재단했던 나는 오히려 더 좁은 세계 속에서 쳇바퀴를 돌리며 살고 있다. 그리고 가끔은 크게 일탈해봤던 사람들이 사회에서 더 잘 나가는 걸 목격하며 이상한 기분에 사로잡히기도 한다.
어릴 적 내 세계의 반쪽이었던 아이. 정체성을 형성하는 데에 적지 않은 영향을 준 친구. 그런 아이와 지금은 만나지도, 연락하지도 않는다는 사실은 아이러니하다. 그 이후로도 열차에 오르고 내리는 사람들처럼 여러 우정이 나의 삶에 다녀갔지만, 아직까지도 그녀는 마음에 많이 걸린다. 엄마를 통해 소식을 종종 전해듣는다. 하지만 지금의 그녀는 낯설기만 하다.
그녀와 함께 했던 시절의 추억들은 아직까지도 나에게 적지 않은 영향을 미친다. 지금도 나는 밤새 웹툰을 보기도 하며, 대작 게임이 나오면 어린 아이처럼 설렌다. 포켓몬고가 출시되었을 때 밤새 포켓몬을 잡으러 다녔고, 배틀그라운드가 출시되었을 때는 수없이 많은 낙하산에 매달렸고, 오딘이 나왔을 때는 쉽지 않은 보스몹을 잡기 위해 PC방에 등판하기도 했다. 그 친구가 아니었다면 경험하지 못했을 세계 속에 가끔 들어가 발자국을 남기며 그리움에 사로잡히는 것이었다.
어른이 되어가는 길목에 우리가 서있다. 그 갈림길에서 그녀는 나에게 손 흔들며 작별인사를 건넨다. 그걸 끝으로, 때묻지 않은 나의 해사한 모습도 저만치 달아난다. 올바른 삶의 모습은 정해져있지 않고 똑같을 수도 없다는 것을 깨달은 지금, 다시 그 길목에 서서 그녀를 바라본다. 친구를 멀리했던 대신 동경했던 모든 것들은 지금은 하찮은 것이 되어버렸다. 그래서 유년 시절을 가끔 꺼내먹으며 꽁꽁 숨겨놨던 마음과 마주한다. 참을 수 없는 존재의 무거움이 느껴질 때마다 가벼운 악동의 세계로 건너갔다 오는 것이었다. 이런 내가 진정 그리워하는 것은 함께 했던 친구일까, 아니면 순수했던 시절의 동심일까. 놀이터를 지나칠 때마다 그녀의 소식을 궁금해한다. 개구진 아이들을 마주칠 때마다 그 시절의 우리를 그린다. 7살의 그녀는 다시 한 번 나를, 숨이 트이는 곳으로 데려가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