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편 ‘악동’에서 이어집니다.
무사히 드림 컴퍼니에 안착한 후, 성실하게 살아왔던 정민은 모든 게 시시해졌다. 4학년 1학기에 교환학생을 다녀온 이후, 혈관을 타고 흐르는 악동의 피가 다시 치솟기 시작한 것이다. 대학 3학년까지 독서실, 도서관에 살며 일탈을 참아왔던 그녀였다. 학점은 언제나 4.0을 넘겼다. 하지만 한국과 달리, 교환학생으로 갔던 시드니에서는 학생들이 오지게 공부를 안 했기에 좀만 해도 Pass는 따놓은 당상이었다. 날씨가 좋고 바다가 예쁜 곳에서는 사람들이 저절로 여유로워진다는데. 하교 후엔 바로 본다이 비치에 가서 발라당 발라당 눕는 룸메들을 보며 생각했다. 이것은 개.이.득. 그래서 그녀 역시 공부와는 담을 쌓고, 캥거루 코알라 친구들과 함께 동물적 삶을 살기 시작한다. 물 만난 고기처럼 바다에서는 스쿠버다이빙을, 하늘에서는 날다람쥐처럼 스카이다이빙을 했고, 구미호 같이 눈을 번뜩이며 밤을 즐겼다.
내면의 흥이 폭발해 놀러 다니던 중 자연스럽게 일렉트로닉 댄스 뮤직에 관심이 생겼고, 여러 디제이의 음악들을 찾아봤다. EDM이라고 다 같은 음악이 아니었다. 트로피컬 하우스에는 캘리포니아의 해변이 연상되는 청량함이 있었고, 딥하우스는 어두우면서 서정적인 감정선이 느껴졌다. 기승전결 흐름으로 빌드업을 하는 프로그레시브 하우스도, 흥청망청 시끄럽기만 한 빅룸하우스도 있었다. 한국에 돌아와서도 여러 디제이를 디깅하며 공부한 결과, EDM의 세부 장르를 구분할 수 있게 되었다. 일레니움, 갈란티스, 마틴 개릭스, 시갈라, 조나스 블루, 디미트리 베가스, 마시멜로 등 좋아하는 디제이도 여럿 생겼다. ‘일렉 좀 들을 줄 아는 여자’라는 작고 귀여운 일렉 부심은 25살 신입사원 정민을 클럽으로 이끌었다.
한국의 클럽은 시드니와는 달랐다. 호주 사람들은 노래를 듣고 춤을 추는 데에 제 1의 목적이 있는 느낌이었지만, 한국에서는 그보다는 잿밥에 더 관심 있는 사람들이 많았다. 노래도 꽤나 별로였는데, 가장 크고 유명하다는 이태원 라운지 바에서 틀어주는 노래는 너무나 올드해서 참을 수가 없었다. 하지만 그곳에는 평소 주변에서 눈 씻고 찾아봐도 만날 수 없는 사람들이 많아, 사람 구경하는 데에 꽤나 재미를 붙이게 되었다. 두리번 두리번하며 예쁜 이성을 찾는 미어캣 형, 팔 전체가 용이나 식물 타투로 도배된 팔토시 형, 자기 잘생기고 몸 좋다는 걸 너무나 잘 알고 있는 올테면 와봐라 형, 가슴을 영혼까지 끌어 모은 영끌녀, 청바지 뒷태가 너무 찢어져서 엉덩이가 다 들여다보이는 엉찢녀 등. 여러 유형들을 보고, 대화를 섞어본 결과, 이들 중 진지하게 누굴 만나러 온 사람은 아무도 없다는 걸 깨달았다. 아~그냥 이빨이나 털다 가자. 깃털처럼 가볍게 입을 놀리는 그들에게 정민도 참을 수 없는 가벼움을 선사했다.
정민: 무슨 일 해요?
남1: 저희는 레지던트에요.
정민: 어머 그러세요~? 저희도 레지던트에요~ 호호호호호
남1: 하하하하하
우리도 레지던트라고 하면, 마치 보이스피싱인 것을 걸린 ‘검찰청’인 마냥 당황해 하는 그들을 보는 게 재미있었다. 말하자면 누가 더 바보같이 구는지 대결하는 듯 했다. 그런데 같이 놀던 한나는 더 강적이었다.
남2 : 저희랑 같이 노실래요?
한나: 아뇨. 괜찮아요
남2 : 왜요~
한나: 얼굴이 같이 놀기 싫게 생겼어요
한나는 너무 솔직해서 같이 있던 사람을 화들짝 놀라게 했다. 한 번은 강철 체력의 그녀와 밤을 새서 놀고 정민의 집에서 재운 적이 있는데, 아침 8시가 되니 좀비처럼 일어나 샤워하고 조조영화를 보러 가는 것이었다. 정민의 엄마는 재미있다고 좋아했고, 언니는 쟤 뭐하는 애야..? 하고 물었다. 사족이지만, 그녀는 그 직후 유흥 생활을 모두 청산하고 지금은 정민과 2주에 한 번씩 독서모임을 하고 있다고 한다.
한 번은 한나를 따라 뭣도 모르고 나이트에 간 적도 있다. 들어선 순간 갑자기 웨이터들이 정민의 팔을 끌고 요리조리 다니기 시작했는데 이게 바로 부킹이라 했다. 합석하고 싶은 사람을 자기가 고르는 게 아니라 끌려다니며 웨이터의 중매(?)에 따라 앉아야 한다는 사실. 여기서 역설적으로 인간의 자유의지가 얼마나 중요한 건지 알 수 있었다. 또 자유연애가 아닌 정략결혼을 당했던 과거 사람들의 고충도 체감할 수 있었다. 하지만 반대로 생각해보면 부익부 빈익빈 정글에서 누구의 선택도 받을 수 없는 사람들은 오히려 이득인 곳이겠구나. 몇 년 전 <결혼 상대는 추첨으로>라는 소설을 재미있게 읽었는데, 그 책에서도 모든 비혼 남녀를 대상으로 국가가 강제적 맞선을 시행해 결혼시킨다. 이 때 살면서 이성과 데이트를 단 한 번도 해보지 못한 사람들은 오히려 이 법에 우호적이었던 점이 기억났다. 아무튼. 의식의 흐름은 그만하고... 여기는 잘못 들어왔다. 나가자.
90년대와 00년대 노래들이 나오는 감성주점에 몇 번 가보기도 했다. 밤과음악사이, 일명 '밤사'에서는 소찬휘의 Tears, 듀스의 여름 안에서처럼 누구나 아는 레트로풍 노래들이 나왔고, 분위기 전환이 필요한 순간엔 동방신기의 미로틱 같이 섹시한 노래를 틀어주기도 했다. 감성주점에서는 정말 신기한 경험을 할 수 있었는데, 이는 바로 '한국인이 하나되는' 경험이다. 동성, 이성 할 것 없이 사람들과 떼창하고 안무를 따라 추고 나면 인류애가 샘솟았다. 그로 인해 잠시나마 인간의 본원적 외로움까지 잊을 수 있었다. 그곳에서 마주친 사람들 중 아직까지도 기억에 남는 건 노래가 바뀔 때마다 모든 노래의 안무를 처음부터 끝까지 완벽하게 소화하는 남자 듀오였다. 아 저 사람들은 정말 춤을 즐기러 왔구나. 멋지다 리스펙! 그렇게 넋을 잃고 그들을 구경하던 중 회사 사람을 발견했다. @$#*%!# 그 순간 아버지를 만난 것처럼 가슴이 철렁해 놀 기운이 다 사라졌다고 한다.
여기까지. 그래서 지금은 그녀의 클럽 생활이 어떻게 되었는지 궁금하다고? 결론부터 말하면, 평생의 놀 기운을 25살 때 다 써 지금은 클럽에 다닐 체력도, 의욕도 없다. 그 시절, 아이러니하게도 재미있게 놀수록 다음날 아침 공허함과 외로움은 더 커져있었다. 스스로 내면을 채우는 게 아니라 외부의 쾌락과 자극에만 집중하며 시간을 보냈기에. 그 시절의 정민은 아무런 약속도 없으면 우울감에 빠졌던 의존적인 사람이었다. 나 자신과 잘 지내지 못했기에 집 밖으로 나돌았던 그녀를 따뜻하게 안아주고 싶다. 지금의 나는 많은 성찰과 노력 끝에 혼자서도 잘 지내는 법을 터득했으며, 재미보다는 안정감과 깊은 관계를 추구하는 사람이 되었다. 그래도 그 시절을 떠올리면 일생 동안 후회하지 않을 만큼 놀아봤고, 그 순간만큼은 아이처럼 순수한 즐거움을 느꼈으니, 완전히 의미 없던 시간은 아닌 듯 하다. 클럽에는 확실히 일상생활의 규범이 적용되지 않는, 그 안에서만 통용되는 문화적 맥락이 있다. 분명 그곳에서 습득한 자유로움도 다채로운 내 모습을 이루는 하나의 조각이 되었다고 믿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