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가 아닌가?

by Rinah

승무원 합격하고 처음 카타르로 가던 날, 난 인천공항 출국장에서부터 "우와" 소리가 나왔다.


공항에 있는 항공사별 티켓팅 카운터에는 항공사 직원들이 이용하는 데스크가 별도로 있다.


신규 입사자로 처음 중동에 갈 때부터 그 별도의 데스크에서 티켓팅을 하게 되는데, 이게 뭐 대단한 건가 싶겠지만 크루로서 뭔가 달라진 첫 행동이다 보니 난 이게 그렇게 기억에 남는다.


0시 넘은 새벽에 인천공항에서 날아오른 뒤 10여 시간의 비행시간 동안 숙면도 취하고, 식사도 맛있게 하고, 설렘 속에 별이 빛나는 밤하늘과 해가 떠오르는 하늘도 구경하며 새벽 5시경 카타르 도하에 도착했다.


하지만 곧, 마냥 신나 있던 내 앞에 펼쳐진 예상 밖의 모습에 난 물음표를 오만 개쯤 띄우며 내가 제대로 랜딩 한 게 맞나를 의심하게 되는데....


비행기에서 내려서 공항버스에 탑승하는데 그라운드 스태프들과 운전기사가 모두 인도사람이었다.


음. 그렇군.


공항에 도착해서 출국심사대로 향하는데 거기서도 보이는 스태프들이 거의 다 인도인 같았다.


음.... 여기 공항에는 인도인들이 많이 근무하나?


수하물을 찾고 공항 밖으로 나와 회사에서 보내준 픽업차량을 타러 갔는데, 차량 기사님도 인도인이었다. 둘러보니 내가 탑승할 차량뿐만 아니라 주변의 모든 택시 기사님들도 다 인도인 같았다.


음? 나 중동에 내린 거 맞지 지금?


차량에 탑승하기 전에 핸드폰에서 구글 맵을 들어가 내 위치를 다시 확인했다.


내 위치 지금 중동 맞는데??


15분여 달려 도착한 숙소.

아니, 숙소 경비원 분들도 다 인도인이었다.


음?? 설마. 룸메까지 인도인은 아니겠지?!


다행히(?) 룸메는 태국인이었다. 그런데 얼마 지나지 않아 안 사실이었지만 룸메였던 분이 그 당시 경력 15년이 넘은, 고참 중의 최고참이라 아무도 같이 살기 원하질 않아서 비어있던 집에 배정된 것이었다.(....)


그날 짐 풀고 가족들과 영상 통화하며 "여기 인도사람들 엄청 많아!"라고 했던 기억이 난다.


그러나 그건 정말 시작에 불과했다.


신규 입사자로 회사 건물에 들어서자 경비뿐만 아니라 인스트럭터(=신규 입사자 교육 담당 강사)들이 죄다 인도인이었던 것이다.


이건 배치(=입사 기수)마다 달라질 수 있는데 내 배치 인스트럭터는 전원 다 인도인이었다.


보통 같은 나라에서 같은 오픈데이로 뽑힌 사람들끼리 비슷한 시기에 입사해서 같은 배치로 들어가곤 했는데, 난 도하 도착 일정이 살짝 앞당겨져서 같은 배치에 한국인이 없었고 다 다른 나라에서 온 친구들이었다.


내 배치에는 호주, 남아공, 케냐, 이집트, 영국, 스웨덴, 세르비아, 루마니아, 프랑스, 중국, 말레이시아 출신들이 있었는데, 우리는 첫날 서로에게 모두 같은 질문을 했다.


"우리 중동 온 거 맞지? 인도 아니지 여기?"

"너네 여기 오고 나서 인도 말고 다른 나라 사람 본 적 있음?"

"룸메 말고 너네가 처음인듯?"

"난 룸메도 인도인이던데."

"오우..."


이게 마냥 웃으면서 할 얘기가 아니라는 걸 깨닫는 데는 30분이 채 걸리지 않았다.


당장 우리 배치 담당이라며 강의실에 들어 선 인스트럭터의 자기소개부터 발음이 전혀 들리지 않았던 것이다.


영어권 출신인 영국, 호주, 남아공 친구들만 알아듣고 나를 비롯한 그 외 국가 출신들은 "???" 상태였다.


우리들 대부분 표정이 이상한 걸 감지했는지, 인스트럭터가 "천천히 말할까? 내 말 알아듣기 힘들면 언제든지 얘기해" 라고 했는데, 이 말은 또 정확하게 들려가지고, 인스트럭터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나를 비롯해서 대여섯 명이 외쳤다.


"네, 천천히 해주세요, please."

"Please!"


그렇게 인스트럭터의 자기소개를 (간신히 알아) 듣고, 곧 트레이닝 교재와 각종 매뉴얼들을 배부받으며 다른 인스트럭터들도 소개받았다.


지급받은 매뉴얼들은 안전교육, 기초 응급처치(First Aid) 교육, 그리고 서비스 전반을 다루는 교육 매뉴얼이었고 권당 족히 500페이지는 되어 보였다.


매뉴얼 배부를 마치자 인스트럭터들이 말했다.


"앞으로 두 달간 여러분들은 여기에 있는 내용들을 모두 외워야 하고, 모든 테스트들을 통과해야 견습비행에 나설 수 있습니다. 중간에 테스트 하나라도 탈락하면 그날 퇴사처리 될 수 있으니, 분발하세요."


네???

이런 말 없었잖아요.

(위 내용도 영국친구가 통역해 줘서 알아들었다. 영어를 영어로 통역....)


아니 근데 외우는 양은 둘째치고

님들 영어부터 들려야 할 텐데 말입니다.

분명 영어인데 왜 이렇게 안 들리는거죠!?


면접 합격한 후부터 난 그저 이제 됐다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저 앞에서 웃는 얼굴로 뭐라고 계속 얘기하고 있는 인스트럭터가 "응, 아니야, 이 애송이들아"라고 말하는 것만 같았다.


어쨌든 여기까지 와 놓고 훈련 통과 못했다는 이유로 짤려서 돌아가고 싶진 않으니까, 눈앞에 다가온 수업과 훈련들은 더 이상 '내가 이걸 할 수 있을까, 없을까'의 문제가 아니었다. 어떻게든 해내는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수백 페이지의 매뉴얼 북들과 함께, 낯선 사막의 도시에서 서바이벌 고시생 모드가 시작되었다.


앞으로 두 달, 테스트 하나라도 탈락하면 회사 짤린다.


살아남아보자.

Yall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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