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픈데이 바로 다음날 모인 면접장소는 영등포 타임스퀘어에 있는 메리어트 호텔이었다.
오픈데이 당일 그랜드 볼룸 홀은 너무 넓은 곳이라 놀랐다면, 본격 면접을 위해 모인 곳은 넓은 홀이 아니라 여러 회의실들이 있는 곳이라, 전날과는 결이 다른 긴장감이 있었다.
이 날 모인 인원은 100여 명 남짓.
대회의실에 모여 면접절차에 대한 간단한 오리엔테이션을 듣고 영어 필기시험을 봤다. 토익 RC파트 같은 문제들도 있었고 시차 계산하는 문제도 있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영어 필기시험 도중에 번호순으로 한 명씩 호명되면 회의실 뒤편으로 나와서 암리치 (arm reach) 측정을 하고 흉터와 문신 체크를 했다.
키/암리치 체크
대부분의 외항사는 키 162cm 이상, 암리치 212cm 이상을 요구한다. (이건 대략적인 평균치다. 최소 키 요건이 158cm 이상인 곳도 있고, 암리치 최소 220cm 이상이어야 하는 곳도 있다.)
키/암리치 최소 규정을 통과하지 못하면 면접관들이 그 자리에서 면접진행 불가하다고 통보하고 집으로 돌려보낸다. 내가 있던 카타르항공 면접장에서는 3명이 그렇게 돌아갔다.
승무원들은 평상시뿐만 아니라 비상시 오버헤드빈을 포함하여 기내 시설물들을 다뤄야 하기 때문에, 이러한 최소 키/암리치 요건은 항공사의 미적 기준이라기보다 글로벌 안전규정상 어쩔 수 없는 측면이 있다.
흉터/문신 체크
보통 스카체크라고 부르는데 얼굴, 목, 팔, 손, 종아리, 발등과 같이 유니폼 입었을 때 승객들이 볼 수 있는 신체부위에 흉터나 문신이 없어야 한다.
그 외 옷으로 가려지는 부분에도 흉터나 문신이 있냐고 면접관들이 묻는데, (내가 본 면접관들 기준) 문신 있으면 있다고 대답하고 평상시엔 옷으로 가려진다고 대답하면 문제없었다.
난 문신이 없지만 나중에 비행하면서 문신 있는 크루들을 많이 보았는데, 전부 다 유니폼 입을 땐 안 보이고 사복이나 수영복 입을 때만 보이는 문신들이었다.
필기시험과 키/암리치/스카 체크 이후, 면접장에는 80여 명이 남았다.
그룹 디스커션
10명씩 나뉘어 그룹 디스커션을 두 번 보았는데, 앞서 싱가포르 항공 디스커션과 디베이트 치르면서 단련이 된 건지 아님 거기서 허튼짓 할 거 다 하고 와서 그런 건지(....) 크게 어렵지 않았다.
디스커션 주제는 면접관들이 기내에서 여러 가지 문제가 생긴 상황을 주고 어떤 순서로 어떻게 해결할 건지 팀별로 정리하는 것이었는데, 나는 어떤 상황이 주어지든 기본 로직을 동일하게 적용해서 답했다.
서비스 관련 상황일 경우 상사에게 보고하고 최소 두 개 이상의 대안을 제시해서 손님이 고르게 한다.
안전 문제일 경우 즉시 훈련받은 매뉴얼대로 대처하고 동시에 동료에게는 상사에게 상황을 알릴 것을 요청한다.
특히 안전문제는 '승무원은 혼자가 아니라 팀으로 일하니까 팀원 모두가 상황을 알아야 한다'는 점을 염두에 두고 답하면 된다.
참고로 난 이 답변 로직을 싱가포르와 카타르뿐만 아니라 몇 년 후 에미레이트와 에티하드 면접에서도 동일하게 적용했고, 모두 통과했다.
그래서 난 외항사 면접관들이 이런 디스커션 면접에서 보고자 했던 것이 '지원자들이 실제 매뉴얼에 있는 내용과 얼마나 일치하게 말하는지'가 아니라, ‘팀으로 일한다는 개념을 이해하는가'였다고 생각한다.
'팀으로 일한다는 개념을 이해하는가'가 면접관들의 판단기준이라고 생각하면, 왜 '내가 어떻게든 해결하기 위해 최선을 다한다'라던가 '문제 제기하는 승객의 기분이 풀릴 때까지 계속 반복해서 사과한다'는 식의 답변이 좋은 답변이 아닌지 이해될 것이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내가 본 디스커션 면접에서는 대부분의 지원자들이 그런 식으로 답변을 하곤 했다.
80여 명으로 시작한 디스커션 면접이 끝나자, 면접장에 남아있는 인원은 13명이었다.
최종면접
다음날부터 이틀에 걸쳐 디스커션 통과한 인원들이 한 명씩 최종면접을 보았다.
지원자 한 명과 면접관 두 명이 20여분 가량 최종면접을 진행했는데, 내 최종면접에서 나온 질문들은 싱가포르항공 최종면접과 마찬가지로 기본질문이 주를 이뤘고, 이에 대해서는 싱가포르항공 최종면접 이후 준비했던 터라 무난하게 느껴졌다.
다른 항공사 면접 본 적 있냐는 질문도 나왔다.
이것도 예상질문이었기 때문에 답변을 준비했었는데, 난 특히 운이 좋았던 것이, 내 최종 면접관 중 한 명이 싱가포르항공 출신이었다.
면접관이 싱가포르항공 얘기를 듣더니 무척 반가워하며 “내가 개인적으로 궁금해서 묻는 건데, 싱가포르 항공 면접과정은 어땠어? 내가 지원했을 때랑 얼마나 다른지 궁금해서.”라고 물어서, 체감상 면접보다는 그냥 잡담하는 것 같은 시간이 되었다.
안개꽃 사태도 얘기했더니 빵 터지더라....
(7화 참조....)
그렇게 이야기하다 보니, 남들은 20분 안팎으로 끝났다는데 난 50분이 걸렸다. (면접 당시에는 시간이 얼마나 걸렸는지 몰랐는데, 내가 마치고 나왔더니 대기하고 있던 다음 지원자분이 완전 사색이 되어서는 질문을 몇 개를 받았길래 50분을 했냐고 물어서 알았다.)
면접을 마치고 내가 나가려고 일어서자, 면접관이 내게 악수를 청하면서 말했다.
“오리엔테이션에서 얘기했듯이 최종 결과는 일주일 내에 이메일로 알려줄 거야. 하지만 내가 지금 너한테 먼저 해줄 수 있는 말은, it was very nice to meet you today and I will see you again in Doha."
....!
어디서 다시 보자고요?
의례적인 마무리 인사말이겠거니 하고 듣다가 예상 못한 마지막 멘트에 깜짝 놀라서 얼떨떨한 상태로 면접관 손을 살짝 맞잡으며 물었다.
"Am I, am I understanding you correctly now?"
그러자 면접관이 나랑 악수하고 있는 손에 힘을 한번 꽉 주고선 씨익 웃으면서 답했다.
"Yes, you are."
옆에서 지켜보고 있던 다른 면접관도 웃더니 마찬가지로 악수하자고 손을 내밀며 말했다.
"Pack your things. Welcome to Doha."
.....!!!!
나 된 거 같다.
된 거 맞는 거 같다!
도하에서 곧 다시 보자니, 이 정도면 카타르항공 최종면접에서 들을 수 있는 피드백 중 최고 아닌가.
기쁨과 놀람이 뒤섞여 두 면접관과 악수를 반복하다가 얼굴이 화끈화끈해진 상태로 면접실을 빠져나왔다.
실수 대잔치에 덜덜덜 어버버 했던 싱가포르항공 면접경험이 카타르항공 면접에서 이렇게 도움이 될 줄이야.
뭐든 부딪치고 경험해 보라는 게 괜히 있는 말이 아닌가 보다.
추위가 채 가시지 않아 벚꽃이 만개하기 전이었던 초봄의 서울에서, 난 그렇게 카타르항공 승무원이 되었다.
+
약 1년 후, 독일 프랑크푸르트로 향하는 비행에서 나를 뽑은 면접관을 다시 만났다.
나는 오퍼레이팅 크루로, 그분은 승객이자 또 다른 오픈데이 면접관으로 가는 길이었다.
그분이 나를 먼저 알아봐 준 덕분에 잠시 이야기를 나눌 수 있었는데, 그분 말에 따르면 당시 서울 오픈데이에 7,500여 명이 이력서를 냈고 최종 합격자는 나를 포함해서 7명이었다고 한다.
최종합격률 0.1% 미만이라는 수치를 미리 알았다면 내가 과연 그 새벽에 그렇게 도전할 수 있었을까.
당시의 나를 좋게 봐준 면접관들에게 난 그때도 지금도 그저 감사할 따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