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소곤 Jul 13. 2016

항암치료 새내기에게 뜻밖의 난관

우리 애가 얼마나 착한데요 

제이는 종양 때문에 몸 안에 흉수가 차고 있어서, 흉관을 몸 안에 삽입한 채로 항암치료를 시작하게 됐다. 총 25주차 프로토콜 중 이제 막 1주차 치료를 시작하는 새내기 환자였다. 다행히 흉관을 삽입하고 나서 며칠이 지나자 제이는 잘 돌아다니고, 뛰기도 했다. 몸 안에 차고 있는 흉수를 매일매일 뽑아주니 숨이 차 호흡을 헐떡이는 증상도 상당히 나아졌다. 물론 관을 꽂고 붕대를 몸통 전체에 둘둘 감고 있는 모습이 보기에 안쓰러운 것은 어쩔 수 없었다.      


매일 집에서 흉수를 뽑고 양을 기록했다


이제 항암치료로 매주 병원에서 주사를 맞아야 했는데, 예방접종처럼 한 방에 따끔 맞고 끝나는 것이 아니라 링거처럼 맞는 주사였다. 즉시 부작용이 생길 수도 있어 주사를 맞은 후에도 병원에서 어느 정도 지켜보는 것이 좋다고 했다. 그래서 주말 아침 일찍 제이를 병원에 맡기고 저녁에 데리러 가 퇴원시키는 일정이었다. 그리고 주중에는 매일 아침, 저녁으로 약을 먹었다.      


림프종 진단을 받기까지 여러 가지 검사를 진행하느라 이미 입원을 너무 자주 해서, 반나절이든 하루든 제이를 병원에 두고 오는 게 참 안쓰러웠다. 마치 이산가족이라도 되는 것처럼, 헤어져서 어디 먼 데라도 가는 것처럼 선생님의 품에 제이를 넘기고 끝내 눈물까지 주르륵 흘렸다. 제이야, 이따가 데리러 올게. 걱정하지 마, 하면서. 그런데 제이를 맡기고 몇 시간 후에 병원에서 전화가 왔다. 


- 제이가 너무 완강하게 치료를 거부해서요. 오늘은 치료를 못하고, 내일 다시 시도해봐야 할 것 같아요. 

  

이게 엄마 마음일까? 유치원에 보낸 아이가 너무 말을 안 듣는다는 통지서를 받은 학부모가 된 것처럼 당혹스러웠다. 선생님, 우리 애는 그럴 애가 아닌데요…. 


항상 내 품 안으로 살포시 올라와 안겨 잠이 드는 순한 제이였다. 심지어 제이는 워낙 잘 안겨 있어서 이동장이 있는데도 쓰지 않고 품에 안고 다녔다. 병원에서 대기하고 있으면 사람들이 제이를 보고 어쩜 고양이가 저렇게 강아지 같냐고 놀라며 말을 걸곤 했고, 그럴 때마다 나는 내심 나와 제이가 얼마나 친한지 증명하는 것 같아 으쓱했던 것이다. 치료를 못할 정도로 손길을 거부한다는 게 상상이 안 되면서도 너무 마음이 아팠다. 얼마나 싫었으면…. 앞으로 갈 길이 멀어 염려했지만, 다행히 하루 입원한 후 다음 날에는 무사히 치료를 받고 퇴원했다. 제이는 매번 내 몸에 무슨 짓을 하는 건지 이해가 되지 않는다는 퉁명스러운 얼굴로 입원실에서 나오곤 했다.


내가 노트북을 쓰고 있으면 슬며시 와서 손목에 턱을 괴고 잠드는 제이


문제는 이제부터 생겼다. 등에 흉관을 꽂고 있는 안쓰러운 모습이 무색할 만큼 제이의 활력이 되살아난 것이었다. 고양이를 처음 키우기 시작했을 무렵 신랑(당시엔 남자친구)이 어쩐지 신이 나서 각종 고양이 용품을 사들인 덕분에 우리 집에는 베란다에도 3단으로 윈도우패드가 달려 있었다. 윈도우패드는 창문에 붙일 수 있는 일종의 해먹인데, 높은 곳과 창밖 구경을 좋아하는 고양이들의 팔자 좋은 뒹굴거림을 위한 아이템이다. 아무튼 제이는 침대에서 같이 자다가도 아침이 되면 꼭 윈도우패드로 올라가 일광욕을 하곤 했는데, 어느 정도 컨디션이 회복되자 어김없이 아침에 일어나면 베란다로 나가 패드로 뛰어올라갔다.


그런데 하루는 내가 아직 침대 위에서 비비적거리고 있는데 뭔가 쾅 하는 소리가 났다. 잠이 확 깨어 베란다로 뛰어갔더니, 제이가 윈도우패드로 뛰어 오르다가 줄에 걸렸는지 아니면 발을 헛디뎠는지 두 발로 대롱대롱 매달려 있었다. 


사실 고양이에게 이 정도 높이는 충분히 뛰어서 오르내릴 수 있는 것인데, 문제는 등 뒤에 붙여 놓은 흉관이 떨어지면서 윈도우패드를 고정시키는 줄에 걸린 것이었다. 만약 제이의 몸통이 바닥으로 떨어졌으면 몸 안에서부터 연결되어 있는 흉관이…. 실제로 흉관을 잡아당기면 빠지는지 어떤지는 모르겠지만 정말 십년감수했다.     


몸에서 빠져나온 관을 등 뒤에 고정시켜 놨다

 

이날 내가 집에 있었던 게 얼마나 다행인지 모른다. 이후에는 최대한 관이 달랑거리다 어디 걸리지 않게 꼼꼼하게 붙여주고, 이 부위를 아예 덮어줄 수 있도록 바로 제이가 입을 옷을 주문했다. 고양이들이 옷 입는 걸 썩 즐거워하지는 않지만 그런 걸 따질 일이 아니었다.      


당시 제이가 아직 한 살도 되지 않았을 때였다. 건강하다면 얼마나 놀고 싶고 우다다 뛰어다닐 시기인가. 뛰어놀다가 혹시 무슨 일이 생길까봐 집을 비우는 게 불안했고, 활기가 생길수록 입원을 답답해하겠지만, 나이답게 뛰어다니는 것이 고마운 게 또 엄마의 마음이었다. 

매거진의 이전글 고양이 항암치료, 내 욕심은 아닐까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