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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곤 Feb 05. 2018

아기야말로, 저희가 알아서 할게요

출산에 대한 의지와 각오는 내 안에서 나와야 한다

지인이 아기 이름 때문에 고민이라고 했다. 시댁에서 자꾸만 마음에 안 드는 이름을 권하며 고집을 부리신다는 것이다. 이름은 부모가 정해 양가 어른들에게 알려드리면 되는 줄 알았던 나는 솔직히 약간 놀랐다. 물론 할머니, 할아버지가 뜻 좋은 이름을 붙여주시는 것도 의미가 있겠지만 기본적으로는 부부가 받아들일 수 있고 만족스러운 이름인 것이 1순위여야 하지 않을까? 부부가 원하지 않는 이름을 지나치게 권하는 부모님의 심리는 뭘까, 아기를 ‘부부의 2세’가 아니라 ‘우리 집안의 손자’라고 우선적으로 여기고 있는 건 아닐까. 


더불어 이상하게 대부분의 시댁에서는 아이를 낳으면 그렇게 시댁 쪽 핏줄을 닮았다고들 주장한다고 한다. ‘남편 어릴 때와 붕어빵이다’는 기본이고, 아니면 시어머니나 시누이 어릴 때와 닮았다는 말이라도 꼭 한다는 게 엄마가 된 친구들의 공통적인 증언이다. 그 틈에 대고 ‘요 입술이 저랑 똑같이 않나요?’ 물으면 어쩐지 못 들은 척을 한다며 짐짓 황당해하기도 했다. 아이가 아빠를 닮은 게 그렇게 뿌듯하고 좋으신가 보다, 하고 서로 웃었지만 우리의 마음속에서 약간의 의문을 지울 수는 없었다. 


결혼 후에는 피할 수 없는 그 질문


결혼하고 세 번째 맞는 명절, 식사 후의 술자리에서 드디어 슬슬 때가 되었다고 예상했던 질문이 현실이 됐다. 시아버지가 웃으며 화두를 던지셨다.


“주변에서 손주 소식 없냐고 물어보던데?”


언젠가 이런 질문을 하시리라 예상은 했지만, 뭐라고 대답하는 것이 예의바른 것일까? 나는 일단 그냥 웃었다. 남편이 대신 ‘저희 아이 안 낳을 거예요’라고 대답하자 시아버지는 정색을 하며 무슨 소리냐고 손사래를 치시더니 내 손을 덥석 잡으며 물으셨다.


“며늘아, 낳을 거지?”


사실 결혼 전부터 아기를 낳지 않겠다는 말을 미리 전했는데도, 양가 어른들은 아직 아기에 대해 슬쩍 말을 꺼내신다. 몇 번을 말해도 아직 ‘설마’ 하고 기다리시는 눈치다. 다시 한 번 남편이 아기를 낳을 계획은 없다고 대답하자 시아버지가 말도 안 된다는 듯이 이런 얘기를 덧붙이셨다.


장손이 대를 이어야지, 무슨 소리야?


‘장손’, ‘대를 잇는다’는 말에 나는 내심 충격을 좀 받았다. 우리가 아기를 낳으면 그의 집안에서 대를 잇는 자손이 되는 걸까. 그런 관점이라면 혹시 아들을 낳아 제사를 물려받게 해야 한다고 여기시는 걸까? 나는 아기를 낳는 것을 대를 잇는다는 관점에서 바라본 적은 없었다. 특별한 선택 없이 기본적으로 남자의 성을 물려받고 남편 집안의 항렬 돌림자를 따르는 것도 잘 생각해보면 이상하다. 그 얘기를 듣다 보니 낳지도 않은 아이에 대한 소외감 같은 게 느껴졌다. 


시댁에서 손주를 바라보는 관점, 관여하는 정도를 비단 한 가정의 문제로 논할 만한 일은 아닐 것이다. 무슨 성씨 집안, 무슨 집안 몇 대 독자, 그런 게 나에게는 그다지 와 닿지 않지만 그런 게 중요한 시대도 분명 있었다. 하지만 지금 우리가 아기를 낳을지 결정하는 데 영향을 미치는 요소는 아니다. 아들을 낳지 못하는 여성을 ‘칠거지악’이라 하여 제 역할을 못하는 것으로 여겼던 유교 문화의 잔재를 발견하는 일은 없었으면 좋겠다. 


양가 어른들은 아기는 그냥 낳아야 하는 거라고, 낳으면 다 키우게 되는 거라고 말씀하신다. 그런데 그게 누구를 위한 삶일까, 그건 잘 모르겠다. 우리 부부의 행복을 위해서일까, 아니면 태어나는 아기에게 멋진 생을 살 수 있는 기회를 주기 위해서일까. 그런데 지금의 우리로서는 딱히 양쪽 다 아닌 것 같다는 느낌이 드는 건 왜일까. 게다가, 아직은 이 사회에서 여자에게 주어지는 양육의 부담을 무시하기 어렵다. 아기는 남자 집안의 자손이 된다는데 맞벌이를 하더라도 주 양육자는 엄마가 되는 경우가 많다. 부성애보다 강력해야만 하는 모성애는 워킹맘을 죄인으로 만들고, 결국 많은 엄마들이 경력을 포기한다. 남편의 육아휴직은 그에게 의지가 있다 한들 회사에서 흔쾌히 동의할 것 같지 않다. 막연히 생각해도 일일이 힘겨운데, 그 세상에 실제로 발을 들이는 것은 역시 엄두가 나지 않는다. 그런데 이렇게 미지근한 마음으로 애를 낳아도 내가 행복해진다는 게 틀림없는 걸까?


심지어 인터넷 기사의 댓글도 아기를 낳아야 어른이 되는 거라고 지나가면서 훈계를 한다. 아기를 낳고 사는 행복은 무엇과도 비교할 수 없는 거란다. 그러나 아기가 없는 삶에도 다른 종류의 행복이 있을지도 모른다. 그 행복의 크기를 누가 절대적으로 저울질할 수 있겠는가. 먼저 겪은 경험은 소중하지만 그 인생관이 모두 같을 리는 없다. 남이 가이드해주는 길을 따라 걷다가 내 행복을 놓쳐버릴 수도 있다. 하기야, 남이 아는 행복을 내가 모르는 것이 비단 아기에 관한 것뿐일까. 그리고 그건 상대도 마찬가지다. 



출산을 권유하기 전에 생각해봐야 할 것 


아기에 대해 묻는 시아버지께는 나 역시 솔직하게 말씀드렸다.


"저희는 꼭 아기를 낳을 필요는 없다고 생각하고 있어요."


나로서는 이토록 힘든 결정을 실제로 내리고 우리를 낳아 키워주신 부모님을 존경하지만, 부모님이 원해서 아기를 낳을 수는 없는 노릇이다. 주변에서 출산을 권유하는 이유가 우리 부부가 아직 모르는 행복을 가르쳐주고 싶은 안타까운 마음일 수도 있지만, 내가 행복해질 수 있는 방법은 내가 가장 잘 알고 있다고 생각한다. 만약 그 이유가 '집안의 경사'나 '대를 잇는 것'이라면 더더욱 그런 권유는 듣고 싶지 않다. 


반려동물만 해도 동물을 구조하거나 보호하는 사람들은 보통 주변에 '고양이 키워봐', '강아지 한마리 어때?'라고 권유하지 않는다. 스스로 결정하지 않으면 막상 동물을 키우는 게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알기 때문이다. 내가 강력 추천해서 고양이를 입양했는데 막상 키워보니 너무 힘들다고 나에게 불평한다면? 그 고양이를 내가 대신 데려와서 키워줄 수도 없다. 그런데 그게 사람 아기라면 더 말할 것도 없는 문제다. 


아기를 낳는 이유, 낳지 않는 이유는 세상에 수십 가지, 수백 가지가 있을 것이다. 다른 사람의 사례를 참고할 수는 있지만 결정적인 이유는 반드시 본인들로부터 나와야 그 결정에 책임질 수도 있게 된다. 옆에서 괜히 바람을 넣고 부채질할 일이 아닌 것 같다. 아기야말로, 오로지 부부의 충분한 논의와 고민이 뒷받침되어야 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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