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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곤 Feb 12. 2018

이런 기분이 들 바에야 왜 결혼했어?

물러설 곳이 없다는 결혼의 좌절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 결혼을 한 덕분에 내 삶은 더 행복해졌을까? 서로의 법적 배우자가 된 만큼 우리의 관계는 더 깊고 끈끈해졌을까? 그렇기도 하고, 어쩌면 그렇지 않기도 했다. 언제든 헤어질 수 있는 관계일 때는 한 번쯤 용서할 수도 있었던 실수나 단점이, ‘이 사람과 평생을 살아야’ 하는 관계가 되자 몹시 심각하고 중요한 문제가 되어 버렸던 것이다.


결혼 후 언제쯤인가 우리도 첫 말다툼을 했다. 연인이나 부부 간의 많은 다툼이 그렇듯 발단이 무엇이었는지는 기억도 나지 않을 만큼 사소한 일이었다. 하지만 그때 내가 순간적으로 느꼈던 깊은 좌절감 같은 것은 분명하게 기억난다. 나는 우리가 그간 쌓아온 신뢰와 애정의 기반과 미래를 의심하며, 연인이던 시절과는 비교도 안 될 만큼 낙담했다. 지금 생각해 보면 별로 큰일도 아니었을 텐데, 내 삶의 근간이 흔들리는 듯한 혼란감에 나 자신도 깜짝 놀랄 정도였다.


이 사람이랑 어쩌자고 결혼이라는 엄청난 결정을 했을까? 이대로 우리 사이 갈등의 골이 깊어지면 나는 평생 불행하게 살아야 하는 것은 아닐까? 어쩌면 노력으로는 해결할 수 없는 심각한 가치관 차이가 우리 사이에 존재했던 건 아닐까? 그 차이를 평생 끌어안고 살 수는 없을 것 같은데…… (그냥 빨리 이혼해 버릴까?)


사랑이 크고 관계가 깊어질수록 그 반동으로 느끼는 좌절감도 커진다. 물론 마음이 맞지 않으면 이혼도 할 수 있으리라고 생각은 했지만, 연인 사이일 때 말 한마디로 끝나는 간단한 헤어짐과는 그 무게가 확연히 달라졌다. 쉽게 물러설 곳이 없다고 생각하니까 남편의 아주 작은 단점, 나와의 사소한 가치관 차이도 내가 뛰어넘어야 할 어마어마한 벽처럼 느껴졌다. 나 자신의 단점을 인정하고 나의 방식을 홀로 정하여 살아가는 것과는 완전히 다른 문제였다.


이럴 기분이 들 바에야 왜 타인과 함께 살아가기로 결정했을까? 몇 번인가 스스로에게 물을 때도 있었다. 결혼하지 않았으면 몰라도 되었을 깊은 실망과 좌절을 내가 왜 겪어야 하는지 내 선택이 원망스러웠다. 그러고 보면 연인과 헤어지고 난 뒤에 일상이 흔들리는 것이 싫어서 누구에게 쉽게 정을 주지 않으려 했던 마음과도 비슷했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우리가 연인이 아니라 부부 사이라는 바로 그 점이 나의 좌절감을 다독였다. 결혼이라는 무거운 제도가 나를 더 두렵게 만들었지만, 한편으로는 ‘그럼에도’ 그를 믿을 수 있다는 용기를 주기도 했다. 결혼이라는 엄청난 결심까지를 함께해온 우리 사이에는 다행히 예전 연애와 달리 서로의 마음을 오가는 꽤 견고한 길이 만들어져 있기 때문이었다. 쉽게 관계를 포기하기에는, 그가 내 인생에서 서로의 마음까지 닿는 가장 튼튼하고 좋은 다리를 만들어준 남자라는 사실은 변함없었다.


도저히 이해할 수 없다고 생각했던 일도, 다투고 난 뒤 그의 입장을 듣고 나면 조금은 납득이 갔다. 그 후에는 비슷한 일로 싸우더라도 그가 납득할 만한 어떤 이유를 가지고 있으리라고 생각하며 이 관계에 대한 희망의 여지를 조금 남겨두었다. 적어도 가벼운 말다툼 후에 ‘나와 이렇게 다른 사람과 평생을 함께할 수 있을까’ 하는 부정적인 고찰로 순식간에 넘어가버리는 일은 적어졌다.


사소한 다툼만으로도 우리 사이의 모든 것이 엉망이 되었다고 생각하는 마음이 나의 지나친 비약이라는 점, 우리가 서로를 조금 더 입체적으로 알아가고 있다는 점을 생각하면 사실 우리는 나름대로 성장하고 있는지도 몰랐다. 결혼하고 보니 2년을 연애하면서도 내가 미처 몰랐던 남편의 모습도 있었다. 부딪치며 조금씩 더 알게 되는 그의 모습이 다행히 그리 싫지 않았다. 아니, 이건 좋고 나쁘다는 판단의 문제가 아니었다. 말하자면 우리는 유동적인 퍼즐 조각이었다. 함께 살아가기 위해 홈을 조금 더 넓히거나 튀어나온 각도를 조금 옮겨가기도 하면서 기꺼이 퍼즐의 그림을 맞춰나가는 사이였다.


좋은 아내, 남편이 아니라 좋은 배우자


서로가 행복해질 수 있는 결혼생활은 결혼식과 동시에 기성품처럼 완성되어 놓이는 것이 아니라, 두 사람의 끊임없는 배려와 노력으로 꾸준히 만들어가야 하는 것 같다. 서로에 대해 근본적인 믿음을 가지고 있을 때, 그리고 구체적인 방법을 협의하고 지켜나갈 때 결혼생활은 조금씩 매끄럽게 다듬어지고 서로를 포용할 수 있을 만큼 말랑해진다.


예전에 ‘남편이 집안일하게 만드는 법’ 같은 제목을 달고 아내들을 위한 몇 가지 팁들이 공유되는 걸 본 적이 있다. ‘이거 두 시간 후까지 부탁해’라는 식으로 시간을 정해주는 것, ‘역시 당신 같은 남편은 세상에 없어!’ 하면서 작은 일도 과장되게 칭찬하는 것 등이었다.


나도 결혼하고 나서 주변 사람들로부터 ‘남편 조련법’에 대한 조언을 종종 들었다. 남자는 여자가 하기 나름이라는 말, 다 큰 하나의 인격체가 하는 행동의 책임을 남에게 떠미는 그 말이 나는 참 듣기 싫었다(물론 반대로 쓸 때도 마찬가지다). 현명한 아내라는 건 뭘까? 적어도 내가 해석하기에는, 남편이 제 역할을 할 수 있도록 그의 자존심을 건드리지 않으면서도 칭찬으로 북돋아주는 방법을 아는 아내를 뜻할 때가 많은 것 같았다. 잔소리처럼 들리면 안 되고, 명령처럼 들리면 더더욱 안 된다. 설거지 한 번만으로도 과장되게 칭찬하여 그가 스스로 훌륭한 남편이라고 생각하게 만드는 것이 집안의 평화와 균형을 지키는 현명한 아내의 요령이라는 것이다.


이런 방식이 서로에게 만족스러운 부부도 있겠지만, 나는 이것이 이상적인 부부생활을 하는 방법이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가뜩이나 피곤한 내 삶에 미션을 하나 추가하려고 결혼한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실은 이전의 많은 연애에서 나 역시 상대방이 나의 기준에 무조건 맞춰주기를 바라는 사람이었다. 다투는 방식도, 다툼을 해결하는 방식도 내가 원하는 대로가 아니면 차라리 금방 관계를 포기해 버리는 것을 택했다. 길지 않은 결혼 생활 동안에도 인생의 반려자가 생겼다는 게 감사하고 기쁜 순간도 있었지만, ‘이러려고 결혼한 건 아닌데’라는 생각이 들 때도 분명히 있었다. 그럴 때마다 당혹스러웠고, 버티는 삶을 살 생각은 없었다. 하지만 우리는 분명 서로를 괴롭히기 위해서가 아니라, 서로의 삶을 더 행복하게 만들기 위해 만난 사람들이었다.


관계를 금방 포기하거나 끊어내는 것은 너무 쉽다. 결혼 생활이 어려운 이유도 쉽게 포기할 수 없어서인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지금까지와는 조금 다른 관계 맺기가 필요했다. 두 사람이 모두 행복해지는 결혼 생활을 위해서 한 사람이 다른 사람을 다독이고 이끌어 갈 수도 있겠지만, 그렇게 해서는 결국 어느 시점에선가 힘이 빠지게 될 것이다. 어떤 시기에는 한 사람이 조금 더 마음을 넓혀주고, 또 어떨 땐 한 사람이 조금 더 양보하는 것은 어쨌든 사랑의 영역에서 일어나는 일이다. 하지만 결혼 생활 전체가 한 사람을 희생시키거나 지나치게 애쓰게 만드는 일은 아니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결혼 생활의 문제는 우리 관계에서 올 때도 있고, 또 우리 바깥에서 올 때도 있었다. 바깥에서 오는 문제는 최대한 흔들리지 않고 우리 둘만의 결론을 도출하는 방면으로, 둘 사이에서 오는 문제는 근본적인 불만이나 찜찜함을 피하지 않고 대화해 나가는 방식으로 해결하기 위해 여전히 노력하고 있다. 우리가 법적으로 함께하는 게 당연하다는 이유로 사랑마저 당연해지는 것은 아니므로, 서로의 마음을 헤아리는 일을 게을리하는 것은 곤란했다.


서로의 퍼즐 모양이 딱 들어맞지 않을 때 그 모양과 간격을 조율한다는 건 어렵다. 두 사람이 서로를 배우자로서 인정하고 어느 정도는 독립적으로, 또 어느 정도는 삶을 공유해 가며 살아간다는 것도 간단한 일은 결코 아니다. 하지만 어쩌면 우리 두 사람이 상대방과 관계를 맺는 방식이 한 단계 성숙해지는 방법인지도 모르겠다. 더불어 말하지 않아도 알 수 있는 우리만의 내밀한 공감대를 만들어가는 것도 그것대로 꽤 근사한 과정이다. 그런 와중에 우리가 왜 결혼했는지, 가끔은 그 답이 손에 잡힐 것도 같아서 이 어려운 걸 어쨌든 해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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