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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곤 Feb 26. 2018

그러나 시월드를 두려워하지 말자

우리는 여전히 선택하는 삶을 살 수 있다

명절은 지났지만, 나의 마지막 명절에 대한 이야기를 하지 않을 수 없을 것 같다. 지난 추석을 한 번 거르고 일 년 만에 맞이한 명절이 어느 때보다도 뒤숭숭했다. 그동안은 도착했을 때쯤 음식 준비가 다 끝나 있었는데 이번에는 밤 11시가 넘어서야 음식 준비를 시작했다. 그동안 정면으로 보고 싶지 않아 피해온 명절 풍경을 낱낱이 볼 수 있었던 셈이다. 여자들은 부엌에 서서 요리를 시작하고 남자들은 술을 먹겠다며 거실에서 삼겹살을 구웠다. 여자들은 설음식을 마련하면서 고추며 쌈장이며 곁들일 반찬을 챙겨드렸다. 나는 어느 쪽에도 속하지 않고 끄트머리에 앉아 그 모습을 보며 혼자 입을 다물었다. 일어나서 자발적으로 부엌에 들어가고 싶지도 않았고, 자리에 앉아 있는 것도 물론 마음이 불편했다.


대충 자리가 소강된 뒤 방에 들어가 무언가 이야기를 나누던 시어머니가 나를 슬쩍 부르셨다. 시어머니가 피곤하다고 말하자 시아버지가 "그럼 며느리를 가르치라"고 했다는 것이다. 내가 "뭘 배워요?" 묻자 "그, 뭐냐, 배울 건 배워야지. 제삿상 차리고 그런 거…" 하고 시아버지는 멋쩍어하며 말끝을 흐렸다. 남편 집 제삿상 차리는 법을 왜 내가 배워야 하는지, 그렇게 생각하는 근원이 정말 궁금했다. 내가 상냥하게 "그건 (남편의 일이니까) 남편이랑 얘기하셔야 할 것 같은데요" 말하고 그를 불렀다. 그는 간단히 상황 설명을 듣고는 "그런 거 안 배워도 된다"며 나를 일으켰다.


나는 나중에 남편에게 그것 보라고, 내가 너랑 똑같이 술 마시고 앉아 있어도 누군가는 '쟨 며느리가 돼서 일도 안 하고 앉아서 먹기만 한다'고 욕하고 있는 거라고 말했다. 남편이 내게 항상 '괜찮아, 안 해도 돼'라고 말해도 내 마음이 불편했던 이유를 그도 아마 이해하지 않았을까.


다음 날 아침, 남자들은 목욕을 하러 가고 여자들이 제삿상을 차렸다. 남자들이 돌아와 절을 다 하고 나서 시아버지가 "주부들도 절하라"고 부엌 한편에 서 있는 여자들을 불렀다. 주부란 '한 가정의 살림살이를 맡아 꾸려 가는 안주인'을 뜻하는 말인데 그 자리에 있는 여자들은 내가 알기로 모두 맞벌이였다. 게다가 난 지금의 제사 문화가 개인적으로 내키지 않아 절을 꺼린다. 남편이 손을 잡으며 안 해도 된다고 고개를 저었다.


남자들이 큰 상에 앉아 떡국을 받아먹는 동안 여자들이 남자들이 먹을 떡국을 다 뜨고 냄비에 남은 떡국을 작은 상에서 나눠 먹었다. 내 심기가 불편해 보이자 남편이 눈치를 보는 게 느껴졌다. 밥 먹으면서 시어머니가 내 남편이 어릴 때 입맛이 몹시 까다로웠다는 일화를 얘기하자 옆에서 친척 어른이 나를 보며 "네가 피곤하겠다?" 했다. 왜 내가 남편의 입맛을 엄마처럼 맞춰주고 있다고 생각할까? 나는 "짜다, 싱겁다 투정하려면 본인이 해야죠"라고 말했다. 요리를 여자인 내가 한다는 전제를 인정한 것 같아서 속이 시원하지 않았다. 그 친척은 참기름을 주겠다는 시어머니에게 남편이 “우리 집에 참기름 있다”라고 말하자, "어머, 그걸 왜 신랑이 알고 있어? 웃긴다" 하고 진짜 웃기다는 듯 웃었다.      


설거지를 하지 않았다. 시아버지나, 시아버지 형제들의 와이프, 남편의 작은 엄마들이 속으로 나를 욕하고 있을지도 몰랐다. 그 비난이 각자의 남편이 아니라 여자인 나를 향하고 있다는 것을 새삼 지적하며, 집에 돌아오는 길에 남편에게 이 모든 불합리함에 대해 다시 한 번 이야기했다. 그는 내 마음을 이미 안다. 나는 부엌일을 하기 싫어서 기분이 나쁜 게 아니다. 내가 가족으로서가 아니라, 그의 집안 조상을 모시는 데 노동력을 제공하는 '며느리'로서 여겨지고 싶지 않은 것이다. 만약 내가 제삿상 차리는 법을 배우는 게 필요하다면 그것은 원래 우리 집, 내 조상을 위한 것이어야 했지 않을까. 장손인 남편이 제사를 지내고 싶다면 그가 하면 된다. 나에게 도움을 요청하면 기꺼이 도와줄 것이다. 며느리를 시키라는 시아버지가 미운 게 아니라, 내가 남편과 결혼했다는 이유로 자연스럽게 나의 서열을 낮추고 그의 집에서 노동하는 포지션이 된다는 그 발상을 견딜 수 없었다. 결혼이라는 제도를 거쳐 마땅히 떠안아야 한다고 여겨지는 불평등한 요소를 기꺼이 감당하고 싶지 않았다.


남편은 애초부터 '너는 장손 노릇을 해야 한다'는 아버지의 가부장적 가치관과 '억지로 해야 하는 건 웬만하면 안 하면서 살겠다'는 나의 주장 사이에서 늘 머리가 복잡했을 것이다. 그걸 알면서도 ‘이 풍경은 불합리하다’는 말을 참을 수 없었다.      


남편과 의논하여 더 이상 명절에 참여하지 않기로 결정했다. 명절에는 각자 원하는 대로 자기 집에 가거나, 혹은 여행을 가고 재충전하는 연휴로 보내기로 했다. 사실 결혼하기 전부터 이런 이야기는 해왔다. 막상 결혼 후에는 차마 실행하지 못하고 망설였던 것인데, 우리 두 사람을 위해 하루 빨리 결심을 하는 편이 나았다.      


명절에 가지 않는 것이 근본적인 해결책이 될 수는 없을 것이다. 누구도 잘못하지 않았기에 모두가 피해자라는 사실을 안다. 하지만 일 년에 두 번씩 무거운 마음으로 이 비정상적인 풍경 속에 속할 수는 없을 것 같았다. “어머니, 이걸 어떻게 여자끼리만 다 해요?”라고 묻자 시어머니는 그래도 “예전에는 이 두 배나 차렸는데 많이 나아진 거야”라고 웃었다. 이제는 이곳에 오는 길이 친정에 가는 길보다 눈에 익어 내 삶이려니 하고 받아들이게 되었다고 한다. 내가 더 할 수 있는 말이 없었다. 불합리하고 힘든 것은 똑같은데 그래도 예전보다 가벼워졌다는 데 감사하는 마음을 내가 지닐 수 있을까.  


명절에 참여하지 않는다는 것이 시부모님에 대한 도리를 내팽개치겠다는 뜻은 아니다. 시아버지의 가부장적인 가치관을 따를 수 없을 뿐 나는 오히려 호쾌한 시아버지를 좋아했다. 차라리 날 따뜻할 때 함께 여행을 가자고 내가 제안했다. 함께하는 시간으로 따지면 여행이 명절보다 길지만, 그래도 여행이 나은 것은 일상에서 잠시 벗어나는 덕분인지 집안에서의 고정적인 역할이 조금은 무너지고 옮겨가기 때문이다. 덕분에 나도 스스로의 서열을 매순간 확인할 필요가 적다.


며느리가 되지 않으려면 이혼뿐인가?      


“난 너처럼 살지 않을 거야.”      


그런 말을 듣고 기분 좋은 사람이 어디 있을까. 결혼 제도의 문제점이 지적될 때마다 꼭 그런 댓글이 달린다. 이래서 결혼이 싫어, 저 사람들 불쌍하다, 난 절대 결혼하지 말아야지. 그것도 하나의 방법인 것은 분명하지만 결혼으로 인해 답답하거나 불쌍하게 여겨지는 영역이 생긴다는 것은 씁쓸한 일이었다. 남들이 보기에 당연히 결혼하면 펼쳐질 것으로 짐작되는 삶을 나 스스로도 체념하고 따를 수는 없었다.      


결혼하고 싶은 사람이 있거나 적어도 결혼에 대해 고민하고 있는 여성들이 가장 걱정하는 문제가 바로 이 부분일 것이다. 결혼 후 내 의도와 상관없이 내 삶의 주도권을 잃는 것, 며느리로서 나의 지위가 낮아지는 것. 이것은 남편의 성향이나 시부모님 개개인의 인성과 인격에 관한 이야기가 아니다. 아내, 엄마, 며느리로 살아가는 것이 왜 결혼 이전에 비해 자유롭지 못한가에 대한 고민이다. 물론 결혼이라는 공동생활에 대한 서로 책임감을 가져야 하는 것은 물론이지만, 그것이 일방적으로 나를 포기하거나 남들이 정해놓은 길을 따라야 한다는 뜻은 아니다.      


간혹 나뿐만 아니라 많은 며느리들의 삶이 납득할 수 없는 구세대적인 방식에 머물러 있을 때, 그리고 탈출구가 좀처럼 보이지 않을 때, 자신의 삶을 되찾는 방법은 정말 이혼뿐인 걸까 생각해보곤 했다. 애초에 결혼에 의한 낡은 구속을 피하는 방법은 결혼하지 않는 것밖에 없었을지도 모른다. 남편과 사랑하고 행복해지기 위해 결혼한 것인데, 내가 선택하지 않은 의무로 인해 내가 선택한 가정을 포기해야 한다는 것은 의아했다.      


단번에 바뀔 리 없는 ‘며느리’에 대한 인식을 견뎌내기 위해 혹은 바꿔가기 위해 나는 방법을 탐색하고자 했다. ‘며느리 도리’의 족쇄에서 오는 불평등함을 좋은 게 좋은 거라고 넘길 수 있을 정도라면 모르겠지만, 그 모든 것이 뾰족뾰족 박히는 가시처럼 괴롭다면 어떻게 그대로 평생을 살아갈 수 있겠는가. 이 시점에서 결혼에 대한 선택이 필요하다. 결혼을 하지 말든가, 결혼을 하되 며느리 도리를 갖춘 며느리가 되는 것을 포기하는 것이다. 나는 후자를 택했다.      


성격마다, 가정마다 상황은 다르기에 무엇을 정답으로 둘 수는 없겠지만 결혼을 앞둔 지인들에게는 꼭 이런 말을 해주게 된다. 본인이 힘들지 않다면 상관없다. 하지만 외부의 상황이 부부 관계에 영향을 미칠 만큼 혼란스럽다면 그것을 거부할 수 있는 용기가 필요한 것 같다고. 아니, 사실은 이렇게 말한다. 그것을 거부할 수 있는 ‘싸가지’가 좀 필요하다고. 그러나 한편으로는 그들 역시 내가 겪은 것과 마찬가지의 혼란을 겪으리라는 섣부른 예측을 던지지는 않으려고 노력한다. 모두에게는 또 자신들만의 만족과 위기와 해결책이 있을 것이니까.      


그럼에도 지레 결혼에 대해 우려되는 것은 우리는 어른에게 자신의 뜻을 주장할 수 없는 교육을 받아왔기 때문이다. 꼭 며느리와 시댁 사이에 대립 구도가 형성되어야 한다는 뜻은 결코 아니다. 다만 시부모님의 마음에 쏙 드는 며느리가 되지 않아도 할 수 없다는 것이다. ‘너도 이제 우리 집안사람이니까 며느리로서 살아야’ 한다는 생각, 그리고 어른의 말씀을 차마 거부하지 못하는 데서 마음속 갈등이 시작되는 것 같다. 혹 나의 선택이 시부모님의 눈에 이기적이고 못된 행동처럼 보여도 어쩔 수 없다. 혹시 갈등이 생기더라도, 서로 원하는 삶의 방향이 다른 데서 오는 격차를 한쪽이 일방적으로 맞출 수는 없다. 필요하다면 갈등을 피하지 않겠다. 나 자신을 지키는 데 필요하다면 누군가 나를 미워해도 받아들일 수밖에 없다. 그렇게 나는 생각한다.


결혼 제도 안에서 며느리가 약자가 되지 않아도 남편과 사랑하고 부모님에게 도리를 다할 수 있는 방법은 얼마든지 있다. 그리고 있어야만 한다.      



'결혼'이라는 약속이 나아가야 할 길


며느리의 입장에서 말하고 있어 여성에 대한 이야기가 되었지만, 지금의 결혼 제도가 남자들에게 완전히 유리하다는 뜻은 아니다. 나는 내 남편이 가부장제에 따른 불필요한 가장의 부담감을 갖는 것이 싫다. 명절마다 내 눈치를 보느라 나름대로의 명절증후군을 겪는 것도 원하지 않는다. 맞벌이든 외벌이든, 돈을 버는 것과 가정을 돌보는 것은 반드시 양립해야 하는 부분인데 서로 누구의 일이 더 힘들고 훌륭한지 따지는 논쟁은 불필요하다. 내가 출산을 한다면 적어도 몇 개월은 경제적인 짐을 홀로 지어야 하는 남편이 돈벌이를 집안일과 육아보다 힘들고 훌륭한 가치로 저울질하지 않기를 바란다. 반대의 경우에 나 역시 그러할 것처럼.


이 하나의 글에서 결혼 제도와 맞물린 모든 문제를 하나하나 거슬러 올라가며 짚고 넘어갈 수는 없을 것 같다. 한순간에 많은 것이 바뀌지도 않을 것이고, 또 바뀐다 한들 완벽한 세상이 될 수는 없으리라. 어떻게든 이 안에서 살아가야 하는 우리는 어떠한 선택을 해야 할까? 정답이라고 할 만한 것은 없고, 또 개인의 성격마다, 성향마다 취할 수 있는 태도는 다를 것이다. 다만 각자의 방식으로 조금이나마 마음의 의문과 불합리함에 대한 괴로움을 덜고, 앞으로 50여 년을 더 이어가야 하는 결혼생활이 두 사람 모두에게 마음 편한 것이 되었으면 좋겠다. 불편함을 만드는 요소에 대하여 누군가를 탓하고 싶지는 않다. 다만 악의가 없다 하여 피해자가 없는 것은 아니므로, 나 스스로를 지킬 수 있는 멘탈과 힘, 목소리 따위를 지니고 살고 싶을 뿐.


결혼생활에서 두 사람이 서로 양보하고 맞춰가야 할 것은 산더미처럼 많지만 우리는 다투고 갈등하더라도 아마 잘 해낼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 외의 요소가 두 사람이 성인으로서 독립된 가정을 꾸려나가는 것에 대한 걸림돌이 되는 세상이라면 바뀌어야 하지 않을까? 제사든 명절이든, 두 사람 모두 그것을 좋은 풍습으로 여기고 원한다면 그렇게 해나가면 된다. 단지 억지로 견디지 않는, 누군가가 희생하지 않는, 그리고 두 사람이 각자 완벽하지는 않더라도 어느 정도는 행복한, 그런 삶을 살고 싶다는 거다. 동거는 하나의 선택이 될 수 있겠으나 궁극적으로는 결혼이 떠미는 의무의 형태에서도 옳지 않은 것이 있다면 바뀌어야 한다. ‘결혼하면 이런 삶을 살게 될 것’이라고 체념하지 않고 내가 생각하는 결혼생활을 뿌리부터 새로이 일구고 싶다. 그래서 결혼이 사랑하는 두 사람을 위해 좀 더 근본적인 새로운 시작이 되기를 바란다.




연재를 마치며.


남편은 결혼하기 전에는 나에게 참 특별한 사람이었다. 아침밥을 요구하거나 부모님에게 잘하는 여자가 이상형이라든가 그런 말은 물론 하지 않았다. 하지만 막상 결혼해보니 그는 우리나라의 유교문화 속에서 익숙하게 자라온 평범한 남자였다. 내가 불편하게 느끼는 것에 대해 그는 왜 불편한지 몰랐다. 하지만 이해하기 어려워도 나의 목소리를 들어주고, 때로는 공감하고, 그 결과 내가 원하는 변화에 동참해주는 사람이라서 나는 조금 더 자유로웠고, 여전히 나 자신이 나로서 살아 있다고 여길 수 있었다. 결혼이라는 길을 통해서도 우리는 여전히 선택하는 삶을 살 수 있다는 희망을 가지게 되었다. 위클리매거진 연재를 마치며, 나의 든든한 동반자가 되어준 남편에게 고마운 마음을 전합니다. 또 연재되는 동안 관심을 가져 주신 많은 분들에게도 감사드립니다. 글 쓰는 것보다 댓글을 쓰는 게 망설여지고 오래 걸려 일일이 답변을 달지 못했지만 공감과 의견 모두 감사히 읽고 있습니다. 그리고 일러스트로 함께해준 JA님 제일 고마워요 :)


인스타 @sogon_about

메일 sogon_about@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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