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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곤 Jan 29. 2018

좋은 부부는 좋은 부모가 될 수 있을까

누구도 대신해주지 않는 책임에 관하여 

난 어릴 때부터 동물을 좋아하는 반면 아기들을 보고 귀엽다고 느낀 적은 별로 없었다. 내가 그렇게 말하면 엄마는 자기 아이를 가지면 달라진다며, 엄마도 그랬다고 했다. 아기가 주는 행복은 세상에서 가장 큰 것이라고. 사람마다 좋아하는 것이 다르고 취향이 달라도 내 아기가 예쁜 것은 종족 공통인 걸까? 아마 그럴 수도 있겠지만 내게는 어쩐지 잘 상상이 되지 않는 일이었다.


적어도 내가 떠올리는 미래에 아기의 모습이 함께였던 적은 없었다. 단지 출산과 육아의 어려움 때문만은 아니었다. 나 역시 완벽하게 성숙하지 못한 존재인데, 내가 다른 생명을 잘 키워낼 수 있을까 하는 걱정이 가장 컸다. 내 인생의 초점을 나에게서 다른 존재로 옮겨 집중할 수 있을까? 그래서 올바르고 가치 있는 삶을 살아갈 수 있도록, 새하얀 도화지 같은 어린 시절에 바람직한 그림을 그리도록 내가 잘 이끌어줄 수 있을까? 그러기 위해 공부하고 노력할 만큼의 의지를 내가 가질 수 있을까?


저절로 부모가 되는 것은 아니니까 


사실, 크면 저절로 엄마가 되는 것이 아니라는 걸 알게 된 지는 그리 오래 되지 않았다. 어릴 땐, 여자는 커서 다 엄마가 되는 줄 알았고 엄마는 이미 옳은 길과 방법을 모두 알고 있다고 여겼다. 하지만 물론 엄마도 뱃속에서 열 달 만에 품에 안긴 아기를 어떻게 살리고 보살펴야 하는지, 배우고 적응해 나갔을 것이다(인터넷도 없던 시절, 백지처럼 막막한 단계가 얼마나 많았을까?). 어쩌면 고양이를 키우는 것과 마찬가지다. 고양이는 사람의 손길 없이도 독립적으로 알아서 크는 동물이라고 생각했던 시절이 내게도 있었다. 물론 그렇지 않다. 고양이를 잘 키우기 위해서는 사료의 계량부터 적절한 모래의 선택까지, 해야 하는 일이 산더미처럼 있다. 그걸 배우지 않으면, 그리고 배우려고 마음먹지 않으면 4kg 남짓한 작은 동물조차 키울 수 없다.


게다가 결혼하고 나니 내가 얼마나 엄마의 영향을 많이 받고 자랐는지 더욱 실감하게 되었다. 예전엔 잘 몰랐는데, 내 생활 습관은 물론이고 내 머릿속에 심어져 있는 뿌리 깊은 가치관마저 엄마의 것에서 뻗어져 나온 게 분명했다. 남편과 나의 ‘원래 이런 것’, ‘당연한 것’이 얼마나 사소하게 다른지 느끼면서 내 생활 습관에 엄마의 방식이 얼마나 깊게 배어 있는지 깨달았던 것이다. 그리고 그건 남편의 엄마와 나의 엄마가 다른 사람이라는 증거였다.


나는 나 자신을 좋아하는 편이라고 생각하지만, 내가 누군가에게 이 정도로 영향을 끼칠 수 있다는 걸 상상하면 어쩐지 걱정스러웠다. 나 자신이 못 미더운 동시에 남편에 대해서도 새삼스러운 물음표가 떠올랐다. 출산과 육아에 따르는 여러 가지 어려움을 우리가 ‘함께’ 이겨내기 위해서는 남편의 공감과 노력이 절실히 필요할 것이다. 여자는 몸 안에서 심장 두 개가 뛰는 열 달 동안 실질적이 신체의 변화로 아기의 존재를 차츰차츰 받아들일 수밖에 없지만, 남자의 체감 정도는 아무래도 그보다 낮을 것이다. 변화를 이해하고 알아갈 마음이 있어야만 아기의 탄생을 준비할 수 있으리라. 남편이 아기를 간절히 원하고 충분히 공부할 의지가 있는 게 아니라면 내 몸으로는 아기를, 정신적으로는 남편의 역할에 대한 요구를, 양쪽을 다 챙길 자신이 솔직히 없었다.


그는 내게 충분히 좋은 반려자이지만 과연 좋은 아빠일까? 적어도 아빠로서의 자신을 상상하고 가꿔보고자 하는 사람일까? 가끔 결혼을 앞둔 예비부부가 배우자에 대해 ‘좋은 부모’가 될 것 같다는 기대로 호감을 더하는 경우를 봤는데, 나는 연애하는 동안 그의 장점을 아주 많이 발견했지만 그를 아빠로서 투영해본 적이 없었다. 아마 남편도 마찬가지였을 것이다.



아무것도 약속되지 않은 미래, 적당히 낳고 기를 수는 없다 


요즘은 저출산이 큰일이라는데, 물론 내 주변을 둘러봐도 경제적인 이유가 크다. 집도 구하기 힘든 신혼부부들에게, 수익은 줄고 소비는 늘어나는 출산과 육아를 선택할 여유가 없는 건 당연하다. 요즘엔 '개인의 행복을 추구'하는 시대라 출산을 기피한다는 기사도 봤다. 그야 그런 이유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왜 육아를 개인의 행복에 포함시킬 수는 없는 걸까? 개인으로서 즐기고 싶은 삶과 육아가 병행될 수 없는 가치관적 이유와 구조적 이유 모두를 우리 사회는 생각해봐야 할 필요가 있을 것 같다.


개인적으로도 경제적 이유 외에 출산과 육아에 대해 걱정되는 부분은 산더미처럼 있다. 특히 직장 생활은 힘들고 어려운 일로 여기면서 육아와 집안일을 경시하는 풍조가 과연 내가 엄마가 될 때쯤 바뀌어 있을까? 돈을 벌어오는 남편은 출산 후 당분간은 돈을 소비하기만 해야 하는 내가 육아가 아닌 나 개인의 즐거움을 위해 무언가 소비한다면 그의 수익에서 그 부분을 기꺼이(당연하게) 공유해 줄까? 모성애가 충분히 발휘되지 않는 것에 대한 죄책감이 나를 관계의 약자로 만들지는 않을까? 그리고 이런 걸 고민해야 하는 세상에서 나는 스스로 나의 출산과 육아를 충분히 가치 있게 여길 수 있을까?


지나친 걱정일지도 모르지만 지나칠 수 없는 고민이기도 했다. 하지만 아기가 생기기 전에는 부모가 되기 위해 실질적으로 할 수 있는 노력에 대해 진지하게 검증하기 어렵다. 그렇다면 적어도 아기를 원하고, 그래서 좋은 부모가 될 준비를 할 의지가 있는 부부여야 아기가 찾아온 뒤 처음 겪게 되는 일들을 기꺼이 알아가고 겪어낼 수 있지 않을까.


적당한 마음으로는 아기를 낳을 수 없을 것 같다. 나는 좋은 반려자가 되기 위해 노력할 마음으로 결혼했지만, 엄마가 될 준비는 전혀 없었다. 결국 나로서는 잘 해내기 어렵다고 판단한 길이었다. 하지만 물론 남편은 어떤 생각을 하고 있는지도 중요했다. 결혼은 두 사람이 함께 삶을 설계하는 일이니 내 생각을 고집할 수는 없었다. 더구나 결혼 후에 이 문제로 남편 혹은 시댁과 논쟁하고 싶지 않았다. 연애 중 자연스럽게 결혼에 대해 생각하게 될 즈음, 그에게 아기에 대한 생각을 물었다.


“결혼하면 아기를 낳고 싶다고 생각해?”


그는 내 질문에 조금 당황하는 것 같았다. 아기를 낳고 싶은지 그렇지 않은지 아예 생각해본 적도 없다는 것이었다. 그저 자연스럽게 결혼을 하면 아기가 있는 그림이 머릿속에 있었다고 했다. 우리 한번 진지하게 생각해봐야 하지 않을까? 하고 물었고, 우리는 여러 번에 거쳐 꽤 긴 대화를 나눴다. 그는 결혼하면 당연히 아기를 낳는 것이라고 생각하긴 했지만, 특별히 아기를 원하거나 구체적인 미래를 고려해본 것은 아니라고 했다. 어설프지만 실제로 생길 수 있는 일들에 대해 상상하고 의논해봤다. 그리고 우리 두 사람이 원한다면 아기를 낳지 않는 삶을 선택할 수 있다는 것을 우리는 여러 차례의 대화를 통해 결정했다.


물론 우리 두 사람이 간절히 바라고 원하는 일이라면 기꺼이 어려운 벽을 넘고 노력했을 것이다. 꿈꾸었던 미래라면 혹 예기치 못한 아기가 찾아와도 기쁜 마음으로 그때부터 부모가 될 준비를 해나갈 수도 있었을 것이다. 나중에 어떻게 생각이 바뀔지는 모르겠지만, 아무튼 지금은 아기를 낳고 행복해질 자신이 없다는 것이 우리의 결론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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