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료 중반기에 접어들며
치료를 위해 우리는 매주 정기적으로 병원에 갔다. 처음 병원에 다닐 때는 보는 사람들마다 제이를 신기해했다. 워낙 품에 안정적으로 안겨 있어 심지어 이동장도 별 필요가 없는 제이를 보며, 무슨 고양이가 이렇게 강아지처럼 무릎 위에 올라와 있냐며 감탄하곤 했다. 진료실에 들어가도 제이는 별다른 항변 없이 순순히 선생님 손에 안겨 들어갔다. 뭣모르고 반항하는 아이보다 일찍 철든 아이가 더 아픈 손가락인 것처럼, 싫다는 소리도 없이 가만히 몸을 맡기는 제이의 모습 탓에 나는 매주 짧은 입원을 시킬 때마다 안타깝고 애틋한 마음을 어쩌지 못했다. 가끔은 여섯 시간 정도 입원시킬 뿐인데 어디에 멀리 떨어지는 것처럼 울컥 눈물이 쏟아지기도 했다. 날 엄마인 줄로 아는 이 착하고 순한 고양이를 혼자 입원시켜야 하다니… 하는 짧은 좌절이 매 치료 때마다 나를 덮쳤다.
하지만 제이가 고양이답지 않게 병원을 오가는 동안에도 사람 품속에 꼬옥 안겨 있던 건 애가 천성이 착해서가 아니라 그저 힘이 없어서 그랬던 것뿐이라는 걸 나중에야 알게 됐다. 항암치료가 제이의 몸속에 있는 종양 덩어리를 향해 얼마나 열심히 제 할 일을 하고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제이는 나름대로 사리분별을 할 만한 힘이 생기자 적극적으로 호불호를 표현했다. 평소에는 내 곁에 붙어 골골거리다가도 아침저녁으로 약 먹을 시간, 매주 병원 갈 타이밍이 되면 재빨리 눈치를 채고 침대 밑으로 쏙 숨어버렸다. 제이는 원래 사람이 안으면 몸에 힘을 쭉 빼고 흐물흐물해지는데, 병원에 가려고 제이를 안아들면 벌써 싫은 소리를 내며 격하게 발버둥을 치기도 했다.
병원에서 ‘제이가 너무 기운이 넘쳐 내일로 치료를 미뤄야 할 거 같아요’라는 연락이 오는 날도 종종 있었다. 그럴 때면 애가 살 만하구나, 싶으면서도 어차피 해야 할 치료인데 입원이 하루 늘어나는 일이라 안타깝기도 했다.
그렇게 치료가 중반에 이르자 처음 시작할 때의 고민은 많이 사라졌다. 저금은 포기했지만 치료비는 어떻게든 메우고 있고, 항암치료 자체가 사람의 경우처럼 힘든 것은 아니라서 제이는 어쨌든 점점 활기를 찾아갔고, 가끔 백혈구 수치가 아슬아슬하긴 했어도 아직은 큰 부작용은 나타나지 않았다. 흉관을 장착하느라 몸통 한쪽 털을 다 밀어버렸던 것도, 봄이 오니 조금씩 보드라운 새 털이 자랐다.
다만 주변에서 ‘제이는 많이 좋아졌어?’라고 물으면 문득 우리가 처한 상황을 되돌아보게 됐다. 더 나빠진 것도 아니지만 그렇다고 기쁘게 더 좋아졌다고 말할 수도 없었다. 이 길에는 완치가 없었다. 우리는 이 길의 끝을 알고 있었다. 당장은 안개가 끼어 뭐가 얼마나 멀리 있는지 보이지 않지만, 어디쯤엔가 필연적으로 호전과 재발이 남아 있는 길이었다.
제이가 점차 평소처럼 지내는 모습을 보면서, 그리고 제이는 좋아지고 있냐는 주변의 안부에 답하면서 나는 점점 알게 된 것 같다. 이 치료는 제이를 다른 평범한 고양이들만큼 건강하게 수명대로 살게 하기 위한 건 아니다. 아마 모든 항암치료에 해당하는 건 아니겠지만, 우리에게 이 치료에는 '성공' 같은 완전무결한 마무리는 없다.
하지만 적어도 25주의 치료를 받는 기간 동안, 그리고 그렇게 유예된 재발까지의 시간 동안, 우리는 1년 혹은 2년 넘는 시간을 더 함께 보낼 기회를 얻었다. 4개월령 길고양이였던 제이는 나와 함께 겨우 반 년을 함께 지내다가 림프종 진단을 받았다. 그때 제이를 떠나보냈으면 어땠을까, 너무 짧은 반려 생활과 너무 어린 제이의 묘생에 대해 나는 도무지 미련을 남기지 않을 길이 없었다. 만약 제이가 이미 나와 10년 이상 함께한 노령묘였다면… 나는 가끔씩은 제이가 무지개다리를 건너는 날에 대해 상상했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은 아니었다. 일러도 한참 일렀다.
처음에 항암치료에 대해 인터넷을 검색하고 선생님과 상담하는 동안 도저히 이해할 수 없었던 것 중 하나가 '어째서 항암치료를 해도 1년밖에 못 살아요?' 하는 점이었다. 의학적으로 명확한 설명이 없는 미래에 대해 여전히 의구심은 있다. 하지만 나는 그때부터 지금까지 시간을 들여 천천히 그 사실을 받아들이고 있다. 물론 기적을 바라기도 했고, 지금도 바라고 있다. 이 모든 문장이 무색하게 재발 없이 한 15년 후 늙고 능구렁이처럼 능글거리고 장난감을 보고도 심드렁한 게으른 노령묘가 되어 있다면 참 좋겠다. 하지만 기적이 일어나지 않아도 우리는 항암치료 덕분에 겨우 얻은 이 시간을 소중히 보내야만 한다. 누군가 '제이는 많이 좋아졌어?'라고 물어보면 좋아졌다고도 나빠졌다고도 대답할 수 없지만, 수많은 이야기를 삼키고 그저 '우린 괜찮아'라고 말할 수 있게 됐다.
준비 못한 이별과 오랫동안 준비한 예고된 이별 사이의 거리는 어느 정도일까. 그건 잘 모르겠지만, 적어도 우리는 함께할 반짝이는 시간과 이별을 준비하는 단단한 시간을 연장하고 있는 중이다. 그것만으로도 나에게 이 항암치료는 의미가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