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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곤 Aug 16. 2016

괜찮니? 제이야.

항암치료 19주차의 자각 

19주차 항암치료를 하러 갔던 날, 제이가 병원 문을 열고 들어서자마자 누구에게랄 것 없이 하악질을 했다. 제이가 내가 보는 앞에서 하악질을 마지막으로 한 건 둘째 고양이 아리를 입양해 집에 데려와 첫 대면한 순간뿐이었다. (그 후로는 서열에 눌렸는지 아리에게도 하악질을 한 적이 없었다. 그 전에도 마찬가지다.)      


이웃 언니가 이사 때문에 이동장을 빌려가서, 처음 쓰는 이동장을 사용했는데 평소와 다른 냄새 때문에 마음의 준비를 못 하고 온 걸까? 지난 주에 병원에서 뭐 안 좋은 기억이라도 있었던 걸까? 이전과 달리 병원 문을 열자마자 짜증을 내는 제이가 마음에 걸렸지만, 일단 치료를 해야 하니 제이를 병원 선생님 손에 맡겼다. 제이는 여전히 기분 나쁜 표정을 지으며 입원장으로 안겨 들어갔다.      


평소와는 좀 다르다 싶더니, 급기야 다음날 아침 병원에서 전화가 걸려왔다. 제이가 너무 심하게 치료를 거부해서 한 주를 미뤄야 할 것 같다는 것이었다. 제이를 데리러 병원으로 달려가자 하루 만에 얼마나 스트레스를 받았는지, 손만 대면 털이 폴폴 빠졌다. 가엾은 제이. 평소 차 뒷자리에 느긋하게 누워 있던 회장님 포스는 온데간데없이, 뒷자리 구석에 엎드린 채 개구호흡까지 하는 것이었다. 워낙 병원을 자주 드나들고 차를 자주 타서 최근엔 굉장히 여유 있게 오갔었는데…. 익숙해졌다고 생각해 마음을 내려놓는 순간, 그리 간단할 리 있느냐며 운명 같은 것이 묵직하게 나를 덮치는 듯했다. 당연했다, 이 작은 고양이에게 병원을 오가는 일이 스트레스가 아닐 리 없었다. 왜 표현해야만 깨닫는지.      


병원에서 돌아오는 길. 스트레스 탓인지 컨디션 저조.


집에 와서 살펴보니 예전에 치료 때문에 털을 깎아놓은 것이 이제 많이 자라서, 이번에 주사 놓을 뒷다리 쪽에 털을 다시 깎은 모양이었다. 살짝 빨갛게 피부가 드러나 보였다. 털을 너무 바짝 깎아 아팠던 걸까? 제이는 집에 돌아와서 어슬렁거리다 평소처럼 침대 위로 올라갔지만, 뒷다리에 손이 가까워지기만 해도 싫다는 소리를 내며 물려고 했다.      


제이의 행동이 달라지면 오만 가지 추측이 머릿속을 오간다. 하루, 이틀 전으로 시간을 돌려 평소와 뭐가 달랐는지, 어디가 잘못됐는지, 무슨 원인이 있어서 예민해졌는지 떠올려본다. 그 모든 게 이유일 수도 있고 하나도 맞추지 못했을 수도 있다. 이럴 때 정말, 제이에게 직접 물어보고 싶어진다.      


제이야, 괜찮아. 그렇게 싫었어? 언니가 있으니까 괜찮아.      


옆에 가만히 누워서 속삭이며 쓰다듬어주면, 제이는 거짓말처럼 사르르 눈을 감고 골골거린다. 다행히 집에 오자 제이는 금방 안정을 찾아 잘 먹고 잘 놀고, 내 무릎 위에서 잠들기도 했다. 새삼 또 깨닫는다. 제이가 얼마나 작고, 어리고, 나의 보살핌이 필요한지를.      


내 품으로 자꾸 안기는 제이


팔베개를 하고 잔다


그나저나 다음 주에는 치료를 잘 받아야 할 텐데. 아무리 싫어도 그 치료 덕분에 지금 이렇게 팔팔하게 고집부릴 수 있는 거야, 알겠니? 다리 네 개를 쭉 펴고 핑크색 젤리를 뽐내며 잠든 제이에게 짐짓 으름장을 놓아본다. 이제 절반 훨씬 넘게 왔어, 그리고 실제로 많이 건강해졌잖아. 


병원에서는 선생님이 점점 제이의 사나움 탓에 치료에 어려움을 호소하셨지만, 막상 집에서의 제이는 자꾸만 아기처럼 굴었다. 내 베개 위로 올라와 동그랗게 말아 누운 몸을 내 뺨에 바싹 붙이고 자는가 하면, 아침에 일어나 보면 이불 속에서 내 팔에 팔베개를 하고 있을 때도 많았다. 덕분에 입속에 들어간 털을 뱉어내는 걸로 하루를 시작해야 했지만, 나를 엄마인 줄 아는 것 같은 제이의 어리광이 내겐 애틋하기만 했다. 이 항암치료, 끝까지 잘 할 수 있을까? 그런 제이를 보고 있으면 자꾸 마음이 약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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