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 각희의 우물

ㅡ 또 다른 만남

by 달 가는 물고기

응봉산에 커다란 만월을 보며 술잔을 기울이던 현림은 연신 이마를 쓸었다.

아까부터 누가 욕을 하는지. 귀가 몹시도 가려웠다.

그러나 현림은 아무렇지 않은 듯 다시 술잔을 집어 들었다.


현재 그를 불편하게 하는 것은 돌아설 때 무겁게 잡아끌던 여인의 손끝이었다. 어디에도 마음을 남긴 적이 없으니, 분명 누군가의 집요한 시선이었을 것이다.

망자들만 득실 한 구천에 이승에 미련이 없는 자는 없었다.

삶에 대한 집착이나, 살았을 때의 원이나 한을 품은 이들이 대다수였다. 그러나 그녀는 달랐다.


현림은 뭔가 중요한 것을 두고 온 것처럼 찜찜한 기분을 떨쳐 낼 수가 없었다. 그는 벌떡 일어나 들고 있던 술잔을 붉은 달을 향해 집어던졌다.


‘제발 저 좀 도와주십시오.’


아무도 없는 허공에 대고 처량 하게 우는 생령귀에 대한 소문은 이미 구천에 파다하게 퍼져있었다. 그녀의 우렁찬 곡 소리는 위로는 염라에서부터 구천의 아주 깊숙이 사는 아둑시니들까지도 귀를 틀어막았다.



“시끄러워 못살겠구나. 저 생령귀 입을 막을 수만 있다면 말이네....”



둘 이상의 저승사자들이 모이면 조용히 내기가 오갔다. 그러나 아무도 선 듯 나서는 이들은 없었다. 그럴 수박에. 그녀에게는 함부로 다가갈 수 없는 이유가 있었다. 바로 그녀 곁에 있는 우물 때문이었다.

그것은 요귀든 악귀든 망령이든 영靈과 혼魂을 가리지 않고 빨아들이는 어둠의 구멍이었다. 아무리 망자를 이끄는 사자들이라 하나 각희의 우물은 두려워했다.



‘아서라. 그 우물에 가까이 다가갔다 간 남은 영혼마저 사라질라. 그러니 저 요귀들 사이에서도 저리 버티고 살아 있는 것이 아니냐.’


‘쯧! 어쩌다 생신(살아있는 몸)을 잃고 혼백만 들어왔을꼬.’


‘거기다 기억도 없어서 지 몸이 어디 있는지도 모른다면서?’


‘그것뿐인가? 명부조차 없으니 알 방법이 없다니까.’


‘내 죽어서 생령귀는 또 처음이라. 도대체 어떤 일을 겪으면 생령귀가 되는지 알고 있어?’


‘분명 어떤 무서운 저주를 받았을 게야.’


‘그러니 염라대왕도 가만히 있는 거 아니겠는가. 악귀와 다름없는 생령귀를 잘못 다루면 어떻게 되겠나.’


‘답이 없지. 게다가 명부조차 없으니 골치 꽤나 아프겠지. 쯧쯧.’


‘그런데 참 아깝네. 아까워. 그냥 두기에는 너무 어여쁘지 않은가.’


‘저 우물에 빠져도 좋으니, 저 고운 살결 한 번 만져 봤으면 좋겠구먼.’



그리고 입에 담기 어려운 음담패설이 이어졌다. 현림은 조용히 듣고 있었다. 그도 궁금한 것은 마찬가지였다. 다들 두려워하는 그 우물 덕에 자신이 좀 편해졌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소문의 그녀를 찾아간 것은 그냥 단순한 호기심이었다.


흑흑흑.

뿌연 안갯속에서 우물 옆에서 풀어헤친 머리로 홀로 울고 있는 여인은 저승사자인 그가 봐도 가여울 정도로 처량해 보였다. 그녀가 숨을 내 쉴 때마다 뿌연 연기가 주변을 가득 매웠다.


현림은 잠시 미간을 찡그렸다. 짙은 여인의 살향이 강하게 그의 후각을 자극했다. 픽하고 웃음을 터트렸다. 마치 맹수 앞에 피 냄새를 흘리는 산양처럼, 각희의 사향은 유혹적이었다.


문득 그녀가 얼굴을 들었다. 어둠뿐인 하늘을 향해 고개를 든 그녀의 매끄럽고 뚜렷한 이목구비가 은은한 안갯속에서 고요히 드러났다. 숨을 내쉴 때마다 고통스러운 한기가 그녀의 입에서 흘러나왔다.


달려드는 요귀들 때문에 몸은 성한 곳이 없었다. 걸치고 있는 옷은 너덜너덜하고. 은은하게 빛나는 하얀 살덩이에서는 붉은 피가 흘렀다. 흘린 피로 인해 더욱 요귀들이 밀려들었으니. 그녀가 고통은 현림이 보기에도 안타까울 정도였다.


게다가 그들을 피해 도망이라도 가면, 얼마 되지 않아 각희는 다시 우물 속에서 기어 나왔다. 머리를 풀어헤친 여인이 우물에서 기어 나오는 모습은 섬뜩할수록 기괴했으나, 그의 눈에는 자꾸 봐도 질리지 않을 정도로 자극적이고 재밌었다.


각희의 우물.

벗어나려 아무리 애를 써도 절대로 벗어날 수 없는 족쇄처럼 각희는 우물을 맴돌았다. 소문으로는 그녀가 우물을 무기로 구천을 뒤흔든다 했지만, 현림이 보기에는 마치 우물이 그녀의 목에 줄이라도 매달아 따라다니는 것처럼 보였다.


쯧쯧.


현림은 탄식하며 고개를 저었다. 차라리 죽어 불지옥에 떨어지는 것이 낫지. 살아있는 영혼이 감당하기에는 너무 가혹해 보였다.


맛있어 보이는구나 각희야. 다리 하나 떼어주련. 끈적이고 불쾌한 목소리에 현림은 참지 못하고 귀도를 휘둘렀다. 절대 의도한 것도, 한참 여인의 몸을 탐하고 있는 저승사자를 향한 것도 아니었다. 그가 작정하고 베었다면 그 둘이 절대 온전할 리가 없었으니 말이다.



“저 좀 살려 주십시오.”



바짓가랑이를 붙들고 늘어지는 그녀의 눈을 마주한 것은 그때였다. 검은 눈망울에는 짙은 공허가 아득했다. 눈물 대신 찬 서리 같은 얼음을 떨어뜨리며 애원하는 여인의 형상은 흔히 듣는 요망한 생령귀라기보다 선량한 망자와 다르지 않아 보였다.


현림은 미간을 구긴 채, 눈을 감았다. 각희가 그의 마음에 작은 돌부리처럼 남았던 것은 그때부터였다. 저승 각시들을 너무 멀리 한 탓일지도 몰랐다. 오랜만에 아랫도리에 불처럼 모이는 기분이 그를 몹시 불편하게 만들었다. 때문에 저도 모르게 불쑥 나온 말이었다.



“옷이라도 벗고 가 보렴. 의령수의 마음이 흔들릴 수도 있으니.”



고요했던 현림의 마음에 잔잔한 파동이 일어났다. 불현듯 그는 그날을 떠올렸다. 단영, 오늘처럼 붉고 커다라나 만월의 밤에 만났던 그 아이는 어떻게 지내고 있을까. 저승과 이승이 흐르는 시간이 다르니 지금쯤 많이 컸으려나.






각희는 우물에서 간신히 빠져나왔다. 땅에 닿는 촉감 하며, 시원한 밤공기가 역시 꿀맛같이 달았다.

이곳은 구천이 아닌 진짜 사람들이 사는 세상이다.


‘역시 개똥 밭에 굴러도 이승이 좋다는 말은 거짓이 아니야.’


그녀는 천천히 치마를 털어내며 주변을 살폈다. 제일 먼저 눈에 들어오는 것은 대낮같이 밝은 달빛과 그 아래 쑥대밭으로 변해버린 집안이었다. 누가 봐도 귀신이 나올 정도로 오싹하고 을씨년스러웠다.


커다란 지붕 밑으로 칸칸이 방문이 있고, 반들반들하게 손질이 잘 되어 있는 대청에는 조금 전까지 사람이 살았던 궤적들이 그대로 남아 있었다.


그러나

귀해 보이던 세간 살이 들은 모두 엉망이고, 사람이 살지 않는 곳은 음산한 기운이 가득 모여 있었다. 그녀의 기대와 달리, 풍비박산이 된 집은 구천과 다를 것이 없어 보였다.

각희는 어깨를 축 늘어뜨리고, 툇마루에 걸터앉아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하늘을 꽉 채울 듯 너무나 큰 만월의 밤. 보아하니, 집주인이 살던 곳은 이미 풍비박산이 난 것 같고, 이곳에 남아 있어 봐야 좋을 게 없어 보였다. 이곳이 어디고 누구의 집인지 알 수 없으니 막막하기만 했다.


‘도대체 여기가 어디야?’


킁킁 냄새를 맡으며 집안을 돌아다니던 그때였다. 머리 위로 둔탁한 무언가가 떨어졌다. 그 바람에 가냘픈 몸은 바닥에 내동댕이 치듯 땅바닥에 처박혔다.


아이코!


각희는 얼굴을 부여잡고 땅바닥을 데굴데굴 굴렀다. 얼마나 아픈지, 골이 흔들리고, 입이 돌아간 것 같은 통증이 등줄기를 타고 흘렀다. 차원이 다른 생경한 육체적 통증에 비명도 내지를 수가 없었다.



“음?”



젊은 남자의 낮고 위협적인 음성이 머리 위에서 들려왔다.



“도대체 어떤 놈이야?”



각희는 벌떡 일어나 눈을 부릅떴다. 스산한 바람이 훅하고 그녀의 몸을 쓸고 지났다. 목덜미를 스치는 선듯한 기운에 각희는 몸을 움츠리며 고개를 들었다.


커다란 만월을 등지고 선 남자의 도포자락이 바람에 흔들리고, 얼굴은 밤의 어둠 탓에 그늘져 형태가 뚜렷하게 보이지 않았다. 다만, 넓은 흑립과 푸른 옥색 비단옷을 입은 남자가, 그녀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이곳에 함부로 발을 들이다니 겁 없는 잡귀구나.”



잡귀?


미처 대거리할 새도 없이 커다란 남자의 몸이 그녀를 향해 불쑥 내려왔다. 순식간의 일이었다. 오히려 당황한 것은 각희였다. 온몸에 소름이 가시처럼 돋아났다.


‘인간이 아니다’


거침없는 남자의 손이 그녀의 얼굴을 붙잡고 이리저리 돌려본다. 미처 피할 새도 없었다. 아귀힘이 대단한 자였다. 남자의 강철처럼 무겁고 단단한 손길이 각희의 목을 졸랐다. 차가운 숨이 얼어붙는 듯했다.


손아귀에서 벗어나려 바르작거리자, 그는 각희의 얼굴을 더욱 가까이 끌어당겼다. 피를 머금은 듯한 얇은 입술과 피처럼 붉은 눈빛이 그녀의 눈앞에 나타났다.



“왜, 왠 미친, 놈이..켁. 켁.”



눈앞에 있는 자가 사람이든 악귀든 저승사자든 상관없었다. 각희는 있는 힘을 다해 욕설을 내뱉었다. 그녀의 몸부림에 당황한 듯 남자의 손에서 잠시 힘이 빠졌다. 그 순간을 놓치지 않고, 그의 품에서 벗어난 각희는 연거푸 기침을 토해 냈다.



“대답해라, 어떤 녀석의 사주를 받았지?”



남자의 목소리와 함께 사나운 맹수가 포효하는 것처럼 마른하늘에서 천둥이 쳤다. 각희는 어깨에 힘이 빠지는 기분을 느꼈다. 인간 세상에 나와 처음 만난 이가 사람이 아닌 정체불명의 존재라는 것에 크게 낙담했다.



“대체 누구 시..”

“쉿! 질문은 내가 했으니, 너는 답을 해야지?”



남자는 소곤거리듯 작게 그녀의 말을 잘랐다. 머리카락이 쭈뼛서고, 오금이 저렸다. 각희는 이곳에서, 이 남자에게서 달아나고 싶었다. 그렇지 않으면...



“그것이...”

“언제부터 잡귀들이 내 집을 이토록 아무렇지 않게 드나들었는지 무척이나 궁금하군. 너를 이곳으로 보낸 이가 누구이며, 어디서 왔고 어떻게 들어왔지?”



뭔가 말을 하려 했으나, 그마저도 그의 말에 가로막혔다. 애초에 그의 질문은 각희의 대답 따위는 필요 없어 보였다.



“당장 이실 직고 하지 않으면, 지금 그 자리에서 영혼 째 먹어버릴 것이다.”



그는 입을 다물고 고민하는 그녀를 보며 득달했다. 각희는 남자의 말이 허언이 아님을 알았다. 가늘고 여린 목 가까이 남자의 길고 날카로운 손톱 끝이 서늘하게 다가왔기 때문이었다.



“그래도 제법 내 기운을 버티는 것을 보니 떠도는 새타니(어린 악귀)쯤은 되는 요귀구나.”



이 자는 분명 악귀다. 악귀들이라면 구천에서 수도 없이 보아온 그녀였다. 제가 가진 우물을 두려워하는 존재들. 그런데 눈앞에 남자는 분명 그들과 달라 보였다.


잠시 호기심으로 그의 붉은 눈빛이 사라졌다. 반듯한 이목구비에 얇고 지적인 입꼬리가 마치 꿈을 꾸고 있는 듯한 얼굴이었다. 악귀라고 하나, 너무나 정직하고 곧은 선비의 인상이었다. 각희의 생각을 읽은 듯 그는 마당 옆에 작게 자리 잡은 우물에 시선을 던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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