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한 나라 먼지계

빨강머리와 주근깨 소녀의 이야기

by 달 가는 물고기

‘나는 먼지처럼 살거야.’

라고 말했을 때 나는 그녀를 보지도 않고 웃었다. 아무 쓰잘데기 없고, 오히려 매일매일 털어내야 하는 수고스러움을 가지고 있는 것이 무엇이 좋아서?

“왜? 그렇게 털어내도 어디든 붙어 있잖아. 그리고 누구든 관심을 두지도 않고..”

아무렇지 않게 창밖을 꿈꾸듯 바라보며 대답하는 그녀의 말에 나는 고개를 크게 끄덕였다.

처음으로 어처구니없는 그녀의 말이 맞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먼지처럼 사는 것은 어떻게 사는 것인데? 그녀에게 물었다.

"사실 우리가 먼자와 다를게 뭐야?"

"그게 무슨 괴상한 말이야!"

"그럼 너는 먼지가 아니라고 생각해?"

"내가 먼지 일리가 없잖아."

"증거를 대봐!"

갑자기 창문에 걸터 앉아 있던 그녀는 풀쩍 뛰어 내려 책을 보고 있는 내 어깨에 척 손을 올렸다.

"음 그건 일단 나는 살아 움직이고 있고, 이렇게 책도 보고 있고, 밥도 먹고 있고, 또.."

"또오?"

안경너머 보이는 그녀의 주근깨가 매우 거슬렸다. 눈살을 찌푸리는 나와 달리 그녀는 나의 대답을 재촉하고 있었다.

"도대체 내가 왜 먼지가 아니란 것을 너한테 증명해야 하는 건데?"

"그럼 너는 책을 왜 보는거야?"

"그야 물론 책을 좋아하니까?"

"그럼 책을 좋아하는거야? 아니면 그안의 내용이 좋은거야?"

"그게 중요한거야?"

"어떤거냐에따라 네가 먼지가 될 수 있는지 없는지가 결정될거야!"

"나는 도대체 네가 무슨 말을 하는지 도통 모르겠어."

그녀는 안경을 바로 고쳐쓰고는 짐짓 근엄한 표정을 지었다. 도대체 왜 내가 먼지가 되어야 하는지. 그녀는 알수없는 말만 늘어 놓았다.


나는 고교시절 도서부 학생이었다. 내가 도서부에 입부한 이유는 그저 책이 좋아서였다. 유일하게 지원자로서 입부한 단 한 명의 여학생, 당시 도서부는 신청하는 아이들이 없어서 각 반 담임선생님들이 따로 정했기 때문에 그 때 나의 존재는 특별한 것이 아닌 ‘이상한’ 것이었다. 지금도 기억을 하고 있다. 신청서를 들고 도서관 문 앞에 선 나를 보는 선배들의 그 환호성, 하지만, 여기서 분명히 해야 하는 것은 나는 단순히 ‘책’을 좋아하는 것이지 꼭 ‘읽는 행위’를 말하는 것은 아니라는 것이 포인트다. 나는 그저 책이 있는 공간을 좋아했을 뿐이었다. 점점 시간이 지나면서 읽는 것도 좋아하게 되었지만 말이다.

"너는 꼭 네가 먼지가 될 수 있는지 없는지 알아야 해!"

"그럼 너는 먼지가 될 수 있어?"

"나? 당연하지. 나는 열심히 먼지처럼 눈에 띄지 않게 살고 있어."

나는 정말 큰 소리로 웃었다. 장신의 키에 주근깨가 덮힌 얼굴에 안경까지 아무리해도 눈에 띌 수밖에 없는 비주얼.

"아마도 너보다는 내가 먼지처럼 살 수 있을것 같은데?"

나는 웃으면서 말했다.

그리고 우리의 대화는 그 이후로 이어지지 못했다. 우리는 조금씩 멀어졌고, 그 아이는 곧 다른 무리와 어울렸다. 물론 그 무리들과도 나는 친해지지 않았다. 쉬는 시간에는 어김없이 작고 볼품없는 학교 도서관으로 달려갔다. 그 사이 무리들은 어느 덧 반 아이들의 중심이 되었고, 그 아이들의 행동에 반 분위기는 좌지우지되었다. 그런 분위기 속에도 나는 여전히 그들 존재 밖에 있는 그저 쉬는 시간만 되면 사라지는 ‘이상한 아이’였다.


어느 날 그 사건이 터졌다.

어떤 친구의 수학 문제집이 사라졌다. 그런데 문제는 그것이 하필 그녀의 책상 서랍에서 발견 된 것이었다. 문제집을 잃어버렸던 아이는 그저 자세한 내막 따위는 알 필요 없다는 듯 울면서 아니라고 말하는 그 아이를 도둑으로 몰았다.


그리고 그 사건은 그녀와 내가 다시 가까워지는 계기가 되었다.

수업이 끝나고 도서관 청소가 끝난 뒤 교실에 들어와 보니 그녀가 책상에 엎드려 울고 있었다.

“왜 울어? “

그녀가 눈물젖은 얼굴을 들었다.

“너도 내가 도둑이라고 생각해?”

“글쎄…….”

"글쎄라니, 그렇다는거야 아니라는거야?"

"그럴수도 있고 아닐수도 있지."

“다들 그러잖아. 내가 훔쳤다고, 나도 그게 왜 내 서랍에 있는지 모르겠어. 하지만 절대 훔친 거 아니거든.”

“그럼 아니라고 해. 친한 친구들인데 들어 주겠지.”

“아무도 내 말을 안 믿어...너도 내 말 안 믿지?”

“왜 그렇게 생각해?”

“그 애들은 내말은 안 믿거든..”

“나는 그 애들이 아닌데. 네가 아니면 아닌 거겠지.”

순간 그녀의 얼굴에서 눈물이 사라졌다. 그리고 이유를 내게 물었다.

“일단 훔치는 걸 내 눈으로 보지도 않았지만. 너처럼 다른 애들 눈치 보는 애가 설마 그런 어처구니없는 짓을 했을 거라는 생각도 안 해. 너 그냥 그애들 한테 밉보인 거 아냐?”

"그랬을까? 나는 그냥 먼지처럼 살고 싶었을 뿐인대."

그 엉터리같은 먼지 이야기가 다시 시작됐다.

"도대체 그 '먼지같이 사는 것'에 왜 그렇게 집착을 하는거야?"

"그렇잖아 ? 똑같은 옷에 똑같은 머리 모양에 똑같은 책을 보며 수업을 하잖아."

"그런데?"

"나는 세상의 주인공이 되고 싶은데, 실제로는 나의 본모습을 지워내는 것을 배우고 있는 같아서."

"그것이 먼지같이 사는 것과 무슨 상관계가 있는거야?"

"그냥 먼지같이 사는 법을 배우면 나를 잃어버리지 않아도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어서 말야."

"혹시 이런 이야기를 그애들한테도 했어?"

"아니. 이런 이야기를 그애들한테는 할 수 없었어. 나는 그냥 그애들 옆에 묻어 있고 싶었을 뿐이지."

아마도 그런 것 같다고 대답을 했다. 그리고 그녀의 수다는 끝도 없이 터져 나왔다. 나는 한동안 서서 그녀의 이야기를 모두 들어주었다.

"너는 아마 먼지계의 주인공일꺼야."

그녀가 나를 보며 말했다.

"자꾸 이상한 소리만 하는구나"

듣는 둥 마는 둥 나는 또 책을 뒤적 거렸다. 서운했다고 말하는 소리가 들렸다. 입학하고 처음 만난 짝꿍이었는데 매일 쉬는 시간이면 사라지고 이상한 책을 읽는 별난 아이라고 했다. 그리고 무엇보다 쉬는 시간 말 할 사람이 없어서 외로웠다고 나에게 털어놓았다. 남보다 큰 키와 안경때문에 따돌림을 당한 경험이 있는 그녀는 눈에 띄지 않게 사는 법을 배우고 싶다고 털어놨다.

“그런데 너는 누군가 옆에 있으면 눈에 띄지 않게 살 수 있다고 생각해?"

나는 큭큭대며 웃었다.

그녀는 함께 웃으며 남은 눈물을 훔쳤다.

"당연하지 누군가에게 묻어 있는 것이 가장 좋은 방법이야."

그게 뭐냐며 나는 실소를 터뜨렸다. 정말 이상하다 이상한 아이였다.

“아, 근데 내일부터 학교에 어떻게 다니지?”

그녀는 또 깊은 한숨을 내 쉬었다. 불현듯 그녀의 먼지같이 사는 삶에 동참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 어떻게 다니긴, 내가 내일부터 도서관 당번 좀 줄이지 뭐...하하”

“다른 애들이 이상하게 볼 거야. 너도.”

"아마도 빨강머리 꼬맹이하고 키가 큰 주근깨가 같이 다닌다고 수근 대겠지?"

갑자기 안경 너머로 보이는 그녀의 눈에 수심이 가득 올라왔다. 그리고 무한 긍정의 눈빛!

“그런 거 신경 쓰지 말자. 아마 모든 애들이 다 그렇게 생각하는 건 아닐 거야. 그 애들이 그렇게 몰아가는 거지."

"그럴까?"

정말이지 이 아이는 덩치에 맞지 않게 작은 꼬맹이 같았다. 안경사이로 보이는 큰 눈망울 위로 눈물이 차올랐다. 주근깨 사이사이로 그녀의 눈물이 계곡처럼 흘러내렸다.

"자! 이상한 나라 먼지계에 들어온 것을 환영해!"

나는 두팔을 벌리며 말을 했다.

"오! 고마워!"

그녀는 긴 두팔로 나를 꼭 껴안았다.

그렇게 우리는 단짝이 되었다. 그리고 우리는 진심으로 ‘먼지처럼 사는 것’을 꿈꾸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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