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덕위의 빵집

by 달 가는 물고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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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리버의 빵집은 바다가 보이는 언덕 위에 자리 잡고 있었다. 제이크가 그의 빵집에서 일을 하게 된 계기도 바다가 보이는 언덕이 좋았기 때문이었다. 마리버는 매일 식빵 두께만한 바게트를 굽고, 깊고 넓은 볼에 신선한 채소와 토마토, 올리브, 각종 치즈를 얹은 샐러드를 만들었다.

그가 매일같이 같은 빵을 굽고 같은 샐러드를 만드는 이유는 오전 11시 반, 매일 같은 시간에 찾아오는 그녀 때문이라고 했다. 그녀는 바다가 내려다보이는 창가에 앉아서 한참을 물끄러미 바다만 바라보다가 빵을 먹기 시작했다. 마리버는 그때 보이는 그녀의 옅은 미소를 좋아했다고 말했다. 짙은 인디고색 눈동자가 맑은 바다색으로 빛나고, 그녀 주변의 어두운 아우라가 한순간 사라진 것처럼 보였다고 했다.

"지금도 내가 그 날 수에게 커피를 가져다 준 걸 제일 잘 한 일이라고 생각해!"

라고 말하고는 그리운 듯, 유리창 너머로 비가 내리고 있는 바다를 한참을 바라보고 있었다. 제이크는 한 숨을 쉬었다.

‘그녀는 마리버를 기억이나 하고 있을까?’

나이가 들고 관절이 좋지 않은 마리버를 대신해서 제이크도 매일 아침 제일 먼저 빵을 굽고 커피를 내렸다. 카페 안이 온통 빵냄새와 커피 냄새가 진동할 무렵 현관 방울 소리가 울리며 그녀가 들어왔다. 금방 말린듯한 머리와 시원한 민트향은 그녀의 큼직한 이목구비와 참 잘 어울리는 향기라고 제이크는 생각했다.

그녀는 항상 바다가 정면으로 보이는 창가에 자리를 잡았다. 앉아 있는 뒷 모습은 그 하나로 그녀의 성격을 말해주는 듯 했다. 곧게 선 어깨와 운동으로 다져진 탄력있는 근육, 햇빛에 그을린 가무잡잡한 피부가 매력적인 여성이었다.

팔짱을 끼고 정면으로 바다를 노려보는 그녀의 모습, 그녀의 불편한 심기를 그대로 보여주고 있었다. 창문너머로 보이는 파도가 심상치 않았기 때문이었다. 지난밤 곧 태풍이 몰려올 것이라는 새벽 라디오방송을 제이크는 기억해 냈다.

"바다가 심상치 않네요."

제이크가 수즙게 말을 걸었다.

"오늘이 벌써 며칠째인지 모르겠어요."

그녀가 바다를 바라보며 대답을 했다.

그녀는 매년 여름에 이 바다에서 서핑을 했다. 지난번 사람들과의 대화를 할 때 언듯 들리기로는 하는 일을 접고 이곳에 와서 서핑 관련 일을 하고 싶다는 말을 들었다. 제이크는 바다와 그녀는 잘 어울린다고 생각을 했다. 굽이치는 파도를 타는 그녀의 모습을 상상을 했다. 그녀가 부서지는 파도를 뚫고 나오는 순간 제이크의 심장이 제동이 풀린 듯 쿵하고 움직였다.

일년 중 여름에만 지나가듯 보고 지냈을 때는 그의 생각은 단순했다. 그저 저런 도시적이고 유쾌한 여자와 만나봤으면 좋겠다라는 바람에 옷깃스치듯 짧은 생각들이었다. 그런데 지난달부터 그녀는 매일 이 빵집에 출근 도장을 찍고 있었다.

무엇이 그의 마음을 움직였을까. 단순히 짧게 생각하고 지나가던 순간들을 회상했다. 분명 그것때문만은 아니었다. 만남의 횟수가 잦아지면서 그녀가 이곳에 머물기를 그 누구보다도 간절했다. 그냥 그녀의 모든 것이 좋았다. 호탕하게 웃는 모습이라던가 커피를 마실때 보이는 검음 실루엣 너머 반짝이는 햇살까지. 그녀는 그가 이곳에서 가장 사랑하는 풍경 중 하나였다.

'이봐요!'

'아얏'

그녀의 손가락이이 멍하게 천장울 보고 있는 그의 팔을 꼬집었다.

그는 너무 놀라 가뜩이나 큰 눈이 더 커져서 그의 호박색 눈동자가 더욱 투명하게 보였다.

'무슨 생각을 그렇게 해요! 아침부터 날씨가 너무 않좋네요. 바다에 나가긴 틀린 것 같아요. 오늘은 빵에 에그후라이 하나만 얹어 주세요. 아. 그리고 커피는 먼저 주실래요?'

빠르게 말하고는 그녀는 바다쪽 자리가 아닌 빵굽는 주방과 마주 보는 테이블에 털썩 앉았다. 그리고 얼빠져 서 있는 제이크를 턱을 괴고 빤히 바라보았다. 그녀의 까만 눈이 도전적으로 빛이 났다. 언제나 바다를 보고 있는 그녀의 뒷모습만 익숙했던 그에게 지금의 전투적인 정면의 상황은, 마치 오페라가 시작되기 직전 무대에 선 프리마돈나가 된 기분이었다. 손이 분주해 지고 얼굴은 벌겋게 달아 올랐다.

“제이크라고 마리버 아저씨가 부르는 걸 들었어요. 여기서 일한지는 얼마나 됐나요?”

싱긋, 두손을 얼굴에 모으고 그녀는 제이크에게서 시선을 거두지 않았다.

“올해로 만 삼년째에 되는 것 같습니다만”

상쾌한 민트향이 진하게 그에게 전해졌다. 그녀의 향기가, 그녀의 시선이 그를 꼼짝 할 수 없게 구석을 몰아가고 있었다. 갓 볶은 커피를 갈고 있는 손이 떨렸다. 제이크는 대답을 하자마자 크게 심호흡을 하고 커피 내리는 것에 집중을 했다.

“저는 마리버 아저씨 빵을 정말 좋아해요. 여기에 살고 싶다라고 결심한 이유 중에 이 빵집도 들어 있을 정도로. 그리고 당신이 내린 커피도.”

열심히 움직이던 제이크의 손이 멈췄다. 아니 움직인다고 느꼈던 그의 세계가 멈췼다. 갑자기 옅은 바람이 불기 시작했다. 문틈으로 들리는 세찬 파도소리와 그녀에게 풍기는 민트향이 거세게 그를 향해 내리쳤다. 그는 그렇게 그녀가 만든 바다에 빠지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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