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름

ㅡ 기억 ㅡ

by 달 가는 물고기

─ 찰칵! 플래시 터지는 소리와 함께 그의 카메라에 그녀가 각인 됐다.


사진을 전공하던 그는 캠퍼스 안에서 닥치는 데로 셔터를 눌렀다. 그 때 카메라 렌즈안에 들어온 한 여자.


부스스한 단발머리에 작고 동그란 얼굴, 그와 대조되는 육감적인 붉은 립스틱. 그녀는 친구와 함께 꽃을 배경으로 사진을 찍고 있었다. 그녀가 미소를 지을때마다 찰칵! 그는 본능적으로 셔터를 눌렀다.


얼마나 지났을까?

화사하게 핀 벚꽃 사이로 붉은 태양이 지고 있었다.

갑자기 그의 시야에서 그녀가 사라졌다.


미친 듯이 인파를 헤집으며 그녀를 찾았지만, 찾을 수 없었다. 다음날도 다음날도 캠퍼스 안을 이잡듯 뒤지며 찾았지만 그녀는 어디에도 없었다.


그녀는 그렇게 그의 안타까운 기억으로 낡은 카메라와 함께 사라졌다.


세월이 흘러,

20대 중반의 훤칠한 청년으로 성장한 그의 아들은 지하실에서 아버지의 유품을 정리하고 있었다.

한쪽 구석, 상자들을 쌓아 올린 맨위에 작은 카메라하나가 뽀얀 먼지를 그대로 맞은 채 덩그러니 그를 보고 있었다.


낡은 수동식 필름 카메라. 그 필름 안에는 어떤 것들이 찍혀 있을까? 어렵게 현상한 필름 안에는 한 여자의 사진이 잔뜩 찍혀 있었다.


아버지가 사랑했던 사람? 한 번도 들어본적이 없었다. 사진 속에서 환하게 웃고 있는 미지의 여인, 볼수록 빨려드는 그녀가 그는 너무 궁금했다.


‘어떻게 찾는다?’


일단 아버지 대학 앨범부터 찾아보기로 했다. 1983년 전 후, 졸업 앨범을 모두 뒤졌지만, 어디에도 그녀는 없었다. 실망한 그는 그대로 포기한 채 사진 속 여인을 잊어버리기로 했다.


그도 사진찍는 것을 좋아했다.

벚꽃이 활짝핀 어느 봄날, 그는 아버지의 낡은 카메라를 들고 근처 공원을 걸었다.


운동하는 사람들, 산책하는 사람들,

사진 찍는 사람들,

그는 보이는데로 셔터를 눌렀다.



그러나 한곳에 시선을 뺏긴 그는 움직일 수 없었다.

카메라 렌즈 너머로 보이는 한 여자.

부스스한 단발머리에 붉은 립스틱, 그녀는 화사하게 웃으며 카메라를 든 친구에게 포즈를 취하고 있었다.


‘그여자다.!’

‘어떻게 이런 일이..’


그녀는 방금 낡은 사진 속에서 튀어 나온 사람같았다.

놀랍도록 비슷한 외모. 입고 있는 옷, 포즈까지.

그는 그녀에게 달려갔다.


"잠시만!"


다짜고짜 그녀를 붙잡았다.


" 초면에 실례합니다만 당신이 꼭 봤으면 하는 사진이 있습니다"

그녀는 한참 그를 요리조리 뜯어 보다 갑자기 큰 소리로 웃기 시작했다.


"저도 그쪽에게 보여줄 게 있는데 우리 언제 만날래요?"


다음날 오후에 우리는 다시 만나기로 약속을 했다.

그녀의 빨간 입꼬리 옆으로 다시 붉은 태양이 지고 있었다.

과거 언젠가 보았던 기억 혹은 잔상? 그는 매우 익숙한 느낌을 받았다. 데쟈뷰.


다시 만난 그녀는 참 귀여우면서도 관능적인 분위기를 가진 여인이었다.


그녀는 쇼파에 앉자마자 한 장의 낡은 사진을 보여주었다.

사진 속에는 그녀를 향해서 셔터를 누르고 있는 자신이 있었다. 그가 아니다.


사진 속 여자를 찍고 있는 아버지였다.

사진을 보는 그의 눈은 커질 수밖에 없었다.


"나는 사진 속에 있는 남자가 튀어나온 줄 알았어요."


그 역시 그녀에게 한 장의 낡은 사진을 보여주었다.

사진 속 시선들이 사진 밖으로 애틋하게 이어져 있었다.


그녀는 사진 속 여자의 막내 딸이라고 했다.

얼마 전 엄마가 돌아가셨을 때, 그 친구분이 그녀에게 준 엄마 사진들 중 하나라고 했다.


"엄마를 찍고 있는 모습이 멋있어 보이셨대요. 놀랬어요. 너무 똑같아서. 어떻게 옷도 비슷하게 입을 수 있죠?"


그녀는 믿을 수 없다는 듯이 사진 속 남자와 그를 번갈아 봤다.


"누구죠?"

"몇년 전 돌아가신 우리 아버지에요!"


얼빠진 모양으로 사진을 보고 있는 그와 그녀,

둘은 카페가 떠나가라 크게 웃었다.

갑자기 그의 코앞으로 그녀의 작은 얼굴이 불쑥 들어왔다.


"우리 또 만날까요?"


장난스럽게 웃는 그녀의 눈에 얼빠진 사내 얼굴이 비춰보였다. 영혼이 각인 된 것처럼 그는 그녀 얼굴에서 눈을 뗄 수 없었다.


#달가는 소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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