멸종의 시작
며칠째 비가 오고, 바람이 심하게 불고 있었다. 바람 소리에 문득 눈을 떠 보니, 자그마한 노란 나비 한 마리가 천정 한 쪽 구석에 붙어 있었다.
어떻게 꽃 숲이 아닌 저 곳에 자리를 잡았을까?
아마 벌어진 창틈으로 불어오는 바람에 휩쓸려 자신도 모르게 들어왔을 것이다. 그러니 바람이 잠잠해지면 나갈 것이고, 아니면 그 전에 스스로 길을 찾으리라 생각했다. 그러나 그것은 나루의 큰 오산이었다.
며칠이 지나 비가 멈추고, 바람이 잦아들어도 나비는 움직이지 않았다. 마치 그곳이 원래 자신의 자리였던 것처럼 꼼짝없이 붙어 있었다. 배가 고파 날 힘이 없던 것일까 싶어 나루는 설탕을 탄 물그릇을 바닥에 두었다.
나비는 도통 관심을 보이지 않았다. 매일 아침 나루가 눈을 뜨면 나비가 보였다. 우리는 같은 공간에서 항상 서로의 시선이 머무는 곳에 있었다. 그것을 인지하는 순간부터 나루의 마음은 약간의 불안함으로 흔들렸다.
나루가 도시 살이를 막 시작했을 무렵, 집 앞 은행나무에 붙어 있던 커다란 나비가 생각났다. 아마 지금까지 그녀 생에 그렇게 큰 나비를 실제로 본적은 없었을 것이다.
노란 은행잎 사이에서 마치 장인이 한 땀 한 땀 수놓은 것 같은 화려한 검붉은 문양은 장엄하고 우아하게 온 날개를 휘어 감고 있었다.
그러나 어른 손바닥보다 큰 크기와 기괴한 생김새 때문에 아이들은 돌을 던지고, 어른들은 징그러운 괴물을 보듯 피해 다녔다.
일주일을 꿈쩍을 않던 그 나비는 사람들의 멸시와 학대를 이기지 못하고, 결국 길바닥에 날개가 가닥가닥 찢긴 채, 비참한 최후를 맞이했다.
왜 도망가지 않았을까? 나루는 아직도 그때의 나비의 죽음을 이해하지 못했다. 나비는 끝까지 도망가지 않았다.
아마도 나비의 그러한 행동은 자신이 죽을 자리임을 처음부터 알고 있었거나, 아니면 자포자기한 심정으로 더 이상 어디론가 떠나야 한다는 의지를 잃어버렸을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마치 자살을 하려는 사람들처럼.
나루는 자살이 그 나비의 생각에 가까울 것이라 여겼다. 사람들이 느끼는 공포와 불안이 고스란히 전해져 나비는 스스로 죽음을 택한 것이었다.
인간의 불안과 공포만으로 다른 존재의 본능을 죽일 수 있다는 것이 소름끼치게 무서웠다, 어쩌면 멸종당하는 동물들의 마음이 이와 같으지 않을까.
일주일이 지났다. 나루의 불안함은 점점 커져갔다.
나비는 변태를 하듯 커지기 시작했다. 나루는 그것이 나비의. 공포라고 생각했다. 커진 날개 밑 부분부터 공격적이고, 도전적인 어둠이 새겨졌다.
생명에 대한 불안함은 서로 공명하듯 커져 갔다. 나루는 그 시절에 겪었던 생경한 감정들이 걷잡을 수 없는 불길처럼 번져갔다.
아침에 일어날 때마다 나비 날개들은 점점 커져갔다. 내가 나비를 두려워하는 만큼 나비도 무서운 속도로 자라났기 때문이었다.
'아마 저것(?)이 움직여 내 쪽을 향한다면 우리는 시선도 마주할 수 있을지도 몰라.'
나루는 생각했다. 무엇이든 작고 가냘플 때가 순하고 선한 것이다. 이미 그녀의 얼굴만큼 커져버린 저것은 머리에 달린 눈이나, 그 주변에 난 털들까지 소름끼치게 무서운 악마로 변하고 있었다.
결국 나루는 나비를 잡겠다는 생각을 접기로 했다. 아무리 생각해도 파리채 따위를 들 용기는 애초부터 없었고, 그 무서움을 덜어내기 위해 나루도 나비처럼 보호색을 새기기로 결심을 했다.
눈가에 붉은 칠을 하고, 팔과 다리, 등과 가슴 빠짐없이 바늘 땀에 의한 문신을 새겼다. 고통이 반복 될수록 불안함과 공포가 줄어 들었다. 새기는 문신이 늘어날수록 나비의 어둠도 보조를 맞추듯 늘어났다.
마지막 한 땀이 끝나던 날, 홀연히 나비가 사라졌다. 설탕물이 담긴 그릇도 깨끗이 비어 있었다. 멍하니 나비가 있던 천정을 노려보았다.
왜!
우리는 서로의 완성된 모습을 보여줄 의무가 있었다. 이렇게 허무하게 사라져서는 안 되는 일이다. 분노로 몸이 떨려왔다. 나루는 천천히 일어나 거울 앞에 섰다. 거울에는 붉은 눈을 한 어떤 여자가 서 있었다.
눈을 감싼 기이한 문양이 머리까지 연결되어 있었다. 나루는 뒤를 돌아 실크 드레스를 조심스럽게 내렸다. 거울에 비친 자신의 뒷 모습에 그녀의 동공은 커지고, 숨이 가빠져 왔다.
나비는 떠나지 않았다. 그녀의 눈을 하고 몸 가득 화려하게 새겨져 있었다. 불안과 공포를 가득 담은 채 우리는 처음으로 시선을 마주했다.
밖에 다시 비가 내리고, 어디선가 차가운 바람이 불어왔다.
그리고
나루는 바람을 따라 창밖으로 뛰어 내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