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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달가는 물고기 Nov 20. 2020

#33 금전산에서 벌어진 일

- 여우사냥 -

태평공주가 포주에서 낙양으로 돌아왔다.

그녀가 애초에 낙양을 선택한 이유는 두 가지였다.      


첫째로 장안에서 멀어짐으로써 세간의 눈에 권력을 탐하는 여자로 보이지 않기 위함이었고. 두 번째로는 어머니 무씨가 권력을 장악하고 권력을 세웠던 곳이기 때문이었다.   

   

무측천은 그녀에게 두려움이었고 선망의 대상이었다.      


사람들이 그녀를 보고 무측천의 화신이라고 불릴 만큼 태평공주는 그녀를 닮아 있었다.   

   

그러나 단 한 가지!     

무측천은 어린 시절 비천한 신분 탓에 갖은 핍박으로 비틀어진 성격을 갖고 있었다.


그와 달리 태평은 황제였던 고종과 여제였던 무측천의 단 하나뿐인 고명딸, 부모와 가족과 온 백성들이 떠받드는 귀한 공주로 자라난 여인이었다.      


그녀는 어머니만큼 잔인하지 않았다. 애초부터 그럴 필요도 없었다.

그녀가 하는 것에 모든 이들이 떠받들었고. 자신을 두려워하는 태자와 황제가 있을 뿐이었다.      


누구보다 강한 자신감.


황제보다도 높은 권력의 정점에서 그녀가 두려워할 것은 없었다.

이제 막 태자 위에 오른 이융기가 그녀를 두려워하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 일이었다.    

 

"말하라! 너는 어떻게 이곳을 왔느냐?"     


찬비가 지성 앞에 무릎을 꿇고 얼굴을 들지 못하고 있었다.     


"전하! 소비는 마마의 소식을 듣고 한달음에 달려왔사온데…."

"누가 너한테 소식을 전했지?"

"예?"     


찬비가 머쓱한 얼굴로 반문했다.      


"누가 너한테 이곳 소식을 전했는지 물었다."     


고개를 숙인 찬비의 얼굴이 하얗게 질리기 시작했다.


"그것이……."     


찬비의 말끝이 흐려졌다. 그녀의 검은 눈동자가 불안하게 흔들렸다.     


"나와라!"     


 지성의 부름에 누군가 훌쩍 담을 넘어 들어왔다. 검은 복면의 인영이 조심스럽게 그들 곁으로 다가왔다. 바닥에 바짝 엎드린 찬비를 잠깐 바라보던 사람은 손을 들어 머리에 쓰고 있던 복면을 벗었다.      


긴 머리의 여인.

그녀는 홍비였다.      


홍비는 몸을 돌려 지성에게 무릎을 꿇어 공수했다. 찬비는 바닥에 엎드린 채 몸을 덜덜 떨었다. 홍비. 애초에 무진의 몸종으로 함께 왕부에 들어온 여인이었다. 그녀는 무진의 몸종인 동시에 태복경 곽원진의 호위였다.    

 

그러나     

찬비는 태평공주가 왕부에 심어 놓은 간자였다.

지성은 이런 사실을 꽤 오래전부터 알고 있었다.


어차피 서로를 믿지 못하는 상태에서 왕부에 간자 하나 없을 거라고는 예상치 않았기에 모른 척 해왔을 뿐.


왕부에 들어와 외부 출입이 거의 없던 여자였다. 가 들어 오기 전까지는….     


"진천비!"     


지성의 찬 음성이 그녀의 머리 위로 떨어졌다.

찬비라 불리는 그녀의 본명은 진천비. 그녀는 태평공주가 심어 놓은 간자였지만 돈에 무척 약한 인사였다.      


홍비가 사라지자 무진은 찬비를 시켜 를 감시했다. 그리고 그녀가 무진에게 받은 지령은 첫날밤의 흔적을 가져오는 일.


찬비는 함곡관에서 건안성까지 끈질기게 훙수의 뒤를 쫓았다.


태평공주에게는 태자와 지성에 대해서, 무진에게는 홍수에 대해서 끊임없이 정보를 캐내어 날랐다.      


끈질기고 악착같이 일을 해내는 세작이었지만 그녀는 돈에 약했다.      


"부양해야 하는 가족들이 있어 그러합니다!"

"그렇다고 내 주변에 위험한 세작을 둘 수는 없다!"     


지성의 말에 찬비는 그의 바짓가랑이를 붙잡고 늘어졌다.


"전하! 그냥 두십시오!"     


뜻밖에 나선 것은 홍수였다.      


"지금까지는 그냥 두었으나 지금부터는 위험하오!"

"상관없습니다!"     


휘는 바닥에 엎드린 찬비 앞에 섰다.      


"찬비를 죽인들 또 다른 찬비를 만들어 내 옆에 두려 하시겠지요!"     


태평공주는 그러고도 남을 여인이었다.      


"그냥 제 곁에 두겠습니다!"

"감사합니다! 마마!"     


그녀의 말이 끝나자 검은 미복 차림의 홍비가 나서 눈물을 흘렸다.      


"너를 이곳으로 부른 이는 바로 사타무의겠지?"  

   

지성의 날카로운 질문에 찬비의 몸이 움찔했다.  

   

"그…. 그러하옵니다!"      


찬비는 잠시 머뭇거렸다.

의 입가에 비웃음을 담은 조소가 잠시 머물렀다.      


"마마! 어쩔 수 없이 지금은 태평공주가 시키는 대로 하고 있으나, 저 또한 비 마마의 상태를 듣고 오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알고 있네"     


는 그녀를 향해 엷은 미소를 지었다. 그녀는 왠지 찬비의 볼멘소리가 좋았다.      

제 시녀로 들어온 이들이었다. 짧은 세월이었지만 왕부에서 함께 지내며 그녀들의 성격을 요모조모 꼼꼼히도 파악했다.


 오랫동안 사람을 믿지 않고 살아온그녀에게는 습관 같은 것이었다.      

신중하고 꼼꼼한 성격의 홍비와 정이 많고 수다스러운 찬비.


홍비는 세작으로 쓸 수 없는 사람이었고, 찬비는 세작이 되기 쉬운 쪽이었다.

극과 극은 통하는 것인지. 이 둘은 왕부에서 가장 관계가 돈독한 사이였다.


는 이 둘을 아꼈다.

제 사람들로 꼭 만들고 싶었다.      


"전하! 찬비의 식솔들을 안전한 곳으로 옮겨 주십시오."

"그리하지!"     


찬바람이 쌩 불던 지성의 얼음 같은 표정이 단번에 풀어졌다.

마치 거짓말처럼,


홍비와 찬비는 놀란 입을 다물지 못했다.      

지금까지 단 한 번도 보지 못했던 모습.      

그녀들 앞에서 두 사람은 서로의 손을 잡고 나란히 방으로 들어가 버리는 것이다.      


"내 인생에서 저런 모습을 보게 될 거라고는……."     


찬비가 중얼거리자      


"그러니까. 너 지금 목 달아날 걸 살려주셨어!"   

  

홍비가 심술궂게 찬비를 다그쳤다.      


"너는 언제부터 그렇게 담을 넘어 다닌 거야?"

"아주 옛날부터!"

"그런데 왜 말을 안 했어?"     


찬비가 서운한 모습을 하자 홍비가 어이없다는 듯이 얼굴을 돌렸다.     


"태평공주 세작 주제에!"     


그녀의 말에 잠시 서로의 눈이 마주치고 둘 사이에 침묵이 흘렀다.      

훗!

픕!     

둘은 손으로 입을 가리며 웃었다.      


"어쨌든 이렇게 살았잖아?“     


찬비가 어깨를 으쓱하며 말했다.


"그러게?"     


두 여인의 말소리가 점점 멀어졌다.      




금전산에 소북이 눈이 내렸다.      

휘는 활짝 열린 창가에 앉아 내리는 눈을 보며 차를 마시고 있었다.

그녀의 어깨 위에 토끼털이 달린 두꺼운 털옷이 조심스럽게 올라왔다

지성은 옆에 앉아 차를 마시는 그녀의 어깨를 살며시 당겨 안았다.   

  

"여우를 잡으려면 말이오."

"골짜기를 타고 산 위로 몰아야하지 않겠습니까?"     


이것은 사냥 이야기인가?


"산 꼭대기까지 몰아야 합니다."

"어째서?"

"여우는 몸을 다치면 중간에 골짜기로 도망하기 때문이지요."

"저런! 중간에 그렇게 놓치면 낭패겠군!"

"그래서 꼭 산 위로 몰아야 합니다. 더는 갈 데가 없을 때까지."     


차를 마시던 휘의 눈이 반짝였다.      


"지금 이 모습을 태자께는 보이지 마시오."     


휘는 의심스러운 눈으로 그를 돌아 보았다.      


"어찌 그러합니까?"

“태자께서 기꺼워할 얼굴이 꼴 보기 싫어서.”     


그녀가 초승달처럼 눈매를 휘며 웃었다.      


"두 분은 서로 원수처럼 싸울 것 같으면서도 참 사이가 좋으십니다."

"좋기는 무슨!"


지성이 붉은 입매를 삐딱하게 올렸다.

지금 생각해도 화가 풀리지 않는 일이다.      

태자만 아니었다면 그녀가 건안성 전쟁터에 휘말릴 일도 없었을 것이고,

한 달 이상씩 피가 바짝 마르게 기다리는 일도 없었을 것이다.


"이 복수를 어떻게 해야 하지?"

"복수하신다면서 여우 사냥을 준비하고 계십니까?"

"더는 나라를 어지럽게 하는 일은 없어야 하니까!"     


무주 이후 다시 여인이 황제가 되는 것을 반대하는 것에 대한 그들의 생각은 같았다.

당황실에 몰아치던 피바람,

이 씨 황조를 몰아내기 위해 황족들에 가해진 칼바람은 잔인했다.


예외는 없었고, 그 누구도 피해 가지 못했다.

지성과 태자는 나란히 생모를 한날한시에 잃었다.


너무나 많은 이들이 죽어야 했기에, 더는 누군가의 죽을 본다는 것이 두려울 뿐이었다.      

내리는 눈을 바라보는 그의 표정이 어두워졌다.    

  

"폐하께서도 태평공주를 두려워하십니까?"

"황상께서 고모님을 두려워하시는 것으로 보이오?"

"다들 그리들 말하니까요?"

"그대는 권력을 나눌 수 있다 보십니까?"     


그의 물음에 휘는 고개를 절레절래 저었다.

누가 권력을 스스로 내려놓는다 말인가?


제 힘이 모자라도 끝까지 붙잡고 싶어 하는 것이 권력이고, 힘이었다.      

지금의 황제, 예종은 매우 유했으나, 유약한 사람은 아니었다. 

특히 자식과 가족에 대한 사랑이 남달랐기에, 스스로 욕심을 버리고 낮출 줄 알았다. 


그것이 지금까지 자신의 자식들을 지킬 수 있었던 방법이었다. 


"그것은 두려움이 아닌 애정입니다.  황상께서는 진심으로 태평공주를 아낀다오!"

"그러나 좀 과합니다."

 

그녀가 보기에는 그랬다.

아들과 여동생에 의해서 황위를 이어받은 예종 이단은 지나치게 누이동생을 의지했다.

그녀에게는 가장 기름지고 비싼 땅만 골라 주었고, 태평공주의 말이라면 아무리 거북한 말이라도 낯빛 하나 구기지 않고 들어주었다.      


"폐하께는 하나밖에 없는 누이동생이니."

"아무리 누이동생이 귀해도 자식만큼 중하지는 않습니다."


태평공주와 이융기는 절대로 서로 화합할 수 없는 사이였다.

황제는 언젠가는 선택해야 할 것이다.

그 선택이라는 것이 너무 뻔한 거였다.


"조금만 더 기다릴 것이오."     


눈이 멈추고 산 너머로 붉은 태양이 안개처럼 흩어지고 있었다.      


"아직 꼭대기에 다다른 것은 아니니!"     


그녀의 대답에 지성이 맑게 웃었다.      


"왕부로 돌아갈겁니다."     


차를 마시던 휘의 손이 멈췄다.

다시 가고 싶은 마음 반, 가고 싶지 않은 마음 반이었다.

절대 보고 싶지 않은 여인의 얼굴이 떠올랐다.      


"낙양이 아닌 장안으로."     


황제가 그를 다시 불러 들였다. 

물론 그것은 태자의 뜻이겠지만. 

이번에 그의 뜻에 순순히 응하는 데에는 이유가 있었다. 

지성은 이번에 휘를 괵왕비로 책봉시킬 계획을 가지고 있었다. 


그 후에는, 그의 주변으로 장안에서 유명한 귀족들이 서로 앞다투어 그에게 제 딸들을 바치려는 사람들이 생겨날 것이다. 


"서약은 잘 지킬테니, 걱정하지 말아요."     


그가 짓궂게 웃었다.      

그 아름다운 달밤에 설마 그녀가 그런 것을 요구할 거라고는 상상하지 못했다.

올곧고 단아한 그 말속에 소녀 같은 질투심이 가득 담겨 있으리라고는 예상치 못했다.     

 

"꼭 지키셔야 합니다."

"만약에 어긴다면?"

"그렇다면 괵왕비는 다른 이를 올리십시오."     


그녀의 말에 지성은 실소를 터뜨렸다.      


"아름다운 괵왕의 왕비는 저 하나뿐이었으면 좋겠습니다."     


다 산 사람처럼 처연한 모습을 보이다가도 갑자기 또래의 처녀들처럼 감정을 보이며 


"바로 떠납니까?"

"그대가 원할 때."

"좀 더 있고 싶습니다."    

 

자신이 살았던 곳, 춥고, 외롭고, 무서웠지만 어미가 있었고, 영노와 스승인 무천이 있었다.

이제는 모두 사라지고 홀로 남았다.

다시 돌아와도 아무도 반겨줄 사람이 없는 곳.      


"아무도 제대로 보내드리지 못했습니다."


금세 어두워진 하늘에는 셀 수 없는 별들이 빼곡히 박혀 있었다.   

   

"아직 하나가 남았지!“     


지성이 싸늘한 미소를 지었다.

사타무의, 예현은 이미 건안성에서 자취를 감춘 뒤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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