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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한뭉치 Oct 17. 2022

절망 속을 기어다녀 본다

엄마는 나에게 계속 물었다. “니가 참을 애가 아닌데 왜 그러고 살았어. 니가 못 헤어지고 다시 집으로 들어갈 때 나는 가슴을 쳤어.”


그는 결혼생활 내내 나에게 욕을 했다. 소리를 지르고 물건을 던졌다. 나는 계속 설명했다. 그가 나에게 욕을 하면 내가 얼마나 큰 상처를 받는지, 소리를 지르고 물건을 던지는 행위로부터 얼마나 위협을 느끼는지. 분노와 절망을 꾹꾹 참으며 설명하고 설득했다. 누구에게나 장점이 있듯, 단점도 있으니까. 조율해나갈 문제라고 생각했다. 우리에게 주어진 과제를 잘 풀어내고 싶었다. 이 과제를 잘 풀어내지 못하면 그와 헤어져야 한다는 위기감이 들었다. 그 뒤를 생각하면 아찔했다.


나는 언제나 괜찮은 선택을 하는 사람이었다. 잘 다니던 대안학교를 그만두고 일반학교로 전학을 갔을 때도, 최저임금을 겨우 받는 조그마한 시민단체로 이직을 결정했을 때도. 내가 행복하고 멋져지는 선택을 했다. 배우자와의 결혼을 결심할 때도 그랬다. 우리는 단지 아내와 남편이 아닌, 꿈꾸는 세상을 만드는 동지로서 서로 의지하고 힘을 주는 그런 관계가 될 수 있을 거라고 확신했다. 그래서 그 선택을 한 내가 멋졌다.


그런데 이혼이라는 선택은 달랐다. 내가 이제껏 내려본 결정 중에 제일 어려운 결정이었고, 내 삶을 지탱하던 거의 모든 것이 달라지는 선택이었다. 그러나 그 선택은 멋지지 않았다. 나는 사람들의 눈을 제대로 쳐다보지 못했다. 내가 너무 초라했다. 환한 대낮에 밖에 나가기가 싫었고, 기자회견에서도 마이크를 잡기 싫었다. 내가 뭘 잘못한 걸까. 깊은 수치심만이 나를 감싸고 있었다.


그와 헤어지기로 결정하고 각방을 쓰던 일주일이 너무 고통스러웠다. 그는 마치 나더러 보라는 것처럼 집으로 콘돔과 러브젤을 시켰다. 우리가 자주 쓰던 그 비건 브랜드. 섹스용품이라 송장에는 다른 회사 이름이 박혀서 오지만, 나는 그 발송인명을 쓰는 회사의 이름을 알고 있었다. 그가 어딜 가서 어떤 상대와 그 물건들을 쓰고 있을지 상상하는 내가 너무 싫었다.


내가 친구네 집에서 임시로 살겠다고 하자, 그는 공동으로 쓰고 있던 내 랩탑 컴퓨터를 가지고 가 그의 윈도우 계정을 삭제했다. 내 계정 방문 기록에 그의 흔적이 남아있었다. 나의 검색 기록이 궁금했던 걸까. 다음 날 그가 출근한 사이, 나도 그의 컴퓨터에서 똑같은 수순을 거쳤다. 그의 컴퓨터를 켰다. 그가 요즘 뭘 하고 사는지, 무슨 생각들을 하고 사는지 궁금했다. 그의 검색 기록과 다운로드 폴더 따위들을 들추어봤다. 딱 봐도 수상쩍은 파일이 있었다. 포르노로 보이는 그런 파일들. 여자들의 이름과 직업, 그리고 신김치녀라는 단어들의 조합으로 파일들이 이름 지어져 있었다. 그가 포르노를 본다는 건 이미 알고 있었다. 우리는 섹스리스였고, 그가 포르노를 보며 혼자서 욕구를 해소하는 모습이 안쓰럽기도 하고, 괘씸하기도 했다. 한편으로는 다행으로 여겼다. 그와 섹스 하기 싫었으니까. 그가 보던 영상의 제목을 본 건 이게 처음이었다. 신김치녀라니. 구역질이 났다. 나는 그 파일들을 열어볼 수 없었다. 그 파일을 재생하면 어떤 장면을 보게 될지 두려웠다. 손을 덜덜 떨며 그 파일들을 사진으로 찍어두었다.


그 파일들이 불법으로 촬영된 영상들이었다는 걸 알게 된 건 두 달 남짓 지났을 때였다. 도망치듯 집을 나왔던 그때는 정말 경황이 없었다. 시간이 지나면서 그때 본 파일들이 생각났다. 다시 그 때 찍어뒀던 사진을 열어봤다. 여자의 이름과 직업, 그리고 신김치녀라는 단어가 가슴 한 구석을 서늘하게 만들었다. 파일명만 가지고는 불법인지 아닌지 판단할 수 있는 배경 지식이 하나도 없었다. 여성 단체들에 메일을 보냈다. 같이 사는 남성으로부터 이 파일들을 발견했는데 불법인지 아닌지 여부를 알 수 있는 방법이 있냐고.


답변은 이랬다. 불법으로 촬영된 영상이 맞고, 이미 수사 중인 파일이며 신고하기를 원하냐고.


계속 구토를 했다. 수사 중인 파일이라면 피해 여성이 피해 사실을 알고 있을텐데. 그 사람이 얼마나 끔찍한 고통 속에 살고 있을지 가늠조차 할 수 없었다. 그런 파일들을 보며 성욕을 채우는 사람이 내가 사랑했던 사람이라는 게, 나와 가장 친밀했던 사람이라는 게 믿기지 않았다. 너무 더러워서 내 몸을 다 찢어버리고 싶었다. 그와 키스를 나누고 섹스를 했던 몸을 갈갈이 찢어버려도 그 기분이 해소될 것 같지 않았다. 두려웠다. 욕을 하고 물건을 던지며 나를 해치던 사람이 그보다 더한 방식으로 나와 내 삶을 파괴하려 들 수도 있겠구나. 선뜻 신고할 용기가 나지 않았다. 그는 우리 엄마와 동생이 지내는 집이 어딘지, 내 사무실이 어딘지 잘 알고 있다.


기자회견과 회의에서 만나던 변호사들을 이혼이라는 이슈로 만나고, 여성 단체에 피해자로 상담을 청하고, 경찰서에 고발장을 쓰러 다니는 경험이 순식간에 이뤄졌다. 그 사이에는 전쟁도 일어났고 국제 회의도 진행하고 록히드마틴 앞에 가서 데모도 해야 했다. 낮에는 전쟁 반대 성명서를 쓰고, 밤에는 그가 내게 뱉었던 욕이 담긴 녹음 파일을 들으며 진술서를 썼다. 내 일상에도 폭격이 떨어졌다. 그렇게 절망 속을 기어다니며 나는 나에게 분노했다.


“니가 멍청해서 그래. 사람 보는 눈이 없어서 그래. 이 헛똑똑이야. 니가 세상에서 제일 미워. 죽여버리고 싶어. 죽고 싶어.” 머릿속에서 이런 말들을 반복해서 하다 보니 어쩌다가는 입 밖으로도 이 말들이 튀어나왔다.


나는 나를 용서할 수 있을까. 아직 잘 모르겠다. 나의 일상이 모두 바뀌고, 인생의 계획들이 모두 멈춰버린 지금, 나는 알 수 없다. 내가 어떤 삶을 이어갈지, 어떻게 살고 싶은지. 그저 이 분노와 절망이 언젠가는 걷히기를 바랄 뿐이다. 그때까지는 절망 속을 좀 더 기어 다녀보지 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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