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네 학교에 행사가 있어서 일일 돌봄 선생님으로 지원을 나갔다. 대학생 때 자원 교사로 활동하던 공부방이 없어진 이후로 교사라는 타이틀을 처음 만나본다. 선생님이라는 이름표가 낯설고도 반가워서 한참 들여다보았다. 한때 내가 제일 집중했던 타이틀이었고, 석사 세부 전공도 교육으로 정할 정도로 내 삶에 영향을 많이 준 활동인데 그 사이에 이렇게나 멀어졌다.
어린이들을 만나는 활동 자체도 오랜만이고, 어린이들에게 반말을 하지 않겠다고 마음먹은 후로 관계 맺기가 조금 뻣뻣해졌다. 그래서 잔뜩 긴장을 했었는데, 웬걸 나 정말 행복했지 뭐야. 서로 약간 어색해하며 5분 정도 탐색의 시간을 가지다가, 빠르게 입이 트이고 몸이 풀렸다. 책 읽고, 공기놀이하고, 뒹굴고. 새롭게 만난 이 작은 사람들의 온기에 녹아버리고 말았다.
다 같이 바닥에 착 붙은 채 책을 읽는데, 가장 어린 j가 꼼지락꼼지락 거리더니 엎드려 있는 내 다리 사이에 대뜸 자리를 잡고 누워버리는 거다. 그 순간 나는 왜 왈칵 눈물이 날 뻔한 걸까.
엄마와 아빠가 헤어지고 난 뒤로, 여덟 살 때부터 지금까지 평생 동안 나를 울게 했던 장면이 있다. 식당에서, 놀이공원에서, 여행지에서, 행복한 시간을 보내고 있는 ‘정상 가족’을 볼 때면 눈물이 났다. 엄마 아빠가 서로 싸우지 않고, 냉랭하지 않고, 다정한 대화를 주고받으며 맛난 음식을 함께 먹는 모습이 너무 배알이 꼴려서 울었다. 가족들이 모여서 긴장 없이 밥을 먹는 느낌은 어떤 걸까. 치과 치료비가 필요해서 아빠에게 전화를 걸면 "니네 엄마한테 달라고 해"라는 심드렁한 대답을 듣지 않아도 되는 느낌은 뭘까. 엄마가 아빠 얘기를 하면서 울지 않는 느낌은 어떤 걸까. 우리 집 창문을 들여다보며 자위하던 이십 대 남자를 발견한 이후로, 어디서 남자 신발을 얻어와 현관에 놓는 일 따위를 하지 않아도 되는 건 도대체 어떤 느낌일까. 나는 죽었다 깨나도 모르는 그 느낌을 누군가는 아무 의심 없이 누리고 있다는 게 억울하고 분했다. 옆 테이블에 앉은 이름 모를 그 가족이 뿜어내는 안정과 애정의 향기가 너무도 달콤해서 눈물이 났다.
결혼한 뒤로는 그 배알 꼴렸던 장면이 내 모습일 걸 같아서 설렜고, 원했던 것 중 큰 걸 이뤘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나만의 가족을 만들었구나. 내가 평생 부러워만 했던 그 가족들의 모습을 내가 가지게 됐구나. 그 생각은 머지않아 산산조각이 나고 말았지만.
이혼하고 다른 건 다 좋은데 딱 하나 아쉬운 게 있다. 아이가 있는 삶과 이별하게 되었다는 것. 그게 그렇게 속상한 줄 나도 몰랐다. 근데 종종 어린 아기를 안고 있는 젊은 사람들을 보거나, 딸과 손잡고 걷고 있는 여자들을 보면 코끝이 시큰해진다. 아, 나는 아기를 안고 있는 나와 이별했구나. 한때 정말 꿈꿨던 모습이었는데.
내 안의 다양한 욕망들을 마주한다. 아이와 함께 살고 싶은 나, 독립적이고 싶은 나, 성취하고 싶은 나, 결혼하고 싶지 않은 나, 돌봄 받고 싶은 나. 각각의 욕망은 섞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함께 충족되기 어려운 것들이기도 하다. 예전엔 몰랐다. 내 욕망이 시키는 일들을 모조리 다 해낼 수 있을 줄 알았다. 근데 한쪽 욕망을 충족시키고 나니, 다른 욕망과는 영영 이별하게 되는 일이 찾아오더라. 폭력적인 결혼생활에서 탈출했더니 아이와 함께하는 삶과 영영 이별하게 되는 일처럼.
아이를 낳고 기르는 일은 다른 모든 욕망을 포기해야 하는 일이었을 테지만, 조금은 아쉽네. 작은 사람의 손을 오랜만에 잡으면서, 그 작은 사람이 남긴 따스함에 감사했다. 그 후로 그 손의 온기를 떠올릴 때면 가슴 한편에 휭휭 바람이 분다. 당분간은 좀 슬프겠구만.
충돌하는 욕망들을 바라보며, 내려놓아야 할 것들을 아쉽게 내려놓는다. 그리고 내가 가진 것들, 돌봐야 할 욕망들에 집중해본다. 지금은 독립과 회복에 집중하라고, 마음이 말한다. 네. 그럴게요. 토닥토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