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같이 자전거 페달을 밟는다. 집에서부터 30분 남짓 페달을 밟으면 한강공원에 도착한다. 한강에 닿을 때까지 죽어라 페달을 밟다 보면 참았던 숨이 튀어나온다. 후우-. 하아-. 허벅지가 터질 때까지 페달을 밟아본다. 뺨을 스치는 바람이 상쾌하다. 저 멀리 푸른빛의 한강이 보이기 시작하면 엉덩이를 살짝 들어 자전거 위에 선 채로 그 물빛을 응시한다. 매일 만나는 장면이지만 매일같이 반갑고 기쁘다. 홀로 자전거를 타다 보면, 이렇게 진심으로, 그리고 꽤 능숙하게 자전거를 타고 있는 나 자신이 새삼 놀랍다. 불과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자전거 타기라면 벌벌 떨던 나였으니. 능숙한 자전거 라이더들이 쌩쌩 달리고 있는 자전거 도로가 무섭던 나였다.
나는 열일곱 살 무렵까지 자전거를 타지 못했다. 딱히 배울 기회가 없었기도 했지만, 롤러코스터 수준의 경사를 자랑하는 봉천동 달동네에선 자전거를 타는 사람이 없었다. 마을버스가 언덕 동네를 오르락내리락하며 골목마다 데려다주는 걸. 자전거는 평지에 사는 다른 동네 친구들의 전유물처럼 느껴졌고, 가끔 학교 운동장에서 자전거를 타고 있는 다른 애들을 볼 때면 마냥 멋있다고만 생각했다. '우와. 저 두 바퀴로 중심을 잡고 달리는 게 가능하구나.'
아빠와 엄마가 헤어진 후로는 방학이면 아빠가 사는 울산에 내려가 보름 남짓을 지냈다. 방학 숙제도, 매일 풀어야 하는 학습지도, 아빠네 집에선 자연스레 생략이었다. 아빠는 문제집을 펴는 대신 바다로, 산으로 나와 동생을 데려갔다. 자연 속에서 시간을 보내고, 평소엔 잘 먹지 못하는 비싸고 좋은 음식을 먹고, 밤이면 하염없이 산책을 했다. 아빠는 평소에 나와 동생에게 무관심했던 걸 갚기라도 하려는 것처럼, 맛있는 걸 사주고 새 옷을 사줬다. 그러면서도 우리와 딱히 대화할 거리는 찾지 못했다. 학교 성적이 얼마나 올랐는지, 그동안 키가 얼마나 자랐는지, 그 이상은 궁금해하지 않았으니까. 아빠가 사주는 맛있는 음식을 먹으면서도 엄마가 기다리는 우리 집이 그리웠던 건, 아빠 곁에선 곁에 있으면서도 너무 외로웠기 때문이었다. 아빠와 마주 보기보다는 나란히 한 방향을 향하며 산길을 오르는 게 훨씬 덜 어색했다.
갈 곳이 딱히 떠오르지 않는 날이면 울산대공원으로 향해 자전거나 인라인을 빌려 탔다. 보조바퀴가 달린 자전거를 대여하겠다는 나를 보고 아빠는 열일곱 살 먹고도 두 발 자전거를 타지 못한다는 게 말이 되냐며 자전거를 가르쳐주겠다고 했다. 자전거 안장을 잡은 아빠가 따라서 달려주길 여러 번, 드디어 비틀비틀 자전거를 '운전'할 수 있게 되었다. 자신감이 조금 붙자 혼자서 대공원 한두 바퀴를 돌기도 했다. 두 발 자전거를 처음 배웠던 날, 혼자서 두 바퀴 위에 중심을 잡고 가고 싶은 곳으로 갈 수 있다는 사실이 놀랍기만 했다. 나도 두 발 자전거를 탈 수 있구나. 다른 애들처럼 폼나게.
두 발 자전거를 탈 수 있게 된 후에도, 나는 꽤 오랫동안 자전거를 두려워했다. 어쩌다 친구들과 한강공원에 놀러 가면 한 시간 남짓 대여해 타는 게 전부였다. 그러다 스물일곱, 그와 따릉이를 타고 처음으로 도로에 나가본 거다. 그는 자전거를 아주 능숙하게 타는 사람이었고, 날씨가 좋은 날이면 함께 자전거를 타자고 제안했다. 나는 늘 한강공원이나 여의도 공원 같이 자전거 구역이 정해져 있는, 비교적 안전한 곳에서만 자전거를 타봤기 때문에 공원 안에서라면 좋다고 했다. 그런데 그를 따라나선 날이면, 따릉이를 타고 도로 위를 달리고 있었다. 아주 두려운 마음으로. 분명 공원 안에서만 타겠다고 했는데, 어쩌다 이렇게 이렇게 덜덜 떨면서 도로 위에 나와있는 거지?
그는 자전거를 육교 위로 들고 나르느라 끙끙거리고 있어도 절대 도와주지 않는 사람이었고, 그러다 내가 삐끗 넘어져 눈물과 함께 성질을 터뜨리고 나서야 내가 잘 뒤따라오고 있는지 들여다 봐주었다. 함께 달리다가도 흥미를 끄는 게 생기면 1초 만에 유턴하며 내 눈앞에서 사라져 버리곤 했다. 다른 라이더들 사이에 섞여 양 옆을 보지 못했던 나는 한 30미터 앞서 가고 나서야 그가 내 옆에 없다는 걸 알아차린다. 빠르게 달리는 자전거들 사이에 홀로 섞여 어찌나 무섭던지. 한참 후에 그를 발견하자마자 엉엉 눈물을 터뜨렸다. 자전거 타기를 두려워하는 나를 두고 쌩 사라져 버린 그가 너무 야속했다. 울며 말했다. "야, 너만 자전거 잘 탄다고 자랑하냐? 나는 너처럼 휙휙 방향도 못 튼단 말이야. 니가 갑자기 없어져서 얼마나 놀랬는지 알아?" 펑펑 울고 있는 나를 보며 그는 실실 웃었다. "아니, 이게 울 일이야? 민영아? 황당하네."
자전거 연습을 하기로 마음먹은 날이 바로 그날이다. 이상하게도 나는 비웃음 당하면 포기보다 오기가 돋는 사람이다. 자전거가 무겁고 버거워도 입술을 꾹 다문다. 도와달라고 하면 비웃음 당할 테니까. 그와 함께 자전거를 타는 날이면 속도를 한껏 올려 앞질러본다. 한 번쯤은 나도 이겨보고 싶으니까. 그러다 자전거와 정이 들었다. 약이 바짝 오른 나를 버텨주고, 내가 품은 오기만큼 속력을 내주는 자전거가 고마웠다. 서러운 기억들을 묻어버리려는 것처럼 페달을 밟았다. 불쑥 올라오는 서러움, 야속함을 페달로 꾹꾹 밟아버렸다.
그와 헤어지고 10개월. 그와 함께했던 그 어느 때보다 자전거를 열심히 타고 있다. 내가 이렇게 능숙하고 빠르게 자전거를 탈 수 있다는 사실에 놀라워하며. 내 눈에서 제일 많은 양의 눈물을 흘리게 한 남자 두 명이 내 삶에 남긴 능력이다. 많은 눈물을 쏟았지만, 자전거 타는 근육만큼은 탄탄해졌다. 그 시간들에 고맙다는 마음이 이제는 든다.
매일 오피스텔 계단에 매어 놓은 자전거를 끌고 나선다. 혼자만의 짜릿한 질주를 즐기며 생각한다. 혼자 자전거를 탈 수 있게 되기 위해 그 시간들이 존재했던 걸지도 모른다고. 그 시간들이 키워낸 허벅지 근육으로 두 바퀴 사이에서 중심을 열심히 잡아본다. 그리고 살살 속도를 내 본다. 혼자서, 자유롭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