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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한뭉치 Aug 09. 2022

행복하게 했던 순간들이 나를 울게 한다

스무 살 때부터 끄적여 온 내 오랜 일기장 네이버 블로그가 5년 전 오늘이라며 이 글을 보여주었다. 바람 솔솔 부는 거실에 다 같이 누워 각자의 리듬으로 밤을 마주하던 우리가 너무 그립다. 우리 안에 큰 부피로 존재하던 아루가 이제 세상에 없다. 나를 행복하게 했던 순간들이 이렇게 나를 울게 한다.


어제 집으로 돌아왔다. 부산에 간다고 집 떠난 게 지지난 금요일이니, 열흘만에 집에 돌아온 거다. 집을 떠날 땐 이렇게 긴 여행이 될 줄 몰랐다. 그 여행의 끝에 아루와의 이별이 있을 줄은 더더욱. 고양이들이 따라다니며 혼내듯 말을 건다. 미안해. 너무 늦게 와서.


아루의 흔적이 없는 내 집에 오면 괜찮을 줄 알았는데 전혀다 전혀. 머리에 숭숭 구멍이 뚫려버린 것 같다. 아무 생각이 나지 않고, 일도 잘 안된다. 집에 민지가 놓고 간 논비건 식료품 외엔 냉장고에 먹을 게 없어서 겨우 장을 봤다. 기분이 너무 처져서 신나는 노래 플레이리스트를 틀어두었는데 난데없이 울음이 터진다. 나원참. 수도꼭지를 잠글 수가 없네. 살아있는 한 아루를 다시 못 본다는 게 너무 이상하고 실감이 안 나. 비현실적인 현실에 살고 있어서 너무 슬프다.


아루가 무지개다리를 건너고서 오늘 처음으로 가족이 아닌 사람들을 만났다. 마침 사무실 에어컨이 고장 나서 내내 재택근무를 하다가, 오늘 전쟁없는세상 회의에  거다. 이번  금요일이 평화캠프라, 사실 무지 바쁘다. 정신을 똑바로 차리고 트레이닝 내용을 채워야 하는데 준비를 거의 못했다. 비인간 동물과 함께 사는 사람들은 그들과 이별할  꾸역꾸역 일상을 이어나가야 한다. 사람처럼 장례기간이라는  주어지지 않으니 어떻게든 쳇바퀴 위에 몸을 실어야 . 웃는 것도 어색하고 울상인 것도 어색하고, 어떤 표정을 지어야 할지 몰랐다. 사람들 사이에 섞여 아무렇지도 않게 대화하고 있는 내가 너무 이상했다.


오늘은 세계 고양이의 날 이래. 눈을 반짝이며 날 보는 고양이들. 아루를 잃은 슬픔에 젖어 고양이를 맘껏 축하해주지 못했다. 탈혼 후 엄마 집에서 고양이와 살던 두 달 간은 고양이와 아루가 한 지붕 아래 공존하던 시간이었다. 아루와 고양이들은 물과 기름처럼 성격이 달라, 거의 두 집 살림을 하다시피 했지만, 나는 고양이와 아루 사이를 오가며 무지 행복했다. 늙은 개와 청년기의 고양이. 이들이 내뿜는 생명력의 에너지가 몹시도 달랐다. 아루가 남긴 밥을 다 훔쳐먹고도 배고프다고 징징거리는 고양이를 보며, 아루 언니 입장에선 그게 또 부럽더라.

좁혀지지 않던 고양이와 아루 사이의 거리


소피와 무섬이와 함께할 날들. 아름답게 채워 가보자. 너희와의 행복한 순간들이 먼 훗날 나를 또 울게 하겠지만, 행복을 겁내지는 않을게. 슬픔은 너희가 나에게 베푸는 귀한 사랑과 돌봄에 대한 값일테니까. 사는 동안 귀하고 아름답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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