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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한뭉치 Aug 07. 2022

아루가 이 세상에 없다

아루가 이제 이 세상에 없다. 나는 이제 아루가 없는 세상에서 살아야 한다. 내 삶의 가장 큰 지지자가 없는 채로.


아루가 무지개 다리를 건너고, 갑자기 세상 모든 게 중요하지 않아 졌다. 나를 화나게 했던 일, 절망하게 했던 일, 기쁘게 했던 일, 모든 일이 무의미해졌다. 아루에 대해 글을 쓰는 것도 하고 싶지 않았다. 아루와 함께한 지난 18년 동안 내가 얼마나 큰 사랑을 받았고, 멋진 경험을 했는지 설명할 수 없다. 세상의 모든 예쁜 말을 가져다가 늘어놓는다 해도 아루와의 18년을 설명할 수 없을 것 같다.


워낙 오래 살기도 했었고, 하루가 다르게 늙어가는 아루를 보며 이별이 엄청 멀지는 않겠구나라고 생각했다. 마음의 준비를 했다고 생각했는데, 생각과 마음의 영역은 역시 다른 것이었나 보다. 속수무책으로 무너지는 내가 당황스럽다.


한참을 누워있다 잠도 오지 않고 책도 읽히지 않고, 청소도 빨래도 다 해치워버려서 옥상에 누웠다. 아루 수건을 깔고서. 아루가 종종거리며 돌아다니던 이 공간에서 아루를 추억하다 보니 뭐라도 끄적이고 싶다는 결심이 든다.


아루는 한 두 달 전부터 잘 걷지 못했다. 화장실에 가거나 옥상 산책을 할 때 하염없이 다리가 흔들렸다. 그렇게 후들거리는 다리를 이끌고 화장실에도 가고, 나와 가족들이 잠에 들 때는 인사도 하러 왔다. 집에 아무도 없는 낮시간이면 종일 잠만 잤다.


지난 주말, 내가 친구들과 부산 여행을 떠난 사이 고양이들을 돌봐주러 내 집에 온 동생이 코로나 확진을 받았다. 엄마는 어린이들을 가르치러 학교에 가야 하니, 동생이 내 집에서 격리생활을 하는 걸로 결정하고 나는 부산에서 곧장 엄마 집으로 향했다. 고양이가 보고 싶긴 했지만, 아루와의 일상이 반갑기도 했다. 하루 일과가 끝나면 엄마랑 아루랑 옥상에 올라가 밤바람을 쐤다. 너무나 평범한 일과였다. 앞으로도 몇 번이고 반복될 일상인 줄만 알았다.

수요일 밤엔 깨숙이모의 아버님이 돌아가셔서 엄마 손을 잡고 인천으로 조문을 갔다. 주안역에 내리자마자 느껴지는 바다내음에 설레서 조문을 마치고 바닷가로 향했다. 홈캠으로 보는 아루는 그날따라 활발하게 움직이고 잘 지내는 것 같았다. 안심한 우리는 꽤 늦은 시간까지 밤 외출을 즐겼다. 그렇게 도깨비 여행을 마치고 집에 가보니 아루가 온 집에 똥칠을 해둔 채 구석에서 잠을 자고 있었다. 아마 똥을 누고 그 위에 철푸덕 넘어졌던 모양이다. 아이고 안쓰러워라. 이불을 모조리 치우고 아루를 목욕시켰다. 엄마가 아루를 씻겼고, 목욕이 끝난 아루를 내 품에 넘겨받아 안고 털을 말려주었다. 폭 안긴 채 드라이를 받는 아루. 조심조심 아루의 물기를 털어내며 아루의 촉감이 낯설다고 느꼈다. 살이 하나도 없네 우리 애기. 우리 아가 언제 이렇게 할머니가 됐니. 가만히 아루의 마른 몸을 쓰다듬어주었다. 성가신 드라이기를 피해 아루는 두세 번 도망을 쳤다. 다리가 몹시 후들거리는데도 용케 도망을 쳐내는 아루가 너무 기특했다. ‘아루야, 내일은 산에 가자. 언니가 내일부터 재택이니까 점심시간에 산에 갈 거야. 가방에 넣어서 데려갈게’하고 약속했다.


산에는 다시 가지 못했다. 이별은 조금의 예고도 없이 찾아왔다. 새벽 여섯 시쯤이었나. 아루의 비명소리를 듣고 잠에서 깼다. 후다닥 나가보니 엄마가 아루를 안고 어쩔  몰라했다. 아루가 경련을 하고 있었다. “민영아, 아루 이제 마지막인  같아.” 나는 엄마의 말을 부정하 싶었지만 그럴  없었다. 죽음을  번도  적이 없지만, 아루에게 죽음이 다가오고 있다는    있었다. 그건 배워서 아는  아니었다. 아루의 혀가 파랬다. 엄마 품에 안긴  오줌을 흘렸다. 엄마가 아루 입에 물을 조금씩 흘려주라고 해서 컵에 물을 담아와 손에 찍어 아루 입에 물방울을 흘려 넣었다. 아루는 전혀 삼키지도 못했다.


“아루야, 민지 언니 올 때까지 조금만 기다려줘.” 민지가 아루와 작별인사를 해야 했다. 새벽 여섯 시에 민지가 전화를 받을 거라고 전혀 기대하지 않았지만, 정말 간절하게 전화를 했다. 다섯 통을 했는데도 받지 않자, 엄마가 택시를 타고 민지를 깨워 데리고 오라고 했다. 아루가 그 사이에 떠나면 어떡하냐고 걱정을 하는 나에게 엄마는 아루를 꼭 붙잡고 있겠다고 말했다. 신발을 신고 나가는데 민지에게서 전화가 왔다. 그날따라 무섬이가 엄청 시끄럽게 민지를 깨웠다고 했다.


민지가 오고 있으니 조금만 버텨줘 아루야. 사랑해 아루야. 그동안 너무 고마웠어 아루야. 아루야 사랑해. 우리 꼭 다시 만날 거야. 조금만 버텨줘. 엄마랑 나는 같은 말들을 계속 반복했다. 엄마의 품 안에서 생명이 꺼져가는 아루를 보며 할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었다.


아루가 마지막 숨을 거두고 민지가 도착했다. 아직 너무도 따뜻한 아루를 돌아가며 품에 안았다. 하고 싶은 말이 많았는데 하나도 생각이 나지 않았다. 아루의 복실복실한 몸을 쓰다듬고, 아루에게 뽀뽀를 해주고, 아루의 발바닥을 만졌다. 멋지게 산을 뛰어다니던 발바닥. 다리에 힘이 없어져 산책을 못 가게 된 뒤로 거칠던 발바닥이 말랑해져 있었다.

인적없는 산길을 기억해두었다가 아루와 신나게 뛰어다녔다.

아루를 천에 싸서 화장장에 데려가기 전 아루의 냄새를 맡아야 했다. 우리 아루 털에서 나는 샴푸 냄새, 발바닥에서 나는 꼬수운 누룽지사탕 냄새. 어떻게든 많이 맡아놓고 기억해야 한다. 울면 코가 막혀 냄새를 맡을 수 없으니까 울음을 멈춰야 했다. “민지야 울면 아루냄새 못 맡아. 이따 울어.” 민지랑 나는 서로 울음이 터질 것 같을 때마다 아루 냄새 맡아야 한다며 필사적으로 서로의 울음을 멈춰주었다.


엄마가 지난가을엔가 국화꽃으로 염색했다던 천을 들고 왔다. 아루의 작은 몸을 그 천으로 동여맸다. 왜 우리 아기가 그 천에 들어가 있는 건지 전혀 이해가 안 됐다. 나랑 동생은 아루가 천으로 동여매어지자 그제서야 맘놓고 울음을 터뜨렸다. 화장장에 연락을 하고, 아루 영정사진을 함께 골라 보내주었다. 아루와 집에서 여섯 시간 정도 함께한 후, 삼촌 차를 타고 화장장으로 향했다. 이게 그날 기억의 끝이다. 나머지는 기억하고 싶지도 않다. 아루의 유골을 들고 집에 돌아온 우리는 이제 집에 없는 아루를 찾으며 가슴을 치며 울고만 있다.


친구들이 돌아가며 전화를 주었다. 전화기 너머로 훌쩍거리는 내 친구들. 너네가 왜 울어 하면서 또 운다. 18년이라는 시간 동안 아루는 우리 셋 뿐만 아니라 우리 주위의 사람들에게도 많은 사랑을 주고, 또 받았다. 개는 장례식이 없어서 인사도 못 나누고. 괜스레 주위 사람들에게 미안해진다. 우리끼리만 인사 나눠서.


나는 이제 산책도 가기 싫고, 산에도 가기 싫고, 옥상에도 가기 싫다. 아루가 없는 그 공간들이 너무 밉다. 아루가 다리를 못쓰게 된 이후로 산에는 가지도 않았다. 아루 없이 가기 싫어서. 이제 모든 걸 아루가 없이 해야 하는데, 다 싫고 부아가 치민다.


인생이 나락으로 떨어진 것 같은 때가 종종 찾아오곤 했다. 집 밖으로 나가기도 싫고, 아무것도 해낼 힘이 남아있지 않았을 때. 아루 목줄을 채우고 간신히 밖을 나섰다. 아루가 이끄는 대로 공원 한 바퀴, 뒷산 한 바퀴씩을 돌고 오면, 기운이 났다. 아루가 없었으면 다시 일어나지 못했을지도 모른다. 나조차도 내가 싫을 때, 아루는 늘 나를 반겨주었다. 집에 도착하기도 전에 나를 맞이하러 나와주었고, 외로워서 엉엉 울고 있을 때 찾아와서 폭 안겨주었다. 내가 뭐라고. 잘해주지도 않는 언닌데. 나는 그런 류의 사랑을 세상 어디에서도 받아본 적이 없다. 오직 아루에게서만 그런 사랑을 받아보았다.

너와 함께 걸을 땐 세상에 무서울 게 없었어

아루가 없는 우리 셋, 엄마, 민지, 나. 괜찮을까. 아직은 잘 모르겠다. 가지를 썰다가도 울고, 웃다가도 눈물이 흐르고, 아루 밥그릇을 치우지 못해 운다. 함께하는 동안 넘치게 행복했고 사랑해서, 그만큼 아프겠지. 언젠가 아루와의 시간을 행복과 감사로 더 추억할 수 있게 되길 빈다.


세상에서 가장 착한 우리 아가, 천사 아루. 편히 쉬렴. 그동안 우리 곁에 있어주어 정말 행복하고 고마웠어. 우리가 나중에 만나러 갈게. 꼭 다시 만나자. 정말 아름답게 살았어. 름다운 한 그의 나무. 아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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