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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alon de Madame Saw Oct 20. 2020

찐 내향인입니다.

내가 멀티 페르소나인으로 살기로 결심한 이유

10년 전쯤 3년을 만났다가 지금까지 가끔 안부 묻고 지내는 친구와 카톡을 하다가 MBTI 얘기가 나왔다. 내 예상대로 이 친구는 INTP였고 예상되는 나의 MBTI유형이 무엇인지 물어봤는데 ENFP라는 말을 듣고 충격을 받았다. 가족을 제외하고는 인생에서 가장 오랜 시간을 함께했던 친구마저 날 외향인으로 생각하고 있었다니..  (내가 네가 워낙 극 내향이라 내가 외향으로 보였을 수도 있겠다고 했더니 “그래 녹색당 입장에선 정의당이 우파겠지.” 란다.)


사실 내향적인데 워낙 감정상태가 항상 불안해서 그것을 감추기 위해 오버를 하기 때문에 그렇게 보이는 것이다.


그런데 이쯤 되면 내가 내 인생에서 내 감정에 솔직했던 적이 초등학교 고학년 이후로 없던 셈이 된다. 그것도 가족을 포함 모든 사람들에겐 아니어도 오직 연인 앞에서만(그것도 오래 만나야 함) 솔직해진다고 생각했는데 그것도 아닌 듯하다.

지금 나의 모습은 내향적인 성격 탓에 어릴 때 너무 심하게 고통받고 살았던 것에 대한 방어기제가 맞나 보다.
한때는 내가 그것을 ‘극복’했다고 생각해서 자신감을 얻었는데 결국 그 부작용이 쌓이고 쌓여 내 감정에 충실하지 못했던 20년의 삶에 대한 책임을 한꺼번에 지게 생겼다. 다시 그때로 돌아갈 수 있을까? 그럼 또 그때처럼 고통받진 않을까? 얼마나 걸릴까 시간은?


그러니까 말 한마디 못하던 초등학교 저학년 시절만 제외하면 불안함을 감추기 위해 과장된 행동을 했다가 다시 안정을 찾고 소심함을 극복하기 위해 용기를 냈다가 실패하고 좌절하는 정신상태의 반복에 페르소나까지 몇 겹을 뒤집어쓰니 정체성에 혼란은 항상 있었지만 어느 순간 스스로 그것을 나의 강점이라 믿고 폭발시키고 살았었다. 실제로도 그런 면에 매력을 느꼈던 사람들도 많아 고민을 안 했던 것 같다.


내가 다시 정체성에 대해 고민하기 시작한 건 바로 전에 만났던 분이 나의 그런 모습에 힘들어했기 때문이었다. 그는 나에게 내 진짜 모습을 보여달라고 했었지만 그 당시엔 이 모든 게 다 나의 모습이라고 대답했고 그런 줄만 알았다.


여전히 고민은 끝나지 않았고 지금은 실험적으로, 자아를 아예 정리하여 분리해버리는 멀티 페르소나 프로젝트(?)를 실행 중인데 이렇게 분리를 해 버리니 오히려 편해지는 것 같기도 하다. 이전엔 내가 가지고 있는 어떤 면을 잃어버릴 까 봐 강박적으로 여러 가지 모습을 꺼내려했다면 지금은 언제든 필요할 때 꺼내면 된다고 생각되기에 그럴 필요가 없어졌기 때문이다. sns 계정도 여러 개로 만들어 내 욕지거리를 듣기 싫어하는 엄마나 언니에겐 인싸 정상인(?) 버전 계정으로 팔로우를 한다던가 하는 식으로 관리 중이다.

하지만 그렇게 정리를 했음에도 아직 꺼내지 못한 모습이 있다. 만일 내가 분리시킨 자아가(?) 정말 모두 가면이고 진짜 나의 민낯은 따로 있는 것이 맞다면 아마 그것이 가장 진정한 나의 모습에 가깝지 않을까 싶다. 지금 생각해보면 진짜 내 모습을 보고 싶었던 그에게 진정한 나의 모습을 보여줬던 때는 처음으로 카페에서 마주 보고 앉아 커피를 마시던 그날 하루뿐이었던 것 같다. 그중에서도 나의 진짜 모습은 웃고 있던 표정과 열심히 뭔가를 얘기하고자 했던 목소리가 아닌, 안절부절 못 하며 커피잔을 쥐고 있던, 선물 포장을 열어보던 덜덜 떨리던 손과 마주치지 못하던 시선뿐이었던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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