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요된 취향과 성 고정관념
여자아이들의 옷과 장난감은 대체로 핑크색 계열이고 남자아이들의 그것은 파란색 계열인 것, 그리고 이에 대해 성 고정관념을 우려하는 목소리에 많은 사람들이 남성은 본능적으로 파란색을 선호하는 경향이 있고 여성은 핑크색을 선호하는 경향이 있기에 자연스러운 현상이라는 주장을 한다. 그러한 성별에 따른 선호도 때문에 그것이 곧 각각의 성을 상징하는 색이 됐다는 거다.
그 주장이 참이 되려면 그 수많은 색상들 중에서 가장 좋아하는 색이 뭔지 물으면 당연히 남성은 평균 이상이 블루, 여성은 핑크라고 대답해야 할 것이다. 그러나 길 거리를 걸을 때 볼 수 있는 다채로운 색상의 의상 만큼이나 사람의 색상 취향은 그보다 훨씬 다양하다는 걸 알 수 있다.
단순히 색상뿐만이 아니라 여자아이들의 장난감을 보면 핑크색 계열의 바탕에 오색의 각종 화려한 장식들이 주렁주렁 달려있다. 한마디로 남자아이들의 것과 비교했을 때 더 화려한, 시각적으로 호감을 주는 형태라는 뜻이다.
그렇다면 남성들은 핑크색으로 꾸민 여성보다 자신들이 선호하는 블루 계열의 의상이나 메이크업으로 치장을 한 여성을 더 선호하는가?
성 역할과는 관계가 없어 보이는, 예를 들어 과일이나 하늘이나 조약돌 따위의 사진들을 여러 장 보여주며 가장 ‘시각적으로’ 호감이 가는 사진을 고르라고 한다면 성별에 관계없이 대체로 다채로운 색상이 포함된 사진을 고른다. 그리고 특히나 청색 계열보단 붉은색 계열에 호감을 느낀다. 인간을 포함한 거의 모든 동물들이 설익은 과일보단 잘 익은, 더 달콤한 과일이 어떤 것인지 굳이 먹어보지 않아도 알 수 있듯이. 이것이 식물의 진화인지 동물의 진화인진 모르겠지만 말이다.
그럼 왜 시각적으로 화려한 이미지는 여성의 상징이 된 거고 그것과 상반되는 이미지는 남성의 상징이 된 걸까? 실제로 인류를 제외하면 거의 모든 종의 수컷의 암컷보다 더 화려한 색을 띠고 있는데 말이다.
남성들 역시 화려한 색상의 의상과 메이크업, 보석으로 치장한 여성을 시각적으로 더 아름답게 느끼면서도 정작 자신 스스로가 그렇게 치장하는 것에는 거부감을 느낀다. 만일 그 거부감이 자신과 반대되는 성 역할을 하는 것에 대한 생물학적 본능에서 기인한 것이라면 반대로 여성들 역시 ‘화려하지 않은 의상을 선택하는 것’에 그에 상응하는 거부감을 스스로 느껴야 함에도 불구하고 오히려 그런 거부감이 유독 남성들에게만 존재하는 이유는 뭘까?
나는 우리 사회가 강요하는 여성적인 것과 남성적인 것이 수평적인 것이 아니라 수직적인 관계이기 때문이라고 본다. 여성이란 단순히 ‘생물학적 여성’이 아닌 성 선택의 객체로서 존재하는 자를 의미한다는 말이다.
긴 머리에 붉은 립스틱과 하이힐로 화려하게 치장하고 신체부위를 과도하게 강조한 차림을 한 남성을 여장남자라 부르는 것도 이러한 사회의식을 반영하는 것이다. 왜냐하면 그것들은 자연 상태에서의 생물학적 여성의 특징이 결코 아니기 때문이다. 세상에 어떤 생물학적 여성이 태어날 때부터 드랙퀸처럼 생길 수가 있나?
결론적으로 생물학적 여성은 성 선택의 객체로서 남성은 주체로서 존재해야 한다는 남성 중심 사회의 억압 때문일지 모른다. 즉, 핑크색에 대한 거부감이란 성 선택의 주체로서의 권위를 잃어버리는 것에 대한 두려움의 발현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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