침묵은 책임을 면제하지 않는다

침묵과 언어윤리에 대하여

by Salon de Madame Saw

침묵은 책임을 면제하지 않는다


범죄 혐의를 받고 있던 인물이 수사중 스스로 생을 마감하는 경우를 종종 본다.

수사는 ‘공소권 없음’으로 종결됐고 피해자에 대한 사과나 해명도 없었다.


남겨진 것은 단 하나, 완강한 침묵뿐이었다.

그리고 우리는 그 침묵을 ‘무죄’ 혹은 ‘억울함’으로 해석하려는 유혹에 자주 빠진다.


그러나 해명 없는 침묵이 도덕적 무결함의 증거가 될 수 있는가? 그 침묵 앞에서 우리는 아무 판단도 하지 않은 채 멈춰 서야만 하는가? 침묵이 모든 윤리적 책임을 지운다는 전제는 과연 정당한가?


이 사태를 정확히 해석하려면, 먼저 침묵이라는 행위가 언어윤리적 맥락에서 어떤 역할과 함의를 지니는지 알아볼 필요가 있다.


침묵은 단순히 말을 하지 않는 상태가 아니다.

침묵은 맥락 속에서 언제나 하나의 메시지를 구성한다.

특히 비난, 고발, 요구가 존재하는 상황에서 침묵은 입장을 유보하는 것이 아니라, 해석을 유도하는 방식의 반응이다.

이런 점에서 침묵은 적극적인 언어 행위의 일종으로 간주될 수 있다.


더불어 확실하지 않은 표현 또한 침묵의 변형된 형태로 작동한다.

말은 하지만 핵심을 말하지 않고, 책임 있는 입장은 끝내 밝히지 않는 경우,

해석의 부담은 고스란히 타인의 몫이 된다.

그 침묵 혹은 애매한 말은, 상대방으로 하여금 판단을 요구하고, 결정을 강제한다.


해석은 선택을 전제로 하며, 선택은 책임을 전제로 한다.

따라서 해석을 타인에게 위임한다는 것은 실질적으로 결정과 책임을 위임하는 일이다.

그런 점에서 침묵은 자기 책임을 명확히 하지 않으면서도 타인에게 반응을 강요하는 구조를 만든다.

이 구조 속에서 침묵은 방어가 아니라, 회피이며, 동시에 통제의 수단이 될 수 있다.


중요한 것은, 누군가가 침묵하거나 확실하지 않게 말함으로써 결과적으로 특정한 분위기, 판단, 방향을 유도했다면,

그 과정 전체에 대해 책임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는 점이다.

침묵을 선택한 자는 해석의 결과를 감수할 의무가 있다.

자신이 직접 말하지 않았다는 이유만으로, 그가 만들어낸 해석적 구조와 사회적 반응에 대한 책임을 회피할 수는 없다.


더 나아가, 해석의 오류를 지적할 자격이 있는 사람은, 그 오류로 인해 발생한 이득을 취하지 않은 사람뿐이다.

만약 어떤 침묵이 상대방의 판단에 영향을 주었고, 그 판단이 자신의 입장에 유리하게 작용했다면,

그 침묵은 해석 가능한 여지를 전략적으로 활용한 결과로 해석될 수밖에 없다.

이 경우 침묵은 중립적 태도가 아니라, 윤리적 책임을 우회하는 언어적 기술이다.


침묵은 말보다 가볍지 않다.

침묵은 하나의 입장이고, 메시지이며, 선택이다.

그 침묵이 타인에게 결정을 요구하고, 감정을 소모시키며, 상황을 종결시킨다면,

그 침묵 역시 반드시 윤리적 책임의 대상이 되어야 한다.


법의 판단이 내려지지 않았더라도,

말하지 않음으로 모든 것이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어떤 책임은 법보다 언어 윤리 차원에서 더 먼저 확인된다.

침묵은 죄를 지우지 않는다.

도리어 그 침묵은, 말하지 않음으로 책임을 피하고자 했던 구조를 그대로 드러낸다.

그 침묵은, 책임을 회피한 방식 그대로, 하나의 판단을 이끌어낸다.


keyword
작가의 이전글성폭력이 내게 남긴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