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니까 이걸 읽을지 말지 알려줘.
요즘 한창 책에 빠져 살고 있다. 사서 읽기도 하고 도서관도 다니면서 다양한 책들을 섭렵하는 중이다. 책을 많이 읽다 보니 읽은 책들에 대한 기록을 남겨야겠다는 생각을 (두어 달 째) 해왔다. 그러나 글을 쓴다는 게 말처럼 그렇게 쉽지가 않아서 미루고 미뤄왔다.
그러다 우연히 페이스북에서 엄청나게 자주 눈에 띄는 한 책을 사 읽게 되었는데(여기에서 확인할 수 있다.), 그 책을 읽고 난 후의 감정은 '어이없음'이었다. 낚인 것에 대한 어이없음. 책 산 돈이 이렇게 아까운 적도 오랜만이었다. 그런데 이상한 점이 있었다. 나만 이렇게 생각하는 건 아니겠지 하며 책의 서평을 뒤져봤는데, 너도나도 책과 저자에 대한 칭찬일색인 것이었다.(더 자세히 살펴보니 마케팅적인 낌새가 조금 보임.) 물론, 책을 읽고 느낀 점은 각자 다를 수 있다. 그리고 내가 느낀 점은 '어이없음'이었다. 그래서, 나도 내 의견을 서평으로 남겨야겠다고 마음을 먹었다.
그런데 나는 서평을 써본 적이 없다. 서평이 뭔지도 정확히 모르겠는데 단순히 어이없음을 표현하자면 그냥 푸념 글이 될 것 같았다. 그래서 구글에 '서평 쓰는 법'을 검색하고 몇 분 구경하다가 이 책을 발견하게 되었다. 또 낚일 수도 있다는 생각이었지만, 넘치는 '서평'책들 사이에서 방법을 제시하는 듯한 책은 이것밖에 눈에 띄지 않아서 바로 구매했다. 책 제목을 잘 짓는 것도 중요하다.
서평 쓰는 법: 독서의 완성
저자: 이원석
출판사: 유유
가격: 1,0000원
저자가 책을 쓴 이유를 내 마음대로 요약하면
"'헬조선'에서 보이지 않는 삶의 길을 독서를 통해 찾아보자."이다.
그리고 그 독서를 더 잘하기 위해 서평을 쓰는 것을 추천하며, 자신의 방법을 소개한다.
책은 위와 같은 목차로 이뤄져 있고, 앞부분에 대해서만 간략히 요약한다.
- 읽을 것이냐 말 것이냐.
서평을 찾아 읽는 이유는 결국 이 질문에 답을 얻기 위해서다. 그렇다면 반대로 서평을 쓰는 이유는 이 질문에 대한 나름의 답을 주기 위해서라고 할 수 있다. 더 쉽게 말해서, 이 책을 읽어야 할지 말아야 할지를 주장하고 이를 설득하는 것이다. 이 책에서 저자가 주장하는 바의 시작점은 이것이다. 서평은 설득하기 위한 글이다. 설득이 없는 서평은 독후감이다.
- 왜? 읽을 것이냐, 말 것이냐
당연히 이어지는 질문이다. 서평자는 자신의 주장(읽어라 또는 읽지 마라)에 근거를 제시해야 한다. 이 책은 어떠한 유익을 주는가 또는 안 주는가를 알려줘야 한다. 나 스스로도 어떤 서평을 읽음으로써 알고 싶은 것이 바로 이 부분이다. 독자들은 이 책을 통해 잠재적으로 어떤 것(그것이 정보든, 경험이든, 감정이든)을 얻을 수 있고 없는지 알고 싶어 한다.
- 자아성찰과 삶의 발전
읽은 책에 대하여 말과 글로 정리할 때 독서는 완성된다. 모든 글쓰기가 비슷한 성격을 가지겠지만, 서평을 쓰면서 서평가는 자신의 내면과 마주할 수 있다. 일반적인 글쓰기와 다른 점은 책이라는 도구를 활용한다는 점이다. 책에 대한 생각을 정리하고 표출하는 (더 나아가서는 타인에게 보여주는) 과정을 통해 자신이 (또는 자신만) 몰랐던 자기 모습을 발견할 수 있다. 자아성찰을 통해 궁극적으로 자신의 삶을 긍정적인 방향으로 변화시키는 것이 서평을 쓰는 목적이다.
-책은 서평과 함께 계속 성장한다.
책은 고정되어있지만, 서평을 통해 끊임없이 그 영향력을 확대해 나간다. 소위 '고전'이라 불리는 책들이 영향력을 가지게 되는 이유는 그것들에 대한 다양한 해석이 이루어졌고, 앞으로도 가능하기 때문이다. 이처럼 한 권의 책에 대한 여러 서평이 책과 소통하면서 그것들(책과 서평)이 전달하는 지식의 지평이 넓어진다. 마치 책에 대한 위키피디아를 작성하듯이, 서평을 쓰는 것은 지식의 확장 과정에 동참하는 행위다.
- 책을 제대로 이해한다.
누군가에게 어떤 상품을 팔기 위해서는 그 상품을 이해해야 한다. 이해가 없으면 고객이 왜 그 상품을 사야 하는지 설득할 수가 없다. 서평도 마찬가지다. (읽으라고 또는 말라고) 주장하고 설득하기 위해서는 책의 내용을 이해해야 한다. 그러한 이해를 위해서는 책 안으로 온전히 빠져들어야 한다. 단순히 책을 비판만 또는 칭찬만 하는 것이 아니라, 내용에 대한 균형 잡힌 시각을 가지고 공과 과를 제대로 짚어내야 하기 때문이다. 잘 쓴 서평은 균형 잡힌 이해를 통해 객관적인 설득을 할 수 있다.
여기까지가 1부의 대략적인 내용이다.
나는 이 정도로 서평이 무엇이고, 왜 써야 하는지에 대한 충분한 답을 얻었다. 후반은 '어떻게'써야 하는지에 대한 내용인데, (여타 'ㅇㅇㅇ글쓰기' 책들에 비하면) 글쓰기 자체에 대한 구체적인 기술을 제시하지는 않는 편이다. 그보다는 어떤 요소들이 포함되는지 어떠한 스타일의 평가가 가능한지에 대한 설명이 들어있다. 그리고 서평을 쓰기 위해 어떤 방법으로 독서를 하면 좋은지와 함께 기본적인 방법들을 알려준다. 어차피 책의 종류가 너무 다양하기 때문에 일률적인 기준을 제시하기는 어려웠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니 결국 쓰고 싶은데로 쓰는 거다. 그리고 시작은 그렇게 (나처럼) 어떻게든 쓰는 것 아닐까? 태어나서 처음 쓰고 있는 이 서평도 처음에는 어떻게 쓸지 몰라 막막했지만, 꾸역꾸역 쓰다 보니 완성이 되어간다. 내가 생각하는 이 책의 장점도 비슷한 맥락인데, 서평에 대한 막연함을 실체화시켜줄 수 있다는 점에서 유익한 책인 것은 확실하다. 대체 뭔지를 알아야 어설프게라도 만들어 낼 테니까. 아직 내공은 안되지만 계속 쓰다 보면 언젠간 저자가 제시하는 다양한 평가의 요소(목차에 나와있음)들도 활용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나아가서는 내가 읽는 책의 독자, 저자 그리고 다른 잠재적 구매자들과 소통하며 나와 그들의 삶을 넓혀갈 수 있겠지.
당일 배송으로 받자마자 앉은자리에서 다 읽었다. 원래는 어이없음을 표현하려던 것이 었는데, 졸지에 책을 한 권 더 샀다. 책은 얇고 가벼운 편이지만 구글에서 찾을 수 있는 여러 단편적 정보들 보다는 훨씬 유용하다. (책 값이 싸고) 돈이 아깝지 않다. 이 책을 시작으로 앞으로 계속 서평을 쓸 생각이다.
그리고 조만간 그 어이없는 책을 다시 꺼낼 것이다.
이렇게 키보드 워리어 레벨 1 등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