녹지 25번째(1992) 수록
따뜻한 봄바람이 불어올 즈음이면, 졸업과 입학의 북새통이 이루어진다. 앞으로 졸업을 1년 앞두게 된 4학년들. 그중에서도 특히나 여대생들은 불안함과 초조함 그리고 미래에 대한 기대로 인해 몸살이 날 지경이다. 16년간이나 죽자고 교육받아온 24세 나이는 이미 적지 않은 성인의 나이이고, 준 사회인으로 단련되어진 4년간의 대학 생활을 조금이라도 더 알차게 사회 속에서 펼쳐 보이고 싶은 욕구가 꾸역꾸역 밀려온다.
그러나 우리의 현실은 그렇게 호락호락하지가 않다.
점차 여성의 취업인구가 증가되면서 여대생 중 92.6%가 평생직장을 원하지만 한해 약 6만 명의 대졸여성들 중 취업을 하는 여성은 불과 1/4밖에 안 되는 실정이다. 88년 이후 계속 누적되어온 대졸 여성 미취업자가 현재 12만 명에 이르고 있다는 통계는 미리부터 여대생들을 주눅 들게 한다.
그나마 공개채용이나 남성들과의 당당한 경쟁에서 취업을 하는 여성은 일부 극소수에 불과하고 대부분 특별채용이나 인맥 등을 통하여 취업하고 있다.
이러한 현실은 아직도 남성우월주의가 팽배한 사회적 인식과 구조, 아울러 『남녀고용평등법』 등의 제반 성차별 철폐 법률 조항이 현실적이고 구체적인 항목으로 입법화되지 못해서이다.
그러나 이에 못지않은 문제점이 존재하는데 바로 여성자신 스스로에게 있는 문제라 할 수 있다. 아직도 대다수의 여성들이 여성자신이 가진 장점과 능력을 인정하기보다는 남성위주의 가부장제 이데올로기에 편승하여 여성 스스로를 소극적이고, 안이한 범주에로만 축소시키려 하는 경향이 팽배하다.
이러한 ‘여성의 위축화’는 14대 총선에서도 살펴볼 수가 있다.
전국 399개 국회의원 의석수 가운데 여성 입후보자의 수는 19명에 그치는 것이 현실이고, 지난 기초의회선거에서의 여성 당선자는 40명으로 0.9%에 불과했으며, 광역선거에서는 63명 입후보에 8명만이 당선되는 웃지 못할 참패를 경험했다.
이토록 우울한 여성의 현실은 직장 내 성차별이라는 지극히 당연히 결과를 가져온다.
OO중소기업은 악세사리를 수출하는 회사로 전체 고용노동자가 100여 명이며 30여 명이 사무직에 종사하고 있다. 그중 여성의 숫자는 50% 정도를 차지하는데, 이 여성들의 주요 업무는 단순 서류 정리하는 일, 타자치는 일, 복사하고 팩시밀리 보내는 일 등 누구나 할 수 있는 잡무 처리 영역에 불과하다.
이러한 예는 대기업이건, 소기업이건 간에 거의 비슷하게 유지되고 있는 업무 분할의 모양새이다.
‘나만은 그렇지 않을 것이다’라고 믿었던 아주 많은 대졸 여성들은 그렇기 때문에 사회에 나가서 또 한차례 심한 자아 비열에 시달리게 된다.
처음에는 능력이 부족해서이니 하며 학원도 다니고, 열성적으로 영어사전에 매달리기도 하지만, 애초에 구조적으로 막혀있는 자아실현의 영역을 찾으려는 노력은 절망만을 더해준다. 게다가 나이가 들어갈수록 결혼퇴직제라는 음양의 위협을 받으면서 취업한 지 4, 5년 만에 실업의 악몽에 시달려야 한다.
질적으로 우수한 대졸 여성들은 또한 열등한 잡무를 맡다 보니 월급도 차별적으로 지급되고, 심한 경우에는 성적 모욕까지도 당하게 된다. 능력보다는 외모를 중시 여겨 선발되는 아름다운 여성들은 회사 내에서 남성들의 주목을 끌기에 충분하고, 무수히 쏟아져 나오는 잡지에서도 누누히 기사거리가 되듯이 가슴이나 엉덩이가 섹시하다는 이유가 붙으며 오히려 여성이 제 몸단속을 제대로 하지 않아서 벌어진 결과이니 여성 스스로 책임져야 한다는 당혹스런 책임 전가가 자연스레 결론으로 되고 있다.
그래서 대부분의 여성들은 취업하고 난 뒤 금방 장래가 총망되는 직장 내 남성의 신부감으로 선출되게 열을 올리면서 사회가 강제한 여성의 지위에 중독되고, 만족하게 되는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와중에서도 전 세계적으로 여성지위의 급부상의 여파는 한국 사회 내에서도 여성의 자각과 목소리를 높이게 한다.
평생 취업을 원하는 여성들의 의지와 욕구가 높아지면서 여성이 전문적으로 진출하는 노력과 수요는 여성 취업의 방대한 증가를 가져온다. 이러한 결과는 그동안 무수히 배출되었던 취업 여성들과 취업의 욕구를 가진 능력 있는 여성들의 자생적 노력의 성과물들이다. 물론 여성 인격의 존중과 여성의 재능을 인정할 수밖에 없는 사회구조적 변천사가 가져온 사회경제구조의 재배치도 큰 영향을 미친다.
매사를 논리적이고 합리적으로 처리해야 하는 일, 창조적이고 자주적인 두뇌 회전과 끊임없는 연구와 노력이 필요한 일 등을 책임지고 수행해 나갈 때만이 사회 속에서, 기업 속에서 여성 본인은 발전하고 성장할 수 있다.
앞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아직은 여성에게 불리한 사회이지만, 몇 년간의 직장생활을 경험해 본 여성의 한 사람으로서 후배들에게 몇 가지 격려의 말을 해보고 싶다.
커피 심부름부터 온갖 잡무에 시달려야 하고 게다가 월급마저도 차등적으로 지불되는 현실에서 ‘나만은 안 한다’는 안이한 생각보다는 모든 직장여성들이 겪는 고초임을 명심하고 너무 급하게 좌절하여 직장을 그만두거나, 또한 그 현실에 너무 쉽게 포기해 버려 안주하는 것은 금물이다. 직장에서 최우선은 경력이고 경력은 곧 능력인 것이다. 그렇게 된다면 그 분야에서의 ‘노하우’는 아무도 무시 못 하게 되고 ‘노하우’가 쌓인 여성의 직장 내 발언은 큰 임과 비중을 차지하게 된다. 이는 곧 직장 내에서의 여성의 지위 향상을 의미하는 것이고 이러한 여성이 많아지는 것은 취업 여성문제 해결의 그 한 방도가 되는 것이다.
대부분의 여성들은 성장 과정에서 사회문제를 등한시하고 시사 문제에 밝지 못한 것이 솔직한 현실이다. 그러나 세계와 사회구조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고서는 급속도로 변모해가는 20세기의 사회적 발전 추이를 앞서가지 못하기 때문에 여성이 주요 전문 분야에서 탈락되는 중요한 이유가 된다. 그러므로 신문에서부터 명망 있는 시사잡지를 자주 접하여 넓은 세계관을 가질 필요가 있다.
더불어 자신이 가장 사랑하고 자신 있는 분야에 대해 용감해야 하며, 누구보다도 뛰어난 전문지식을 가져야 한다. 우리는 흔히 종로통이나 학원이 밀집되어 있는 곳에서 새벽 6시부터 교재나, 마이마이 등을 옆에 끼고 걷고 있는 40대 중년 신사들을 많이 볼 수 있다. 우리 자신이 정말 존경하고 본받아야 할 모습이 아닐까?
대부분 학교를 떠난 여성들은 고립되고 남성 위주의 그룹 관계를 형성하기가 쉬운데, 이야말로 여성이 낙후될 수밖에 없는 ‘위험한 처지’인 것이다.
현재 직장여성이 갖는 문제는 나 하나만의, 또한 우리 직장만의 문제가 아니다. 우리의 선배가, 우리의 후배들이 겪고 있고 겪어야 할 아픔이고 서글픔이다. 우리는 모아진 힘의 위대함을 이미 사회에는 크게, 작게 여성의 입장을 대변하는 많은 단체가 존재하고 있다. 여성은 자신의 입장을 대변하는 일에 아직까지는 소극적인 자세로 임해왔음이 사실이므로, 조금은 적극적으로 자신의 문제를 여성 문제해결 전문단체에 상의하는 것도 좋은 해결책이 될 수 있다.
사회에서의 동문회의 힘은 크다. 선배의 경험이 알 토박이로 후배에게 전승되어지고, 서로 간에 정보교환이 원활하게 이루어질 때 중대 출신의 선배나 후배 그리고 이후 중대에 들어오는 모든 여학생들에게는 자부심과 함께 미래에 대한 불안이 덜해질 수 있는 훌륭한 모임이 될 수 있는 것이다. 과 단위에서부터 단대 그리고 전체 총여학생회 차원으로 이러한 모임, 모임들이 하나의 체계를 이룰 때, 사회 내에서의 냉대는 ‘새 발의 피’ 정도밖에 안 될 것이다. 이제부터라도 4학년 여대생들이 앞장서서 우리의 모임을 만들고 서로에게 위로와 배려를 아끼지 말자.
여성을 짓누르는 사회의 벽이 아무리 두텁고 높다 해도 동서 독일의 장벽이 무너지듯이 그 벽은 무너질 수밖에 없다. 능력 있는 여성은 아름답다. 그리고 전문인의 위치에 오른 여성은 더욱 아름답다 하지 않는가.
부족하고 미흡하나마 간절한 애정으로 중대 여학우들에게 이 메시지가 힘과 용기를 주었으면 하는 바램이며, 졸업을 앞둔 중대 후배들 모두가 좋은 직장, 평등한 위치에서 자신의 능력을 마음껏 펼쳐 가길 바란다.
글 강연아(중앙대84)
남성 위주의 폭력적이고 여성 배제적인 직장 문화는 25번째 녹지가 쓰인 1992년에도 있었지만 지금도 마찬가지이다. 신한은행 채용 면접 중에는 여성 면접자에게 제로투를 춰보라고 하였다. 현대자동차의 신입 공채 중 여성은 0명이다. 게다가 현대자동차 전체인원의 5.4%, 관리직의 3.4%만이 여성이다. 정규직도 남성이 먼저 전환되고 공장에서는 여직원을 배정받기 싫다고 거부하기도 한다. 1996년 OECD에 가입한 이래 줄곧 성별 임금 격차 1위를 차지하고 있다.
성별 임금 격차가 31.1%(2021년 기준) 나며 이가 OECD 1위라는 것을 보며 사람들은 남성이 더 어려운 일을 한다거나 경력 단절이라는 이유를 들고는 한다. 하지만 한국은 직무, 직종, 사업장이 같은 남녀 간의 임금 격차도 최상위권이다. 김난주 한국여성정책연구원 연구위원은 “여성의 경력 단절로 인한 일자리 상실 현상과 저임금 업종에 여성이 많아서 성별 임금 격차가 난다는 건 너무 오래된 해석”이라며 “2006년 여성이 대학 진학률에서 남성을 앞서고 17년여가 지났지만 격차가 크게 줄어들지 않고 있는 이유는 같은 일을 해도 차이가 나는 구조 때문”이라고 밝혔다.
이런 내용을 실은 기사에도 "임금 격차를 떠들기 전에 여성들의 노동 가치를 높여봐", "여자도 월급 많이 받고싶으면 남자들과 동등하게 근무하면된다", "여성이 저임금 노동쪽을 선택을 더 많이해서 저임금인거지 남자사회복지사와 여자사회복지사의 급여가 다르거나 여자 프로그래머와 남자프로그래머 연봉이 다른게 아니다."라는 등의 댓글이 달려있다. 성별 임금 격차가 적은 나라는 일용직을 하는 여성이 많을까. 저임금 여성 노동자가 적을까. 같은 직무, 직종, 사업장에서 일해도 남녀 간의 임금 격차가 최상위권이라는 말을 다시 생각해보길 바란다.
그렇다면 고용률은 어떨까. 통계청의 '2022 통계로 보는 남녀의 삶' 자료를 보면 2021년 여성 고용률은 51.2%, 남성 고용률은 70%다. OECD 회원국 평균 여성 고용률이 61%인 것에 비해 아주 낮다. 한국과 비슷한 경제수준을 가진 국가들과 비교하여도 극심한 차이를 보인다. (호주 73.0%, 덴마크 74.2%, 프랑스 65.2%, 핀란드 70.1%, 독일 75.2% 등)
하지만 우리나라가 아니면 괜찮을까. 미국의 경우 여성 평균 연봉이 남성 평균 연봉의 2002년에 80%, 2022년에 82% 수준에 머물며 20년 동안 제자리걸음한 것이다. 또한 일본, 영국 등 국가들도 성별 임금 격차가 크다. 유럽연합(EU) 국가들에서는 여성이 남성과 동등한 임금을 받기 위해서는 2086년이 될 때까지 기다려야 하는 것으로 조사됐다. 또한 전 세계 경영진 가운데 23%만이 여성인 것으로 조사되었고, 여성이 교육에 더 많은 투자를 할 가능성이 높은데도 더 낮은 수준의 저임금 일자리에 취업하는 경향이 있다.
무디스는 전 세계 근로환경에서 성평등이 실현된다면 전 세계 총생산이 7% 증가할 것이라고 추산하였다. 이는 여성 배제적인 근로환경이 여성에게만 영향을 미치는 것이 아니라 우리나라 경제에도 영향을 미친다는 것이다. 무디스 애널리틱스의 경제 리서치 국장인 돈 홀랜드는 "진전이 있었지만, 충분히 빠르지 않다"며 변화하는 데 오랜 시간이 필요한 사회적 규범을 포함해 "이 같은 성 격차 이면에는 복잡한 이슈들이 숨어있다"고 지적했다.
세계은행은 '2023년판 여성의 경제적인 권리(Women, Business and the Law 2023)'을 발표하였다. 세계 190개국을 대상으로 직장에서의 처우와 결혼 및 육아, 창업, 연금 등 8개 항목의 평가 결과를 지수화해 1971년부터 매년 발간한다. 우리나라는 85.0점으로 공동 65위였다. 지난해보다 순위가 4계단 떨어졌다. 또한 OECD 평균에 미치지 못했다. 직장에서의 대우와 이동, 결혼, 자산, 연금과 관련한 환경 등 5개 분야에서 만점을 받았지만 임금 격차(25점)에서 최저 수준의 점수를 받았다. 창업 환경 또한 75점으로 남성보다 여성이 불리하다는 평가를 받았다. 2009년 85.0점을 받아 처음으로 80점대를 넘었지만 이후 14년째 제자리걸음을 하고 있다. 세계은행 관계자는 "노동현장에서 24억명의 여성이 남성과 같은 권리를 인정받지 못하고 있다"며 "각국 정부는 인구의 절반을 차지하는 여성을 방치할 여유가 없다"고 지적했다.
지난 녹지를 통해 30년 전 여성 고용에 대해 다시 생각해 볼 수 있었다. 여성이 여성에게 직장에서 살아남기 위해 인내와 노력, 유대관계 유지에 대하여 충고하며 여성 직업인으로, 중대 학우로 연대하고자 하는 마음을 느낄 수 있었다. 1990년대 대졸자 여성이 경리가 아닌 사무직으로 일하기 시작한 시점과는 비교할 수 없는 차이를 보이겠지만, 대한민국은 여전히 OECD 성별 임금 격차 1위이다. 그것이 우리가 여성 배제적인 직장 문화에서 살아가고 있다는 증거이다. 여성 고용은 매우 확대되었지만 여전히 직장 내 성차별이 존재한다.
글 여과
[참고자료]
최재원, 한국 MZ 여성 2명 중 1명 "해외서 살고 싶다"...남성은 뜻밖의 반응 보였다, 인사이트, 2023.02.17
임아영, 여성 신입 공채 ‘0명’ 현대차 공장의 여성 노동자들은 누구일까, 경향신문, 2023.03.02
정영효, "직장 성희롱방지법 없는 유일한 나라"…남녀격차 꼴찌 '굴욕' [정영효의 인사이드 재팬], 한경국제, 2023.03.0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