녹지 48번째(2014) 가을호 수록
중학교 3학년, 어느 여름날 아침이었다. 엄마가 깨우는 소리에 눈을 깼더니, 엄마가 평소에는 잘 해주지도 않던 칭찬을 했다. “우리 딸 오늘따라 예쁘네.” 학교에 가기 전 씻으려고 화장실을 갔는데, 아래가 축축한 느낌에 속옷을 내려 보니 핏자국이 있었다. 첫 생리의 경험이었다. 많은 아이들이 이미 초등학교 고학년 때 생리를 시작했던 것에 비해 늦은 생리였기 때문에, ‘아 나도 드디어 생리를 하는구나.’하는 생각이 제일 먼저 들었다. 생리를 하면 여자가 된다는 얘기와 엄마가 아침에 해 준 칭찬이 번갈아 떠오르며, ‘생리를 시작해서 오늘 예뻐 보였나보다.’라는 생각도 들었다. 학교에 가서는 애들에게 나도 생리를 시작했다고 자랑하고, 친구들이 선물해 준 생리대를 받았다. 집에 돌아와서는 소식을 들은 아빠가 케이크를 자르며 축하해주었다. 엄마는 “이제는 몸가짐을 단정히 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첫 생리는 기쁘고 행복한 경험이었다. 그때까지만 해도, 갱년기가 될 때까지 앞으로도 나를 계속 따라다닐 이 ‘생리’라는 것이 얼마나 귀찮고 짜증나는 것인지 전혀 몰랐다!
첫 생리를 시작하고 몇 달 되지 않아서부터 짜증은 시작됐다. 정확히 언제 시작될지도 예측할 수 없고, 시작하고 나면 언제 끝날 지도 감이 잡히지 않고, 항상 치마 뒤에 묻지는 않았을까 불안해해야 하는 한 달 중 며칠. 생리통이 심한 날은 걷다가 멈춰서 아랫배를 부여잡고 주저앉기도 했다. 더운 여름엔 특히나 습하고 찝찝한 느낌에 안그래도 예민한 피부가 더 따갑고 쓰렸다. 밤에 잘 때는 생리대를 몇 개씩 하고도 혹시나 이불에 새진 않을까 불안해하며 잠들어야했다. 첫 생리를 시작하고부터 갱년기가 올 때까지, 앞으로 영원히 한 달의 4분의 1을 이런 괴로움을 가지고 살아야하다니!
안 그래도 짜증나는 생리를 더 짜증나는 것으로 만든 건, 생리를 ‘숨겨야 한다.’는 사실이었다. 생리대는 ‘혹시라도 오빠가 보면 안 되기 때문에’ 꼭 휴지에 싸서 안 보이는 곳에 버려야 했고, 밤에 잘 때는 혹시나 이불에 피가 묻어서 내가 생리 중이라는 사실이 들키지 않게 주의해야 했다. 피가 묻은 속옷은 ‘부끄럽기 때문에’ 세탁기에 넣기 전에 손빨래로 핏자국을 깨끗하게 지워야 했고, 생리대를 갈 때는 항상 손안에 숨겨 화장실까지 도망치듯 가야 했다. 동네 마트에서도, 편의점에서도, 생리대를 사면, 직원은 꼭 속이 보이지 않는 검은 비닐봉투에 생리대를 넣어 숨기듯 내 손에 쥐어주었다. 나는 생리를 하는데, 나만이 아니라 모든 여자가 생리를 하는데, 인구의 반 가까운 인원이 한 달에 4분의 1을 생리로 보내고 있는데, 대체 왜 생리는 이렇게 다 ‘숨겨야’ 하지? 피부에 좋지도 않은 생리대를 몇 겹이나 속옷에 붙여가며 답답함에 괴로워하고 생리가 샐까봐 불안해하며 잠들 때마다, 왜 잘 때라도 편하게 자고 대신 생리가 끝난 뒤에 이불을 빨면 안 되는 것인지, 생리 자체만으로도 불편한데 왜 그 불편한 기간이 ‘숨겨야하기 때문에’ 더 불편한 경험이 되어야하는 것인지 이해할 수 없었다.
생리에 대해 알려주는 사람이 없다는 것도 생리의 불편함을 더 크게 만들었다. 대체 진통제는 먹어도 되는 건지 안 되는 건지, 탐폰은 써도 되는 건지 안 되는 건지, 생리를 시작한 지 벌써 10년이 넘게 지났지만, 아주 최근에야 잘 때 엉덩이 사이에 휴지를 끼고 자면 생리대를 몇 겹이나 하지 않고도 생리가 새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았다. 앞서 말했듯 인구의 반이 생리를 하고 있는데도 왜 이런 효율적인 지식을 나는 이제야 알 수밖에 없었던 것일까? 왜 생리에 관한 경험은 아무도 제대로 알려주지 않는 걸까?
이 사회에서 생리는 ‘생리 공결제’와 TV에서의 생리대 광고를 통해서만 가시화된다. ‘생리 공결제’는 여자들이 부당한 방식으로 휴일을 얻는 이기적인 제도로 여겨진다. 마치 ‘그 날’이 여성의 예민함의 상징인 것처럼, 생리 공결제에서 생리는 여자들의 이기심의 상징으로 존재한다. 생리대 광고에서의 생리는 실제 생리와는 완전 무관한 듯 순수하고 순결하기만 하다. 하얀색 옷을 입은 청순한 연예인이 수줍은 미소를 지으며 선전하는 생리대 광고. 실제 생리는 찝찝하고 더럽고 찐득찐득하고 핏덩이가 뚝뚝 떨어지는데, 생리대 광고에서는 생리대의 효과를 시험하는 물조차 깨끗하고 청결한 파란색 물로 표현한다.
사회적으로 ‘생리’가 존재하는 이 두 가지 방식 중에서 어느 것도 나의 구체적인 경험인 ‘생리’를 설명해주지는 못한다. 나의 생리는 나의 이기심이고 자시고를 생각할 새도 없이 찾아와서 나의 아랫배를 강타하는 폭력적인 경험이며, 내가 그것을 이기적으로 활용할 생각을 ‘감히’ 할 수 있을 만큼 내 통제 아래에 존재하고 있지도 않다. 생리대 광고에서 생리대에 따라지는 파란 물과 실제 생리대에 덕지덕지 묻은 나의 붉은 핏덩이의 차이만큼이나, 생리대 광고에서 나오는 순결하고 청순한 여성의 모습을 생리중의 나는 도무지 취할 수가 없다. 첫 생리 때 ‘생리를 하니까 이제 예뻐질 것이다.’라고 생각했던 게 착각일 뿐이었다는 것을 증명이나 하듯, 생리 중의 나는 머리끝붜 발끝까지 초췌하기 이를 데 없는 피곤한 몰골이다. 이러한 경험이 비단 나만의 경험이 아닐 텐데도, 내가 한 달에 며칠씩 겪는 생생하고 구체적인 생리의 경험은 생리에 관해 존재할 수 있는 오직 두 가지 이미지 안에 포섭되어 늘 흔적도 없이 사라져버리곤 한다. 대체 왜 나의 ’생리’는 도무지 솔직하게 있는 그대로 존재할 수 없는 것일까?
올해 6월, 스페인에서는 생리에 대한 이러한 터부를 비웃기라도 하듯 흰 바지 위로 생리혈을 드러내는 퍼포먼스가 열렸다. 사람들은 이 퍼포먼스를 보고 충격적이고 역겹다고 표현했지만, 사실 다시 생각해보면 ‘생리’가 드러나는 것이 이제야 ‘충격적’이고 ‘역겨운’ 것일 수 있다는 것 자체가 놀라운 일이다. 지구상에 존재했던 모든 여성들이 일상적으로 겪어온 경험이 아직까지도 ‘충격적’일 수 있을 만큼 가시화되지 않았다는 증거이기 때문이다. 생리는 원래 저렇다. 나의 ‘생리’ 또한 마찬가지다. 나의 생리는 주기적으로 내게 찾아오며 평생 안고 살아야 할 운명 같은 것이지만, 그것은 결코 가시화되지 않은 채 내 삶과 무관한 듯, 생리를 마치게 되는 그 날까지 언제까지고 숨겨져 있어야 하는 것처럼 존재한다. 그리고 생리가 숨겨야 할 것으로 터부처럼 나를 따라다니는 한, ‘생리를 하는 나’ 또한 바로 그만큼 이 사회에서 터부시되며 숨겨야 하는 어떤 것으로 존재할 것이다.
앞서 말했듯, 나의 ‘생리’는 생리 공결제로 대변되는 여성의 이기심의 상징이지도 않고, 생리대 광고에 나오는 청순하고 순결한 무언가이지도 않다. 바로 내가 우리 사회에서 ‘김치녀’라 지칭되는 이기적인 여자이기만 하지도, 그렇다고 청순하고 순결한 처녀이지도 않은 그냥 ‘나’인 것처럼, 생리는 내가 무언가를 잘못해서 내게 찾아온 사건도 아니며, 그저 모든 여성이 겪는 일상적인 경험일 뿐이다. 따라서 여성의 ‘생리’를 있는 그대로 직면하지 않고, 성스럽거나 부끄럽거나 이기적인 어떤 것으로 만드는 모든 시선에 대해 말한다. “나의 생리는 그렇지 않아!”
글 zeit
녹지 48번째(2014) 가을호 수록
여성에게 생리란 무엇일까? 해도 싫고 안 해도 싫은 것. 주기적으로 하면 건강하지만, 주기적으로 고통스러운 것. 윗글이 쓰인 2014년과 다시 쓰이는 지금 사이, 우리는 유해 물질이 잔뜩 든 생리대를 갖다 버렸고, 월경을 정혈이라고 부르기로 했으며, 지금까지 정혈대 흡수력 실험이 물로 진행되어 왔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편리를 위해 만들어진 일회용 정혈대였겠지만 흡수도 성분도 믿을 수 없게 되었고 여성들은 대체제를 찾기 시작했다. 일회용 정혈대의 이전 모습이었던 천 정혈대부터, 외국에서는 많이 사용하지만 보건 시간에 옵션으로 안내받지도 못한 탐폰, 그리고 다회 사용이 가능하면서 실리콘으로 만들어져 성분에 대한 걱정도 덜 수 있는 정혈컵까지. 누군가는 싸고 좋은 정혈대를 사용하기 위하여 직구를 하기도 했고 “여성을 위한” 새로운 정혈대, 탐폰 기업들도 나오기 시작했다. 드디어 우리에게 다양한 옵션이 생긴 듯 보였다. 실제로 삽입형을 꺼리던 많은 여성들이 정혈컵과 탐폰 사용을 도전하게 되었다. 그렇지만 여전히 국내 정혈대 브랜드는 믿음직하지 못하고 가격도 여전히 비싸다.
생리대 파동 이전의 우리는 왜 선택권이 없었을까. 나의 초등학교 보건 시간을 생각해보자면 정혈대와 탐폰을 설명하던 보건 선생님의 모습이 떠오른다. 아마도 4학년이었던 것 같다. 몇몇 성장이 빠른 친구들은 초경을 한 경우도 있었다. 나에 해당하지는 않았지만, 그런 친구들에게는 늦은 교육이었을 것이다. 그리고 선생님은 ‘탐폰은 넣어서 사용’한다는 설명만 하고 너희는 대부분 이것을 사용할 것이라는 말과 함께 정혈대를 꺼내셨다. 어떻게 뜯고 어떻게 붙이는지 버릴 때는 어떻게 버려야하는지. 어쩌면 퍽 당연한 소리를 하는 것 같지만 이마저도 배우지 못한 경우가 많았다. 6학년 때 초경을 한 내가 탐폰을 써본 것은 고등학교 2학년 때였다. 너는 무서워서 집어넣지 못할 것이라는 엄마의 말에 생리대 파동 이후에도 탐폰도, 정혈컵도 아닌 정혈대를 썼다.
우리에게 선택권이 없었던 이유는 이전 세대에게 선택권이 없었기 때문이다. 엄마가, 선생님이 탐폰을 거의 쓰지 않았기 때문에 우리에게 알려줄 수 없었다. 정숙해야 하는 여성의 질에 무엇인가 넣는다는 것이 보수적인 위세대에게는 괴상해 보였을 수도 있다. 물에 들어갈 때 사용하는 것 정도로 생각하고 가족 일정에 맞춰 정혈을 할 때나 권할 수 있는 것 정도였을지도 모른다. 내가 엄마의 발언에서 느낄 수 있는 점은 엄마가 질에 뭔가를 넣는다는 행위가 어색하고 이질적인 일이라고 생각한다는 것이다.
첫 번째 글은 2014년, 이 글은 2023년에 쓰였다. 그사이 이름 없던 출혈은 정혈이라는 어엿한 이름이 생겼고, 생리대 유해성 논란이 생겼고, 탐폰과 정혈컵을 쓰는 여성들이 많아졌다. 이전 세대의 생각은 접어두고, 이름을 붙이고, 나에게 맞는 정혈 용품을 선택한다. 그렇지만 달라지지 않은 것이 있다. 바로 ‘생리 공결제’이다.
여전히 ‘생리 공결제’는 여학우만을 위한 공정하지 못한 제도로 불린다. 이러한 ‘여론‘은 예비군 훈련기간에 가장 심해지고 에브리타임을 비롯한 커뮤니티들에는 정혈에 대해 전혀 알지 못하는 사람이 쓴 듯한 게시물들도 올라온다. 모든 여학우는 ‘생리 공결제’로 이득을 보고 있다고 믿고 싶겠지만 “모든”이라고 하기에는 부족하다. 생리 공결제가 제도적으로 마련되어 있지 않은 학교도 여전히 많고 제도적으로 마련이 되더라도 교수의 재량에 따라 적용이 되지 않을 수도, 태도 점수라는 이름으로 감점당할 수도 있다. 이러한 페널티를 피하고자 실제 월경을 할 때도 생리 공결을 쓰지 않는 여학우가 꽤 많다.
올해 초 전남대학교가 전국에 있는 거점국립대학 10개 교 중 4번째로 생리 공결제를 마련했다. 나머지 6개교에는 여전히 생리 공결제가 없다. 생리 공결제가 없는 경우에는 다른 질병 결석과 마찬가지로 병원 진단서나 의사 소견서와 같이 증빙 서류를 내야만 한다. 생리 공결을 위해 정혈 중임을 증명해야 하고 병원까지 가야 하는 것이다.
사내에서도 학내에서도 여전히 생리 공결이라는 것은 자리 잡지 못한 제도이다. 여학우만이 쓸 수 있고 증빙이 필요 없어 사용하고 싶을 때 휴가처럼 사용한다고 하지만 실상은 페널티가 무서워 쓰지 못하며 제도가 부재한 학교도 매우 많은 상황이다. 생리 공결제가 마련된 상황을 이해하지 못하는 것에 더불어 있지 않은 일을 이야기하며 오남용과 불공정을 이야기한다. 2004년 “생리로 인한 결석을 병결·병조퇴로 처리하는 것은 여학생에 대한 인권침해다”라는 진정에 대한 답변으로 2006년 국가인권위원회가 교육부에 생리 공결제 마련을 권고하면서 시작되었다. 여성의 정혈은 질병이 아니다.
생리 공결제는 2014년에도, 2023년에도 여전히 제대로 보장되지 않고 있다. 여성으로 태어나 주기적으로 정혈이라는 컨디션 난조, 호르몬 분비를 겪어야 하는 여학우에게 생리 공결제는 건강권에 대한 보장이다. 생리 공결제가 생긴 이유에 이해와 그에 따른 보장이 더 필요할 것이다.
글 유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