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녹지 Oct 31. 2023

[지난녹지 새로읽기]파시즘은 일상을 잠식한다

녹지 40번째(2006) 봄호 수록

다시 읽기

오늘 저녁에도 준비된 술자리가 있습니다. “올 사람은 오고 갈 사람은 가라”고 말 하지만 그건 말 뿐. “웬만하면 다들 가지”, “왜, 뭐 중요한 일이라도 있어?” 란 말에 떨어지지 않는 발걸음을 재촉합니다. 오늘도 배웁니다. 첫잔은 원 샷, 첫 잔은 불가. 선배의 키스는 후배의 원 샷. 쓰러져 잠들 때까지 마시면 오늘 과업은 달성입니다. 놀라운 것은 이런 경험들이 나 혼자만의 것이 아니라는 점입니다. 애국조회는 내가 다닌 초등학교에서만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죠. 이런 일들은 내가 속한 과에서만 있는 것이 아니라 다른과에서도 다른 학교에서도 대동소이하게 진행되고 있어요. 


우리 생활 속 깊숙이 뿌리 깊게 자리하고 있는 ‘일상적 파시즘’. 이 녀석은 자유자재로 몸을 바꾸고 여러 ‘~주의’와 몸을 섞어서 교묘히 우리 정신 속에 녹아들어 생활을 조작하고 있습니다. “전체주의적 심성과 위계질서를 구조화하는 언어생활, 청소년 시절부터 규율과 복종을 내면화시키는 학교교육, 카드 섹션처럼 일사불란한 학 생운동, 여성을 내적 식민지로 만든 가부장주의, 여성과 외국인 노동자약자와 소수자를 타자화 시키는 가부장적 혈통주의…” 기성화된 대학문화에서도 이런 일상적 파시즘은 만연하지만 워낙 공고히 다져진 전통이 되어 버려서인지 문제의식을 가질 새도 없이 일상으로 받아들여지곤 합니다. 


언제부터였을까요? 내가 술자리를 기피하기 시작한 것은 


대학에 갓 들어온 새내기였을 땐, 선배와의 술자리는 빠져서는 안 되는 줄 알았습니다. 어리버리한 새내기의 눈에 선배들은 완벽한 대학생으로 자리매김한 부지런히 보고 배워야 할 분들이셨지요. 사실 늘 술자리가 재밌었던 것은 아니었답니다. 여러분도 대부분 경험하셨을 거예요. 서먹한 분위기, 그리고 분위기를 띄워야한다는 강박감... 하지만 한번 빠질 때마다 대학에서의 나의 생활, 선배와의 교우관계가 흔들리는 기분인데 어쩌겠어요. 계속 참여해야죠. 


그 날도 과 행사로 인해 모두 모여 술을 마시고 있었던 것 같아요. 여자가 더 많은 과 특성에도 불구하고 남자 선배가 대부분이었습니다. 여자선배는 왔다가도 얼굴만 비치고는 어디론가 사라져버렸더군요. 테이블 이쪽저쪽에서 호탕한 웃음소리가 터져 나오지만 고학번 사이사이 한명씩 끼워진 새내기 여학우들은 어느 장단에 웃어야 할지 모릅니다. 그럴 때마다 나는 왠지 여긴 내가 있을 곳이 아니란 생각만 들었어요. 


“새내기가 불쌍하지, 2학년은 돈만 내면 나오건 나오지 않건 자기 마음이니까” 


어떤 여선배가 자조적으로 내뱉은 말이었습니다. 졸음이 오도록 재미없던 술자리 임에도 나는 그 선배를 이해할 수 없었습니다. ‘왜 과 일에 참여하지 않아요? 재미없다 불평하지 말아요. 남자선배가 주도하는 술자리는 참여하지 않는 여자선배 때문에 만들어진 것 아닌가요?’ 입 밖으로 내뱉지 못했던 이 말은 나의 과 생활 지침이 되었습니다. 나는 일 년 후 후배가 들어왔을 때 이런 선배가 되고 싶지 않았어요. 술자리건 과 일이건 열심히 참여해서 이런 풍토를 바꾸겠다, 후배에게 버팀목이 되고 싶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그런 나름의 다짐도 오래가지 못했습니다. 학번이란 벽은 높고도 공고한 것이었거든요. 대학이 ‘자유롭게 토론하며 서로 의견을 개진할 수 있는 곳’ 일거라는 생각은 발로 꼭꼭 밟아서, 타는 쓰레기 수거 날에 집 앞에 갖다 놓을 수밖에 없었죠. 과에 대한 진지한 토론을 할 때도 난 아무 말 할 수 없었습니다. 동기가 미리 말했거든요. “형들 말씀하시는데 끼어들지 말라”고. 그럼요, 하늘같으신 선배님들 말씀하 시는데 05학번이 어떻게 말을 섞겠습니까.  


게다가 나는 대등한 위치의 학우가 아닌 ‘여’ 학우로 행동해야죠. 세상엔 남자가 할 일과 여자가 할 일이 나뉘어져 있으니까요. 재미있는 이야기를 꺼내거나 분위기 를 주도하는 것은 남자의 일, 귀엽게 웃고 박수치는 것은 여자의 일.  


분위기를 가라앉히는 것은 중죄에 해당합니다. 분위기를 해친다는 명목 하에 조근조근 대화는 금지되고 우리는 분위기 메이커를 바라보는 관중이 됩니다. 성희롱을 해도, 타인의 프라이버시를 술안주로 삼아도(술자리에서 선배에게 배운 것 중 팔할 은 ‘학내 연애관계도’ 였죠. 학교에 입학하기도 전에 누가 누구랑 사귀었다더라, 누가 누굴 좋아했다더라, 안주거리로 그만한 이야기가 없습니다. 당사자의 기분일랑 상관하지 않아도 됩니다. 새내기와 친해지는 대업을 달성하려는데 그깟 프라이버시가 무슨 문제입니까), 누군가를 희생양으로 삼는 폭력적 웃음도 분위기를 띄운다는 명분 아래 모두 용서가 됩니다. 설사 뾰족이 한명이 “선배, 그거 성희롱 아니에요?” 라고 말한다 해도 그건 전적으로 그 학우의 사회성 문제로 귀결되곤 하죠. 늘 여자는 군대에 안 갔다 와서 사회생활을 모른다 하셨던 선배님들. 지금 돌이켜 생각해 보니 뭣도 모르는 저희를 사람 만들려고 노력하시는 거였군요. 


요즘 선배들은 입버릇처럼 대학에 개인주의가 만연한다고 말합니다. 개인주의 때문에 과일에도 참여하지 않고 술자리도 기피한다고 말합니다. 글쎄요, 학우들의 의식은 높아졌는데 아직도 '후진' 술 문화를 고수한다면 누가 술자리에 가고 싶어 할까요? 난 전체주의가 만연한 대학보단 개인주의가 만연한 대학이 더 맘에 듭니다. 


내가 술자리에 참여하는 이유는 ‘우리 과는 하나니까, 우리 과를 위해서-’처럼 과 기에 대한 맹세 같은 이유 말고 그저 ‘사람들이 좋아서, 재미있어서-’가 되었으면 좋겠는데, 내가 너무 많은 걸 바라는건가요? 


그런데, 그리고… 폭력만을 체득한 사람은 폭력이 아닌 다른 도구로 사랑을 표현 하기가 어렵다고 하죠. 제대로 된 표현방식을 배우지 못했으니까요. 학습된 선배의 역할은 학번을 넘어 계속됩니다. 그토록 싫어했던 선배들의 태도와 행동이 동기끼리의 술자리에서도 터져 나옵니다. 06학번을 맞을 준비를 해나갑니다. 우리들은 그 이름도 자랑스러운 선배가 되어갑니다. 


사실 나도 마찬가지예요. 나도 똑같아요. 

후배가 들어오고 내가 선배가 되면 게임을 하다가 술을 먹이고, 

"진짜 잘어울린다. 커플 해-" 

짓궂은 농담을 하면서 

이제 우린 친해졌다 말할지 몰라요. 

그러면 말해주세요. 


이건 아니잖아요. 


글 이소벨

녹지 40번째(2006) 봄호 수록


새로 읽기


불과 몇 년 전만 해도 윗글에서 거론된 ‘일상적 파시즘’은 실제로 대학 사회의 주류 문화였다. 어리숙한 새내기들은 과 선배들의 강요로 학생회비를 뜯기고, 내키지 않는 단체 술자리에 머릿수를 채우고, 그곳에서 선을 넘나드는 불쾌한 대화가 오가도 거부하지 못하고 필수로 참여해야 하는 분위기가 있었다. 2017년 여름에 헐린, 담배 연기가 자욱하던 “빨간 벽돌”, 학생문화관(206)관 건물을 기억하는 사람들이라면 고개를 끄덕일지 모르겠다. 학내에는 새내기와 고학번 선배들이 섞여 있으니 대학 사회가 바뀌고 있다고 해도 이전의 구시대적 사고방식은 언제나 조금씩 존재감을 드러내고 있었으니 말이다. 


그러니 MT, 동아리, 축제 등을 제대로 경험할 기회조차 없었던 비대면 학사로 대학 사회를 배운 코로나 학번은 이전에 존재하던 ‘일상적 파시즘’이 완전히 과거의 산물이라고 느껴질 것이다. 미투 시대(2016~2019)에 공론화되던 교수나 학생 간의 성희롱, 성폭력 문제는 온라인 기반 코로나 시대(2020~2022)를 거치며 소강상태가 되었다고 오독되는데, 이제는 더 이상 성차별이 실재하지 않는다는 백래시까지 더해져 중앙대에서 성평위 폐지가 날치기로 통과되는 근거를 더했다.  


2010년대 중후반은 분명히 대학 사회에서 빈번하게 발생했던 성폭력, 성희롱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자정작용이 이루어지던 시기였다. 저질스러운 술게임과 술문화를 더는 이어오지 않으려 노력했고, 단톡방 성희롱을 수면 위로 끌어내 당연하게 여겨졌던 여성혐오를 헤집었다. 교수의 권위로 쉬쉬하며 참아 넘기던 문제도 미투운동으로 재조명되었다. 그리고 90년대부터 불거지던 학내 성희롱, 성폭력 문제에 직면하여 실질적인 대책을 고안하게 되었다. 이전부터 논의되던 학내 성폭력 상담소에 착안하여 성폭력 신고 창구를 운영하고, 반성폭력 회칙을 개정하는 등 학내 성평등 문화를 확산하기 위한 적극적인 노력이 이어졌다. 이렇게 총여와 성평위는 선진 대학 문화를 요하는 시대의 요구에 따라 단계별로 성평등 사업을 이끌었다.  


2020년대에 들어 성평위가 폐지되고 잇달아 장인위가 통폐합되는 사건은 학내에서 여성과 장애인이 다시 타자화되는 과정이었다. 더 많은 인권을 포괄적으로 다루기 위한 것이라는 듣기 좋은 말은 결국 평등한 인권을 쟁취하기 위한 약자의 노력을 뒤로 숨기고 원래대로 남성의 인권을 우선하기 위한 말이다. 연서명을 받아 힘겹게 장인위를 설립했고, 총여가 폐지된 이후 이대로 여성 인권을 후퇴시킬 수 없다는 저항으로 성평위를 만들었다. 그러나 학내 소수자들의 노력으로 만들어진 이 위원회들은 ‘더 많은 인권’이라는 가벼운 말로 물거품처럼 사라졌다. 


기나긴 비대면 시기에 성평위가 폐지되었기에 그 공백이 당장 체감되지 않았을지 모른다. 그러나 슬슬 마스크를 벗으려는 때에 인하대에서 성폭행 추락사 사건이 발생했고, 결국 학내에서 성평등이 실현되었다고 말하기 시기상조라는 것이 드러났다. 여성에겐 남성이 누리는 안전한 캠퍼스가 여전히 허락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다른 학교의 사례를 우리 학교에 적용하는 것이 맞지 않다고 생각할 수 있겠다. 그러나 완전히 대면으로 전환된 2023년 현재, 학내에서 일어난 성폭력 사건들이 인권센터의 결정으로 공개되어 대자보로 걸리는 것을 본 적 있을 것이다. 사건이 끊이지 않으리라는 징조가 무색하게 성평등을 전담하여 고민하는 기구는 이미 사라졌기에 업무 공백이 발생할 수밖에 없다. 결국 코로나 시기에 맞이했던 일시적 평화는 성평등을 위한 치열한 노력이 빛을 보아 누리게 된 완전한 평화가 아니었다. 단지 학내에 사람이 없었기에 일어난 해프닝이다. 


최근 2023-2 전학대회에서 반성폭력 회칙이 개정되었다. 제2장 성폭력의 개념에서 “상대방의 의지에 반하거나 의지와 관계없는 고정된 성역할을 강요하는 것”이라는 부분이 삭제되었다. 이 부분이 성차별의 개념에 대한 내용이기 때문이다. 성차별을 넓은 의미에서 성폭력이라고 볼 수 있지 않느냐는 질의에 총학생회장은 일단 삭제부터 한다는 식으로 답변했다. <성평등 문화 확산을 위한 학생회칙>을 논하며 성폭력에 대한 조항만 남겨놓고 성차별에 대한 개념이 회칙에 필요한지 나중에 고민하겠다는 대답이었다. 이번 65대 총학 임기가 이미 끝나가는데, 인권센터의 자문을 받아 성차별에 대한 개념을 제정할 것이라는 과업이 언제 달성될 것인지 우려된다. 다음 대의 총학에서라도 이어질 것인지 지켜봐야 할 것 같다. 


성평위는 경찰을 대신하려는 학내 성범죄 처벌 기구가 아니었다. 단지 대학이라는 공동체에서 문제의 근원을 찾아 함께 해결하고 다른 사건이 일어나지 않도록 ‘예방’하는 역할을 했다. 누군가는 가해자가 단순히 정신이상자 또는 사회 부적응자이니 다른 남성과 상관없는 문제라고 한다. 그러나 성차별, 성폭력 문제는 여성에 대한 왜곡된 인식에서부터 시작된다. 이 인식은 가해자뿐만 아니라 우리 모두의, 사회의 문제이기에 여성 인권을 함께 고민하지 않을 수 없다. 


학내에서 관습적으로 여성과 남성의 역할을 나누었던 사소한 인식을 바꾸는 것에서 출발하면 된다. 스포츠 동아리에서 여성이 매니저의 역할에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선수로 활약할 수 있도록 다양성이 확보되고, 학생회장으로 출마하는 여학우가 남학우만큼 비등해져야 한다. 여학우가 이성 관계와 가십의 대상으로 전락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의 동등한 인격체로 존중되어야 한다. 여전히 우리의 인식에 남아있는 성차별이 해소되면 성별과 상관없이 학내에서 자유롭게 토론하고 경험하게 될 것이며 여성을 대상화하며 발생하는 성희롱, 성폭력 사건도 차츰 사라질 것이다. 우리의 평범한 일상을 위하여 성평등한 캠퍼스를 위한 노력은 계속 이어져야 한다. 


게다가 나는 대등한 위치의 학우가 아닌 ‘여’ 학우로 행동해야죠. 세상엔 남자가 할 일과 여자가 할 일이 나뉘어져 있으니까요. 재미있는 이야기를 꺼내거나 분위기를 주도하는 것은 남자의 일, 귀엽게 웃고 박수치는 것은 여자의 일. 


글 지연














작가의 이전글 [지난녹지 새로읽기]나의 '생리'는 그렇지 않아!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