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마 <이브>
요즘 문동은의 복수 이야기인 더글로리 열풍이 불고 있다. 문동은의 복수극이 있기 이전에 작년 여름 이라엘은 이미 뜨거운 피의 복수를 먼저 이뤄냈다. 여성이 그려내는 악과 그에 대한 복수, 인과응보, 권선징악을 사랑하는 시청자를 보며 이브에 대한 기억이 다시 났던 것 같다. 이브는 부모를 죽인 사람들에게 복수하는 이라엘의 이야기이다. 주인공도, 악역도, 조력자도 여성이다. 반도체 신기술을 가진 스타트업 CEO의 딸 이라엘, 그 CEO를 죽이고 신기술을 혼수로 들고 간 한사라, 그의 남편이자 LY 그룹의 총수 강윤겸, 부모를 잃은 이라엘을 도와준 서은평. 이 사람들의 사각 관계를 그려낸 격정 멜로 장르의 드라마이다.
이브를 본 이유는 여성의 복수극이라는 흥미로움 때문이었지만, 여성 주인공의 여성 서사가 여성주의적이지는 않다 보니 불편한 장면이 많았던 것 같다. 그러한 불편함은 사각 관계에서 기반하는 것이 많았고, 이라엘을 아름다운 여성이라는 점을 강조하는 점에서 기인했을 거라고 생각한다.
이라엘이 복수를 준비하는 과정에서 강윤겸과의 불륜으로 발판을 마련했다. 게다가 한사라와 강윤겸의 자녀와 동갑인 아이가 있는 남성과 결혼을 한 채로 나타난다. 한사라의 자녀와 이라엘의 자녀가 같은 유치원에 다니면서, 이라엘의 무용학원에 유치원 아이들을 모은다. 이 학원을 발판으로 사람들과 관계를 뻗어나간다. 무용 학원, 돌싱과의 결혼, 아름다운 미모, 남성 권력에 편승해서 복수를 준비하는 것까지 이라엘은 전형적인 서사 속의 여성이다. 이 드라마가 이전과 다른 점은 이라엘이 가련한 여주인공을 괴롭히는 악녀가 아니라 주인공이라는 것이다.
강윤겸과 이라엘은 믿을 만한 가족도 친구도 없다는 공통점과 탱고에 대한 사랑으로 운명과 같다고 믿게 된다. 사실 이 공통점과 탱고는 이라엘이 강윤겸을 회유하기 위한 장치였지만, 강윤겸이 주는 감정에 이라엘도 동조하게 된다. 그 사이에 은인이었던 서은평의 짝사랑까지 가미되면서 강윤겸의 사랑은 더 커지게 된다. 조력자인 장문희는 사랑과 같은 간사한 감정에 휘둘려 일을 그르치지 말라고 한다. 행복하고 싶지 않다고 말하는 사람에게 사랑하라고 할 수는 없겠지만, 사랑과 감정을 장애물 취급하는 점이 멜로라는 점과 괴리가 생기는 것 같다.
더글로리와 가장 큰 차이점은 장르물이 아니라 격정 멜로라는 점일 것이다. 이라엘의 한사라에 대한 복수가 주된 내용이었다는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하지만 강윤겸과의 감정, 그리고 이라엘의 은인이던 서은평의 이라엘에 대한 짝사랑을 자꾸 조명하며 사각 관계를 보여주려는 의도가 보인다. 강윤겸과 이라엘의 운명적인 관계, 엇갈린 운명, 공통점 등을 강조하며 이라엘이 복수하는 과정에서 강윤겸을 포기해야만 하는 아픔을 보여주려 한다. 게다가 한사라에 대한 벌을 강윤겸이 주게 되면서 강윤겸의 사랑이 더 숭고해 보이는 결과를 낳게 된다.
이라엘과 한사라의 적대적인 관계와 철저한 복수극을 재밌게 본 것과는 별개로 자극을 추구하며 이성애와 폭력과 성관계를 보여주며 TV 드라마에서 19금을 보여준 점이 불쾌했다는 것은 부정할 수 없다. 여성의 복수극이지만 더글로리와 같은 이유로 사랑받지는 못했던 이유라고 볼 수 있을 것이다.
글 여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