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브리씽 에브리웨어 올 앳 원스> 양자경의 아카데미 여우주연상 수상
최근 영화 <에브리씽 에브리웨어 올 앳 원스>로 아카데미 여우주연상을 동양인 여성 최초로 수상한 양자경의 수상소감을 무단으로 편집한 SBS의 사건이 논란이 되었다. 단순히 자막에서 ‘여성’을 ‘여러분’이라 고쳐 쓴 것이 아니라 ‘Ladies’라고 분명하게 언급한 음성까지 묵음 처리하여 송출한 점이 더욱 놀라웠던 사건이다.
논란이 커지며 SBS는 결국 “기사를 발제한 취지와 리포트를 통해 전달하고자 한 메시지는 해당 배우가 아시아계 여성으로서 '차별의 벽'을 넘어 성취를 이룬 사실을 전달하는 것이었다, 의도를 갖고 왜곡할 의도가 전혀 없었다는 점, 헤아려 주시기를 바란다”라는 해명을 전하며 수정본을 다시 게시했다.
최초의 아시아 여성 수상자라는 타이틀에서 양자경은 분명히 ‘Asians’보다 ‘Ladies’라는 표현을 사용하며 여성들의 성취에 희망을 주는 의도가 있었다. "이 상을 제 엄마께 바친다. 모든 전 세계 어머니들께 바치고 싶다. 왜냐하면 그분들이 바로 영웅이기 때문”이라는 말에서 모든 여성에게 전하는 말이었을 것이란 점을 유추할 수 있다. 영화에서도 바로 ‘평범한 아버지’가 영웅이 되어 세상을 구하는 흔한 내용이 아니라 ‘평범한 어머니’가 주인공이라는 점 또한 이 영화를 특별하게 만들어 주었던 하나의 요소이다.
이 해프닝을 보고 영화 <오션스8>이 생각났다. 오션스는 유명한 남배우들이 우르르 나와서 인기를 끌었던 범죄 코미디 시리즈인데 같은 흥행 공식에 성별을 바꾸어 오션스8이란 영화가 나오게 되었다. 가수 리한나, 배우 케이트 블란쳇, 샌드라 블록, 앤 해서웨이, 헬레나 본햄 카터 등 유명한 여배우들이 나와 각자의 매력을 보여줬다. 후속편이 이어지면 흥미가 떨어지기 마련이지만 단지 주연배우를 모조리 여성으로 채웠다는 점에서 이 영화를 보는 여성 관객들은 완전히 새로운 경험을 했으리라 생각한다.
그러나 이 새로운 경험에 물을 뿌리는 존재가 있었었다. 절도 모의를 할 때 왜 남성 멤버는 안되냐냐는 질문에 대한 “A ‘him’ gets noticed, a ‘her’ gets ignored”라는 대사를 “‘그’는 주목받고, ‘그녀’는 무시된다”라고 번역하는 게 아니라 다음 대사인 “이번만큼은 무시되고 싶어”라는 말과 합쳐서 “남자가 끼면 일이 복잡해져”라는 괴이한 자막으로 세상에 나오게 된 것이다.
이런 일들이 왜 일어나는 것일까. 이 두 가지 사례는 단순히 번역가의 역량이 떨어져서라는 안일한 이유만으로 설명할 수 없다. 여성들은 분명히 수상 소감에서, 영화 대사에서 자신들을 지우지 말아달라 이야기하지만, 남성들은 이 외침을 너무도 쉽게 지워버린다. ‘여성’에서 ‘양성평등, 인구 가족, 사회복지’ 등으로 명칭이 바뀌고 성 중립 화장실이 생겨나는 현 상황도 생각해봐야 할 문제이다. 남성들은 이렇게 쉽게 여성이란 단어를 지워나가는데 우리는 어떤 행동을 해야 할 것인가. 남성들이 ‘남성’이라는 집단적 권력에 숨어 조직적으로 행동한다는 것을 인지하고 투쟁해야 하지 않을까.
글 안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