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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녹지 Apr 10. 2023

[검은 창 너머의 세계] 사랑하지만 숨이 턱 막힐 때

영화 <에브리씽 에브리웨어 올앳원스>

딸이자, 엄마이자, 아내이자, 세탁소 주인으로 과중한 책임에 시달리는 에블린은 인생에서 힘든 시기를 보내고 있다. 아버지에게는 반대하던 결혼을 하고도 코인세탁소나 운영하는 기대에 못 미치는 딸이며 세탁소 일은 바쁜데 남편은 옆에서 눈알 스티커로 장난을 치고 있다. 하나뿐인 딸 조이는 사춘기가 지났는데도 여전히 반항하고 있는데, 대학을 자퇴하고, 타투를 하고, 담배를 피우고, 화장기 없는 얼굴에 동성연애를 하는 골칫거리이다. ‘Googly eyes’를 ‘Google eye’라고 부르고 ‘He’와 ‘She’를 헷갈리는 에블린과 할아버지한테 날이 갈수록 중국어 실력이 퇴보한다는 말을 듣는 조이. 언어적 장벽은 모녀의 소통과 사고방식까지 가로막는 동시에 에블린이 어디에도 속하지 못한 채 이방인으로 존재하는 원인이 된다.


영화 속의 오늘, 남편은 이혼서류를 건네려 하고 있으며 미국으로 온 아버지의 생일파티를 해야 하는 날에 세무조사까지 다녀와야 하는 미치도록 바쁜 최악의 날이다. 정신없는 일들로 가득 찬 세탁소를 뒤로하며 조이를 쫒아가 말을 건다. 그러나 수많은 생각 중에 떠오르는 말은 “건강하게 먹어라, 살쪘다”라는 상처뿐인 잔소리다. 이에 조이는 숨이 막힌다는 표정을 짓고 여자친구와 함께 떠난다.


그러나 버겁고 지치는 일들로 가득 찬 날, 에블린은 세상을 구할 유일한 사람이 되어버렸다. 알파 버스에서 온 알파 웨이먼드는 이 세상은 인생의 갈림길로 뻗어나간 다중우주로 이루어져 있으며 “조부 투파키”라는 악당으로부터 세상을 구하기 위해 에블린을 찾아왔다고 말한다. 에블린은 평행우주의 또 다른 나의 능력을 빌려오기 위해 버스 점프를 어떻게 해야 하는지 배우고 놀라운 경험을 한다. 어쩌면 그랬을 수도 있는, 또 다른 나의 인생, 그 인생에는 남편 웨이먼드가 없다. 결혼하고 미국에 이민 가는 대신, 무술을 연마해 액션배우가 된 인생을 경험하게 된다. 그 화려한 인생은 배우 양자경의 인생과 닮아있다. <엽문>, <예스마담>, <와호장룡> 등 수많은 영화에서 쿵푸 액션으로 입지를 다진 실제 인생이 연상되며 에블린이 바라던 삶이 허무맹랑한 상상만은 아닐지도 모른다는 근거를 더한다.


엄마와 딸, 애증이라는 모순

에블린은 얼떨결에 악의 세력과 맞서 싸우다가 결국 악의 근원인 “조부 투파키”가 자기 딸인 조이라는 사실을 마주하게 된다. 알파 에블린이 강요한 실험에 의해 탄생한 조부 투파키는 딸 조이였던 것이다. 그런데 조부 투파키는 자꾸 에블린에게 말을 건다. 에블린쯤은 쉽게 죽여 없앨 수 있는 능력이 있지만 “너 때문에 조이가 레즈비언이 된 거냐?”는 어처구니없는 말도 들어준다. 에블린도 이 혼란의 원인이 조부 투파키에 의한 것이며 죽여 없애야 해결할 수 있다는 걸 알지만 차마 조이를 죽이지 못한다. 오히려 수많은 평행우주를 경험하며 강해진 조이에 맞서기 위해 같아져야 한다고 주장한다. 에블린은 정신 붕괴를 감내하며 무한한 버스 점프를 시도하게 된다.


웨이먼드가 에블린에게 세상을 구할 수 있는 유일한 사람이라고 했던 것과 같이, 조이는 에블린에게 당신만이 날 이해할 수 있다고 이야기한다. 조이는 현실에서 엄마가 툭 던져대는 말들에 상처 입으면서도 아무렇지 않은 척을 하고 그럼에도 결국 엄마의 인정과 이해를 바란다. 세탁소에서 여자친구 문제로 싸워대던 일이 그저 치기 어린 반항이라고 볼 수는 없을 것이다. 3년이나 사귄 여자친구를 할아버지에게 정식으로 소개하는 일이 문제의 원인으로 보이지만 본질은 조이의 연애를 못마땅하게 여기는 에블린의 태도에 있다. 그런데도 조이는 사랑하는 엄마의 이해를 바라고 그 희망을 놓지 못하는 것이다.


한편으론 이 기대가 허망한 것만은 아니라고 볼 수 있다. 에블린의 인생은 “유감이지만 딸입니다”라는 말로부터 시작되었지만, 에블린에게 있어 조이는 기쁨 그 자체이다. 능력 없는 남자와 결혼해 따라가겠다는 딸을 쉽게 놓아버렸던 아버지와 달리 에블린은 가시 돋친 잔소리를 할지언정 결코 딸을 포기하지 않는다. 엄마와 딸이라는 단단한 유대가 서로를 결코 포기할 수 없는 끈이 되어주는 것이다. 


모든 것을 보고 다 부질없다는 조부 투바키의 모습을 보고 누군가는 중2병을 암시한 게 아닌가 생각할 것이다. 그러나 단순하게 이를 중2병이라 명명하고 지나갈 시절으로 여기거나 나쁜 것에 물든 불쌍한 딸이라는 시선으로 보아서는 아무것도 해결할 수 없다. 언제나 조이는 자신의 본질을 봐주길 바라고 진정한 소통을 원했기 때문이다. 영화 밖의 우리들의 삶에서도 비슷하지 않은가? 엄마와 혹은 딸과 대화할 때 서로 숨이 턱 막히는 지점이 있더라도 가끔은 진심을 알아주길 바라며 편안함보다 불편함을 택하곤 할 것이다. 


허무주의 베이글과 제3의 눈

조이는 평행우주의 모든 곳의 모든 가능성을 동시에 경험하며 허무주의에 빠져 괴물이 되었다. 어차피 그렇게 다양한 인생이 있고 가능성이 있어도 결국은 확률적 필연인 ‘무’, 즉 죽음이 끝인데 뭐가 의미가 있냐는 것이다. 조이가 모든 것을 얹은 베이글을 만들고 평행우주를 넘었던 것은 세상의 파괴를 목적으로 한 것이 아니라 자신의 끝을 함께할 이해자 에블린을 찾은 것이었다. 영원히 고정불변 하는 것이 없고 실체로서의 ‘나’가 없다는 무상과 무아의 상태에서 타인을 공격하는 것도 의미가 없기 때문에 오직 자멸을 원하는 뒤틀린 신념을 갖게 된 것이다.


베이글부터 세탁소의 빨랫감, 세무관이 문제를 표시한 ‘0’ 모양은 바로 이 ‘無’를 형상화한 이미지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이 시각적 모티프는 ‘無’를 뜻하기도 하고 문제의 근원을 뜻하기도 하며 에블린의 인생에서 문제가 되는 골칫거리를 의미한다. 에블린의 평화로운 일상을 바꿔놓은 에브리씽 베이글, 끊임없이 반복되는 일상과 같은 빨랫감, 세무조사를 받게 된 원인 등 이것들만 사라지면 에블린의 걱정은 사라질지 모른다. 그러나 현실은 0과 1로 이루어진 이분법적인 디지털 세상이 아니기에 이 ‘0’들을 파괴하는 것보다 더 나은 해결책이 있다.


에블린은 눈알 스티커를 이마에 붙이며 제3의 눈을 뜨게 된다. 힌두교와 불교에서 미간 사이의 붉은 점으로 상징되는 ‘빈두(bindu)’, 제3의 눈은 내면의 눈이자 깨달음과 지혜를 의미한다. 에블린의 경우 친절이 세상을 바꿀 수 있다는 깨달음을 얻어 웨이먼드가 세상을 따뜻하게 보는 시선을 상징하는 이 눈알을 미간에 붙이게 된 것이다.


불교철학에서 시작된 ‘無’에서 허무와 존재, 실존에 대한 철학적 사유에 대해 공통적으로 이야기하던 걸 되돌아볼 수 있을 것이다. 니체의 영원회귀 개념이 결국 “아모르 파티” 운명을 사랑하라는 결론으로 귀결된 것처럼, “실존이 본질에 앞서기에 스스로 자유로운 선택과 결단을 통해 자신을 만들어간다”라던 사르트르처럼, 삶의 부조리를 발견하고 자살을 하는 것보다 부조리를 인식하며 살아가라는 카뮈의 사상 등 수많은 사상가는 허무에서 인간이 추구해야 하는 태도를 공통적으로 휴머니즘에서 찾아냈다. 이처럼 허무를 접하기 쉬운 현대사회에서 잊고 있는 인류애를 베이글과 눈알이라는 상징을 통해 고민과 해결의 과정을 효과적으로 보여준다.


꿈과 사랑과 희망

결론적으로 영화를 관통하는 주제는 바로 사랑이다. 에블린이 처음 버스 점프를 할 수 있게 되는 확률적 황당한 행동도 악당 국세청 직원 디어드리에게 진심으로 사랑한다고 말하는 것이었다. 에블린의 수많은 평행우주에는 디어드리를 사랑하는 세계도 있었고, 현실에서도 대화를 통해 각자의 힘듦을 이해하고 친구가 된다. 날선 말을 주고받는 것 보다 꿈과 사랑과 희망으로 더 나은 사회를 만들 수 있다는 점이다.


Frederic J. Brown / AFP

또한 꿈과 희망에 대한 의미는 누구보다 배우들이 증명하고 있다. 홍콩영화에서 할리우드까지 진출에 성공한 양자경이 작품성까지 챙긴 인생작을 만난 것, 할리우드에서 아시아계 배우로 설 자리가 없어 고초를 겪다 20년 만에 재기에 성공한 키 호이콴, 공포영화에서 비명을 지르며 도망가기 바쁘던 여배우 제이미 리  커티스의 연기 변신. 배우들의 극적인 이야기를 통해 인생이란 연속적인 선택과 가능성으로 구성되어 있기에, 희망의 끈을 놓지 말아야 한다는 교훈을 준다.


매력적인 여성 주연 영화를 만들기 위해

이처럼 매력적인 여성 주연 영화를 만들기 위해 필요한 것은 무엇일까? 웃기게도 이 이야기가 멀티버스를 소재로 하고 악으로부터 세상을 지킨다는 내용이라길래 마블의 <닥터 스트레인지>처럼 양자경이 어디선가 동양의 신비한 힘을 부여받고 수련을 한 뒤 멋진 망토를 두르고 초능력을 휘두르는 영화일 줄 알았다. 그러나 ‘에에올’은 화려한 CG 기법 없이 비현실적인 초능력보다 사랑, 선함, 친절을 무기로 무장한 채 명확한 메시지를 전달한다. 수많은 남성 주연 영화들 사이에서 여성 주인공, 그것도 중년 아시안 여성을 세운 점도 신선한 시도이자 하나의 메시지로 이어진다.


원래 이 영화의 주인공은 성룡이 맡기로 했고 그 부인 역을 양자경이 하기로 했다고 한다. 그러나 캐스팅이 불발되었고, 감독이자 각본가인 대니얼스는 성룡과 비슷한 수준의 대체 인력을 바로 옆에서 찾게 된다. 액션 연기를 해왔으며 주연을 소화할 수 있는 배우는 생각보다 가까운 곳에 있었다. 제작진은 조연을 맡은 여배우를 주연으로 바꾸는 파격적인 시도를 하며 각본을 전면적으로 수정하게 되었고 덕분에 우리가 이 작품을 만나게 된 것이다. 또한 성룡은 원래 여자는 액션 영화보다 부엌일이 어울린다는 차별과 편견을 가진 사람이었는데 양자경과 함께 영화를 찍으며 생각을 바꾸게 되었다는 일화도 찾을 수 있었다. 새로운 도전을 할 준비가 된 여성 배우와 편견 없는 제작진이 만난다면 앞으로 ‘에에올’을 능가하는 여성 주연 영화들이 충분히 쏟아져 나올 수 있지 않을까?


딸과 엄마가 함께 영화관에서 봐야 하는 영화

누구나 인생에서 후회하는 지점이 있다. 아마 다양한 인간 중에 ‘엄마’라면 에블린의 후회가 더욱 와닿을지 모르겠다. 세상이 변하고 예전과 달리 동성연애가 물 위로 올라왔고 남자 없이도 충분히 살 수 있다는 여성들이 많아졌다. 또한 여성들은 다양하게 사회진출을 할 수 있으며 결혼은 더 이상 필수 과업이 아니게 되었다. 나의 엄마이기 이전에 있었을 수많은 가능성에 아쉬움을 느끼는 딸들은 이 영화를 꼭 함께 보길 바란다. 세대 간의 차이로 생기는 갈등도 결국 사랑 앞에선 힘을 잃고 이해로 바뀔 것이다. 


글 안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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