굳이의 인생
‘굳이의 인생’을 시작한 사람으로서 지지를 받고 싶다는 생각은 욕심이란 걸 이젠 안다. 사람이 다 가질 순 없는 거니까. 그럴 땐 주위를 둘러보면 한결같이 나를 지지해 주는 나의 인생의 쿠션 같은 존재가 있음을 알게 된다.
인생에서 내 진정한 친구가 단 한 명이라도 있으면 성공이라는데 더 바라지 않기로 했다. 내가 어떤 선택을 하든 나를 지지해 주는 남편이 존재함에 감사하고, 믿어주는 부모님이 존재함에 감사하고 안위를 묻는 형제가 있음에 감사하자.
한편으로는, 나와 비슷한 선택을 하는 사람이 있다면 응원해주고 싶다. 위험부담을 가지고 미끄러져 떨어질 수도 있는 경사면을 오르는 삶을 살 필요는 없지만, 살아있다는 느낌을 받으려면 그런 선택을 해야만 심장이 뛰는 사람이 나만 있진 않을 거니까. 진짜 ‘굳이의 인생’이긴 하다.
가진 것만 갖고 잘 누리고 잘 살면 되는데 왜 자꾸 새로운 의미를 찾을까 싶었다. 그런데 난 그렇게 태어난 사람이고, 그게 숙명이라고 받아들이고 나니 많은 게 달라졌다.
소소한 행복으로 충분히 만족하는 사람들과 다르다는 게 불행이라고 생각한 적도 많았다. 그쪽에 나를 끼워보려고 애쓰다가 아닌 걸 깨닫기까지, 나 스스로 받아들이기까지 오래 걸린 것일 뿐. 단지 일반적이진 않으니까 모두의 지지를 바라진 말자. 유독 도파민이 더 필요한 거라면 그렇게 태어난 거라면 맞춰서 살면 되는 거니까.
외롭겠지만 인생의 쿠션은 하나라도 있으면 충분하다. 서로가 서로에게 쿠션이 되어주면서 앞으로 나아가는 게 내겐 행복한 결혼생활이라는 생각이 든다.
결혼하고 두 달 정도 온전한 휴식을 취하고 나니 모든 것이 가라앉아 언제나 명상하는 삶이 된 느낌이다. 생활의 루틴도 생겨서 혼자 살 때와는 많이 다른 안정감도 생겼다. 거기다 괴짜같이 끝이 없을 항해하는 삶을 받아들이니 오는 이상한 편안함.
무의식은 이런 날을 예상해서였던 걸까? 한 챕터가 마무리되었을 내년에 리마인드 웨딩을 예약한 건 문득 잘한 선택이란 생각이 든다. ‘결혼’이라는 걸 그저 사랑하는 사람과 가정을 만든다고 단순하게 생각했던 내가 귀여울 정도로, 인생에서 큰 변화를 주는 것이구나를 깨닫는다.
모험을 선택한 나의 미래가 궁금하면서도 그때도 어차피 항해하고 있을 나라서 그저 얼마큼 움직였을지가 궁금할 뿐이다. 명사적 목표가 아닌 동사적 목표가 생겼을 뿐이라서. 이런 괴짜를 만나 같이 지내주는 남편에게 고맙다.
더 이상 심심하지 않게 되어서 설레니 잘 다독여가면서 살아가보자. 앞으로도 주변에서의 잡음이 들리겠지만 쿠션이 내게 있음을 기억하며 내 인생을 책임져주지 못할 말들은 한 귀로 흘려버리면서 조용히 앞만 보고 걸어가자.
타인에게 굳이 설명하지 말고 항해하자. 내가 바다 위를 둥둥 떠다니겠다는데 그걸 알리고 설명해 줄 필요는 없다. 지지는 닻을 같이 올리고 서로에게 쿠션이 되어주는 부부면 충분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