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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Erin Park Oct 14. 2018

영화 "맥퀸"

“나비, 새, 꽃으로 태어난 죽음의 시그니쳐 "

다큐멘터리 영화 <맥퀸>은 패션 디자이너인 알렉산더 맥퀸이 찍은 영상들과 그의 작품의 기록들, 지인과 가족들의 인터뷰에 의해서 펼쳐진다. 알렉산더 맥퀸의 이야기를 5가지 주제로 마이크 니만의 음악이 덧붙여졌다. 이 5개는 그의 컬렉션의 제목이기도 하다. 패션 비즈니스에선 매출이 왕이며 순위이다. 실수가 절대 용납되지 않은 결과 위주의 쇼무대의 세계이다. 그런 세계에서 맥퀸은 특유의 실험적이며 독창적인 디자인으로 예술적으로나 상업적으로나 성공적인 입지를 다졌다. 패션계의 유일무이한 천재 디자이너로 평가받은 <맥퀸>을 들여다보는 것은 시각적인 것뿐만 아니라 여러 감각을 동원하게 만든다.





맥퀸은 오랜 기간 전통적인 서구 복식 구조로부터의 이탈을 고민하였고 새로운 실루엣을 선보였다.

맥퀸은 바지의 밑위를 아주 짧게 해서 음모가 보일 정도로 균형이나 비례를 의도적으로 무시한 실험적 접근을 시도하였다. 몸이 형성하는 그로테스크한 이미지는 이전에 경험하지 못한 새로운 형태이다. 이성에게 잘 보이기 위해 옷을 입는다는 이론에 의문점을 던지는 경험을 하게 만든다. 쇼 무대에서 보이는 그의 옷은 때론 관능을 넘어선 외설에 가깝게 신체의 일부를 드러냈고 실루엣을 해체하고 재구성하는데 천부적인 창작성을 보인다. 기존의 의복에서 쓰였던 관습적 소재가 아닌 기이한 재료로 옷을 만들고 차별된 색감에서는 비단 시각적 자극뿐만 아니라 촉각이 느껴지는 것 같다. 런웨이를 걷고 있는 모델을 보는데 내 귓가에 옷에서 나는 소리가 들리는 듯한 착각을 일으킨다. 그가 쓴 소재들이 갖고 있는 텍스처 특유의 상징성과 풍부함이 그대로 전해진다. 영화를 보고 있는 내내 시각적 촉각(Visual Tactility)이란 걸 경험한다.




맥퀸의 작품 세계를 구성하는 원천은 무엇일까?

그의 자신감과 애티튜드에 대한 근원에 대한 이야기가 영화 내 펼쳐진다. 옷이란 수동적이고 소극적인 여성성의 표현이라는 서구의 이분법적 논리에 정면으로 배치되게 공격적이고 폭력적인 여성성을 그리기도 했다. 그의 성 정체성의 문제가 아닌 옷의 테두리 안에서 그는 한 인간으로서 끊임없이 고찰한다. 투쟁하듯 자신과의 싸움 속에서 만들어낸 창작물과 사랑하는 사람들의 존재가 소멸함으로써 겪는 상실감은 대비를 이룬다. 이웃집 청년처럼 평범한 모습을 하고 있다가도 비장함을 온몸에 짊어진 모습을 하는 것을 종종 영화는 비춘다. 영화에서 비치지 않았지만  동종 업계 사람들의 경계와 비판은 디자이너에게 때로는 자양분이 되기도 하고 때로는 독이 되었으리라 생각된다. 맥퀸은 스포트라이트를 받기 시작했지만 항상 밝은 빛으로 둘러싸인 것은 아니었다.인터뷰어들은 음울한 표정과 목소리로 그렇게 전했다.  그의 삶의 근원으로부터 알려지지 않은 외로움, 고독 그리고 어린 시절의 지워지지 않을 상흔까지 가감 없이 담담하게 전하고 있다. 난해한 그의 작품이 센세이션 하게 받아들여지는 순간, 현장에서 쇼를 보고 있는 사람의 감각을 흔들었고, 스크린을 보고 있는 관객들도 순식간에 동화된다.

반면에 그의 내면을 이해하는 데는 쉽지 않은 시간이었다. 인간 근원적인 문제에 직면한 난제이기도 하다.  그래서인지 화면의 시간을 할애함에 있어서 깊이감이 느껴진다.



영화 <맥퀸>은, 아이러니하게도 그가 죽음에 이르렀을 때 절정을 맞는다. 절정의 순간에 맥퀸이 느낀 이사벨라와 엄마의 죽음으로 인한 상실감을 그대로 전한다. 영화 속 패션쇼를 보는 내내 느끼던 카타르시스와 충격은 자막이 다 지나서야 그가 더 이상 다음 쇼를 준비하지 않는 걸 실감한다.그의 시그니쳐인 해골은 그의 죽음을 예견한 듯했지만 나비, 새, 꽃으로 태어나 영화로 찾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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