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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Erin Park May 30. 2019

영화 "돈키호테를 죽인 사나이"

현실 vs 환상 모험담

영화의 모티브가 된 세르반테스의  풍자 소설의 정식 표제는 《재기(才氣) 발랄한 향사(鄕士) 돈키호테 데 라만차(El Ingenioso Hidalgo Don Quixote de la Mancha)》이다. 이 작품을 쓴 목적을 ‘기사도 이야기의 권위와 인기를 타도하기 위해서’라 했다. 16세기의 라만차에 살던 알론소 키하노는 책을 많이 읽은 탓에 현실과 허구를 구별할 수 없는 돈키호테가 되었다. 영화 <돈키호테를 죽인 사나이>는 토비 ( 아담 드라이버 )가 10년 전 자신이 만든 영화 <돈키호테를 죽인 사나이>에 돈키호테 역을 한 현지 주민인 하비에르 ( 조나단 프라이스 )라는 구두공이 자기 자신을 돈키호테라 여기며 펼쳐지는 이야기이다. 풍차를 거인으로 착각하고 포도주 넣은 가죽 부대를 공격하고 돈키호테를 데리러 온 가족들의 연극 등 책의 내용이 많이 반영되어 있다. 영화의 가상의 서사와 원작의 서사가 섞인 이야기가 되었다. 그동안의 테리 길리엄 감독 스타일과는 이 점에서 차이점이라 할 수 있다.


몬티 파이튼 ( 60년대 BBC의  현실의 부조리함을 노골적으로 소재 삼아 온갖 종류의 코미디 장르를 넘나드는, 말 그대로 하이퍼 코미디 쇼 ) 그룹에서의 활약을 한 테리 길리엄 감독의 역량 ( 당시는  애니메이터 ) 이 보인다. 소격 효과를 주기도 했고 종복과 전복 ( 한글로 번역된 것 ), 성인 ( Saint )과 미친 ( insane ) 등의  대사의 센스와 안젤리카의 아버지인 술집의 라울과의 대사에서 자막을 치우는 토비의 행동, 돈키호테는 자신의 책을 꺼내어 보이며 토비에게 크게 웃으면서 어떻게 농부가 글 (영어)을 알고 읽는다는 거냐 하며 무시하는데 사실 이들의 대화는 영어로 이루어진다. 곳곳에 테리 길리엄만의 특유의 재치와 유머 그리고 블랙코미디적인 성격이 담겨 있다.


제목에서 알 수 있듯 이 영화의 주인공은 돈키호테가 아닌 산초이다. 산초 판사는 돈키호테의 모험을 가능하게 한 인물이다. 천재 CF 감독의 위치에 오른 토비는 무력하고 열정적이지 않다. 10년 전 자기가 찍었던 주인공들과의 만남에서 토비는 의도치 않게 산초 판사가 되었고  도달할 수 없는 이상이 존재하는 현실을 바꾸고 싶어 하는 편력 기사 돈키호테와의 여정에서 삶에 대한 열정과 활력, 정의에 대한 열망에 맞닿게 된다. 공상에 빠지고 엉뚱한 행동을 일삼는 돈키호테지만 신념과 의지가 강하고 주체적이다. 편안한 생활, 위선, 야망에 관심이 없다. 종복 산초 판사는 소설에서는 지극히 평범하고 세속적인 인물로 돈키호테의 행동이 광기라는 사실을 잘 알면서도 오직 물질적 보수 때문에 그를 따른다. 그렇다면 산초가 된 토비는 돈키호테와의 기묘한 여정에서 난민의 문제를 접하게 되고 러시아인 광고주가 벌리는 성대한 마스커레이드 속 위선과 부당함을 접하고 어떠한 행동을 하는지 지켜볼 필요가 있다. 꿈과 사랑 앞에서 영원히 늙지 않는 돈키호테와의 여정 끝에 돈키호테가 된  토비를 볼 수 있다. 어느 것이 환상이고 어느 것이 실재인지, 또 어느 것이 허구이고 어느 것이 사실인지 구별하는 것이 중요하지 않았으리라 생각된다. 무례하고 적대적인 현실에 반대를 무릅쓸 용기, 고집, 무모함, 끈기를 가진 이가 필요했을지도 모른다. 산초와 같은 시각으로 모험과 판타지를 즐기기를 테리 길리엄 감독은 원한 듯하다.  카나리아 제도, 카스티야라만차, 가이피엔소, 모나스테리오 데 피에드라 등 대부분 스페인의 명소에서 촬영되어 아름다운 절경과 성주간 (Holy week) 축제, 마스커레이드, 로케 바뇨스의 스페인 전통의 분위기를 살린 음악까지 다양한 즐거움을 선사한다.

영화의 엔딩 크레디트에 장 로슈로프와 존 허트의 이름을 볼 수 있다. 이 영화는 1989년부터 구상되었다. 2000년 1대 돈키호테로 장 로슈로프가 캐스팅되어 촬영을 하다가 촬영 2일 차에 홍수를 맞았는데 그 뒤로 장 로슈로프의 건강이 악화되었다. 2002년에 나온 다큐멘터리 영화 로스트 인 라만차(Lost in La Mancha)가 이에 대한 이야기이다. 그 후 2대 돈키호테로 존 허트가 캐스팅되었다. 제작비의 문제 때문에 지연되는 사이 존 허트가 타계하는 바람에 제작이 또 무산된다. 이 영화는 3대 돈키호테인 조나단 프라이스를 맞이하고서야 스크린에 걸리게 된 것이다. 오랜 숙원을 푸는 듯한 사연을 간직한 영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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