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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Erin Park Aug 26. 2019

단정되지 않은 삶 , 14 세의 그해 "벌새"

14세 소녀 은희(박지후)는 생계 때문에 자신에게 관심을 쏟을 시간이 없는 부모의 밑에서 성장한다. 오빠의 폭력에 어떻게 해야 할지 고민하며 친구에게 상처 받고 다시 화해하며 그 나이 때의 보편성을 잃지 않는다. 그리고 보습학원 한자 선생님 영지(김새벽)에게 따뜻한 위안을 받는다. 1994년 시간적 배경으로 실제 사건과 연결시켜 은희가 그동안 맺어온 관계의 붕괴와  혼란함을 나타낸다.


부모님, 학교 선생님, 보습학원의 원장으로 대변되는 이들과 은희와의 세대 갈등은 갑자기 생긴 것이 아니다. 그동안 냉전 체제와 분단, 군사독재와 민주화, 사회적 부의 재분배 같은 갈등이 우선했기에 드러내고 세대 갈등에 눈을 돌릴 수 없었다. 한국 사회는 급변했고  민주화가 어느 정도 자리를 잡기 시작한 90년대 이후 표면적으로 갈등이 부상되었다. 은희의 부모는 바쁘고 오빠는 은희에게 폭력적이고  또한 은희 부모님의 기대가 어깨를 짓누르고 있다. 은희의 언니는 밖으로만  겉돈다. 은희 엄마의 모습은 평범한 듯 익숙하지만  무심하고 낯설다. 늘 바쁘고 생기 없는 엄마는 은희와 눈을 거의 마주치지 않는다. 밖에서 만난 은희가 아무리 애타게 불러도 뒤돌아보지 않는다. 영혼이 없는 껍질같이  냉담하다. 서로에게 무관심한 가족에게서 막내인 은희는 어느 보살핌도 받을 수 없다. 성인으로 가기 위한 예비기간인  청소년 시기의 불안과 외로움이 은희를 통해서 그려진다.



왼손잡이는 열성이고, 오른손잡이가 우성이라는 그릇된 인식을 어느 정도 갖고 있던 그 시대의 은희는 왼손잡이다. 영화의 시점인 1994년 이듬해 1995년  1월에 발표된  패닉의 “왼손잡이”란 노래는 대중에게 인식의 전환을 가져오며 영향을 미친다. 은희(박지후)도 영지(김새벽)도 영화를 만든 감독도 왼손잡이다. 하지만 특별히 스토리의 전개상 큰 의미를 담은 것 같지 않은 은희의 왼손 놀림은 눈에 밟힌다. 왼손잡이 왼쪽에 앉는 오른손잡이는 그리고 오른손잡이의 오른쪽에 앉은 왼손잡이는 어느 정도 불편을 감수해야 할 순간이 존재한다. 은희는 친구인 지숙과 왼손으로 낙서로 대화를 하고 아무렇지도 않게 왼손으로 그림을 그리고 밥을 먹는다. 학업에도 무언가에 특출 나게 잘하는 것이 없는 은희지만 다수의 친구보다 자기 자신을 온전히 좋아해 줄 대상이 있음에 활짝 웃는다. 1초에 90번의 날갯짓을 하는 ‘벌새'는 끊임없이 희망을 갈구하고 사랑받고 싶다는 은희의 몸짓 같다. 보습학원 한자 선생님  영지 (김새벽)는 은희에게 손이 가지는 힘과 지배의 의미보다 보호의 따뜻함을 전한다. 영지는 담담하게  운동권 노래인 <잘린 손가락>을 은희에게 불러준다. 은희는 그 뜻을 다 알 수 없지만 영지의 마음을 보고 담는다.



영화를 만드는 이들의 성장담을 담은 90년대 이야기는 인기 있는 소재이다. 81년생 김보라 감독은 "내 세계관 같은 것이 드러나는  <벌새>는 자전적인 이야기가 아니라 허구다. 다만 내 감정적인 기억과 출발점, 지향하는 지점이 나에게서 시작됐지만 여기에 엄청나게 수학적인 각색 과정과 여러 이야기의 직조 과정이 있었다. “라고 말한다. 자극적으로 풀어내지 않고 구체적이며 일상적으로 은희의 이야기를  쌓아 올린다. 브랜드의 철학을 컬러로 표현했던 베네통 가방, 미치코 런던, 캘빈 클라인, 콜라텍, 대치동의 재개발 현장, 삐삐 등은 그 시대를 대변하는 상징적 물건들로 사실감을 더한다.


몸속에 자란 혹처럼  은희를 둘러싼 것들은 울퉁불퉁하며 아프게 한다. 매끄럽지 않은 은희의 삶이기에 관조적인 거리를 두게 되며 은희의 고통 속에서 내 이야기를 찾게 된다. 삶의 크고 작은 참사 속에서 우리 모두는 상처 입은 은희이고 그 은희는 성장하며 오늘의 나이기도 하다.



8월 29일 개봉 (8월 21일 시사로 관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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