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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Erin Park Oct 08. 2019

거칠고 굵은 빈티지 필름 같은 "미드 90"



어린 주인공이 자아를 의식하고 차츰 외부 세계와 접촉 또는 대결해나가는 과정에서 마주하는 정신적 번민과 해소에 초점을 두는 것이 대개 성장을 다루는 형식이다. 영화 <미드 90>은 13세 소년이 스케이트 보드를 타게 되면서 겪게 된 이야기로 평범하지 않은 성장영화이다. 90년대 중반 그 시기에 맞는 사실주의를 살려 가족, 사랑, 형제애, 우정을 찾아가는 본질을 이야기하는 것도 잊지 않는다. 어린 나이에 부모가 된 엄마 (캐서린 워터스톤), 동생에게 폭력을 가하는 형 이안 (루카스 헤지스), 아직은 몸도 마음도 미성숙하고 보살핌과 사랑을 필요로 하는 스티비(서니 설직)와 레이(나 켈 스미스)를 비롯한 스케이트 보드 크루들의 이야기이다. 스티비(서니 설직)의 갑작스러운 절도, 흡연, 술, 마약, 이성 등 위태로운 행동들은 엄마(캐서린 워터스톤 )와 형 이안(루카스 헤지스)을 당황하게 한다.


1995년에 제작된 카메라, 슈퍼 16mm 필름, 4:3 화면 비율, 자연광을 최대한 이용하여 90년대에서 방금 끄집어낸 영화처럼 보일 수 있는 장비와 기술의 조합을 찾기 위해 온갖 실험을 거듭하여 이루어낸 레트로 무드의 촬영과 편집은 그 시대를 완벽하게 재현해냈다. 지글지글한 필름의 그레인과 VHS의 비율과 같은 4:3 화면, 4학년(라이더 맥러플린)이 찍은 광각의 영상은 영화를 특별하게 한다. 스케이트 보더들에게 역사적인 랜드 마크인 컬버 시티의 코트 하우스 (Court House in Culver City)에서 촬영하고 촬영 중에는 당시 모습으로 돌려놓기 위해 건물에 그래피티 작업을 더하기도 했다. 그 시대를 세트, 소품, 패션과 스타일, 음악을 통해 영화로 구현한 것은 것은 스케이트 보더였던 감독 조나 힐의 경험과 성장사, 신념이 바탕이 되었다. <버드 박스(2018)> 와  <소셜 네트워크(2010)> 로 제83회 아카데미 음악상과 제68회 골든글로브 음악상을 수상한 트렌트 레즈너와 애티커스 로스 음악감독이 참여한 <미드 90>은 음악 영화라고도 할 수 있을 정도로 음악의 무게가 크다. 너바나, 모리세이, 마마스 앤 파파스의 명곡과 1990년대의 힙합 뮤직들이 영화를 채운다. 영화의 어떤 장면들은 노래를 위해 만들어졌을 만큼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 후반으로 갈수록 영화의 나레이터 역할을 하는 곡도 있다. GZA의 ‘Liquid Swords’는 조나 힐에게 ‘어린 시절 가장 중요했던, 자신의 DNA에 들어있는, 죽을 때까지 뇌의 한구석을 차지하고 있을 노래’로 표현할 만큼 각별한 곡이다.



90년대 중반을 배경으로 하고 있지만 90년대의 노스탤지어에 기대 있거나 스케이트 보드로 승부를 건 영화는 아니다. 그렇게 90년대 흔한 영화로 보이는 걸 감독인 조나 힐은 원하지 않았다. 영화의 미학과 정신적 측면에 있어 진정성에 중점을 두고 고민하였다. 당시 스케이트 문화, 힙합 문화는 뭔가 열심히 하는 게 쿨하지 않은 일이었다. 때론 부적합하고 반 윤리적인 정서에 유대감을 느끼는 아이들을 선과 악의 논리로 이분하여 보여주지 않는다. 아이들 입장에선 벗어날 수 없는 환경적 요인에 맞서 스케이트 보드는 그들에게 분출구가 되고 자유가 된다. 스케이트를 타는 아이들은 각자 안타까운 사연들이 있지만 그 이유로 모든 행동이 정당화되는 것은 아니다. 불완전해서 부서지기 쉬운 시기에 스케이트 보드는 그들만의 세계를 구축하려는 몸짓이다. 친구들 무리를 찾는 과정, 그 안에서 살아남고 자신의 위치를 다지는 과정을 지켜보면 갈등도 있고 심하게 세상과 부딪힌다. 아이들이 성장하면서 가장 큰 변화는 부모 의존 성향에서 친구 의존 성향으로 바뀌게 되는 것이다. 스티비의 경우 , 스티비의 엄마는 의존적 대상을 갈구하고 있고 형 이안은 침묵과 폭력을 통해서만 자신을 표현한다. 스티비가 스케이트 보드 크루들에게 의존하는 것은 당연했다. 경험이 부족한 청소년기의 아이들은 무조건 어른들의 말을 따르거나 믿지 않는다. 강렬한 호기심은 어른들의 충고나 간섭이 싫고 직접 탐색하고 실천해 보려고 한다. 자기 확신의 심리적 욕구는 강하게 되고 자신의 자존심을 지키기 위해서 타인의 요구에 반대되는 태도와 언행을 보이는 반항 심리를 작동하게 된다. 엄마의 제지에 스티비는 심한 반항을 하고 레이는 진지하고 통찰력이 깊은 대화로 스티비를 이끈다. 자발적으로 다양한 감정을 체험하는 스티비를 볼 수 있다. 맨몸으로  넘어지면서 다치고 다시 일어나야 하는 스케이트 보드의 정서에 매력을 느끼게 된다. 더 중요한 건 기술보다 보드를 통해서 세상을 바라보는 시각과 취향, 세계관을 갖게 되고 자신을 아끼는 친구란 또 다른 가족도 얻게 된다. 스티비의 90년대 중반의 여름은 이런 감정들과 욕망들로 뜨거웠다. 그동안 낯익은 것들은 당연하고, 올바른 것으로 받아들여 왔다. 이 모든 것들을 새롭게 받아들이기엔 낯설기도 하다. 하지만 그 감정의 귀퉁이엔 지난 나의 이야기 같은 동질감이 느껴진다.




감독 조나 힐은 연기 경험이 전혀 없는 과감한 캐스팅으로 살아 있는 캐릭터를 만들어냈다. 유명 스케이드 보더인 나켈 스미스와 올란 프레나트의 연기는 농익지 않았지만 스케이트 보더로 발산하는 에너지는 빛이 났다. 스티비 역의 서니 설직은 <돈 워리(2018) >에서 스케이트 보드 소년으로 잠시 화면에 비췄다. 3살부터 스케이트를 탄 서니 설직은 LA에 위치한 스케이트보드 파크에서 보드를 타다가 조나 힐에게 캐스팅되었다. 서니 설직의 인스타그램(  https://www.instagram.com/sunnysuljic )을 보면 영화보다 훨씬 능숙하고 멋진 스케이트 보더임을 알 수 있다.  <미드 90>에선  때론 깜찍하고 과감하게 부딪히는 모습을 보여줌으로 매력을 발산했다.

배우로 더 잘 알려진 조나 힐은 자전적인 영화 <미드 90>을  세상에 내놓음으로 감독으로 역량과 감각을 보여줬다. 숏과 음악의 구성, 편집이 얼마나 영화를 빛나게 하는지 잘 아는 듯했다. 그러기에 차기작이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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