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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Erin Park Nov 26. 2019

시대를 세밀하게 그린 영화 "모리스"

퀴어는 본래 ‘기괴한’이란 뜻으로 성소수자를 조롱하는 용어였다. 성소수자들이 이 단어를 전유 (專有reappropriation)하여 기괴함이 나쁜 것이 아니라 특별하고 독창적인 것이며 다양성을 드러내는 특징이라 선언해버렸다. 영화 <모리스>는 EM 포스터 (1879-1970)가 35살 때 쓴 자전적 이야기로 사후에 발간된 소설이 원작인 퀴어영화이다. 1987년 44회 베니스 영화제에서 은사자상, 주연 배우인 휴 그랜트와 제임스 윌비가 공동으로 남우주연상과 음악상을 수상하였다. 2018년 디지털 리마스터링을 거쳐 2019년 우리나라에 개봉되었다. 시대의 억압 속에서 젊은 성소수자들의 사랑 이야기인 <모리스>는 퀴어란 단어가 전유되기까지 성소수자들의 모습이 잘 반영된 작품이기도 하다. 영국은 1885년 동성애를 법으로 금지하였고 1895년 이 법안에 의해서 작가 오스카 와일드는 외설 행위로 체포되었다. 1910년대 영국을 배경으로 케임브리지 대학의 수업 방식, 기독교 집안의 모리스, 지주 집안의 클라이브를 통해서 사회상과 자각하고 관계하는 과정을 보여 준다.  


감독은 미국인이고 촬영감독은 프랑스인인데 너무나 영국적이다. 수학하던 케임브리지 대학의 고풍스러운 분위기와 강, 들판에서 이들은 한 폭의 인상파 그림처럼 펼쳐진다. 영국의 에드워드 시대 패션을 정통적으로 반영하였다. 사회적으로는 계층 간의 구분은 엄격하였고 상류 사회에서 레저와 스포츠가 유행하는 것을 나타냈고 의상으로도 계층의 구분을 할 수 있게 하였다. 동성애자였던 차이코프스크 교향곡 6번 비창과 바흐의 골드베르크 변주곡이 클래식함을 더했다.


클라이브(휴 그랜트)는 모리스(제임스 윌비)에게  먼저 사랑을 고백하고 모리스와 연인이 되지만 육체적 사랑을 허락하지 않고 정신적 사랑만을 원한다. 반면에 모리스는 친밀했던 우정이 사랑으로 변화하면서 학교를 자퇴하고 주식 거래인이 되는 등 큰 변화를 겪게 된다. 클라이브와 모리스가 서로의 사랑을 확인하기까지 서로를 훔쳐보는 순간들, 엄격한 학교의 분위기는 극의 긴장감을 준다. 동료 리슬리 경의 파멸을 보면서 동성애에 대한 사회의 차가운 시선에 부딪힌다. 명예, 가족, 직업 등 모든 것을 잃을 수 있음을 깨달은 클라이브는 모리스와 결별을 하고 결국 여성과 결혼을 한다. 가부장주의적 가족, 양성 질서, 혼인 규범을 유지하기 위한 동성애의 혐오가 영국 전통 사회에 지배적이었다. 클라이브는 동성애를 외면상 우정으로 가장한다. 나중에는 자신의 동성애를 부정하고 이성애로 가장하며 정상, 주류로 보이게끔 하는 전략을 취한다. 클라이브는 사회적 낙인과 차별에 자신을 노출시키는 일의 두려움으로 모리스와의 사랑을 버린다.


모리스는 클라이브의 사랑을 확인한 후 기숙사의 창을 넘는다. 그에게 창을 넘는 것은 금기를 넘어선 것이며 클라이브의 정신적 사랑보다 더 적극적이다. 모리스는 클라이브의 열정이 식은 후 공황에 빠지며 억압되고 내면 깊이 반발한다. 클라이브와 모리스의 관계는 에드워드 시대의 콧수염( Edwardian mustache )을 누가 했는가에 따라 주도권을 보인다. 에드워드 시대엔 턱수염 대신 콧수염을 단정하게 길렀다. 영국의 사회의 구조와 모양을 곳곳에서 보여준다.



모리스는 클라이브 집의 고용인인 알렉 (루퍼트 그레이브스)과의 육체적 관계를 맺는다. 관계 후 모리스는 알렉이 자신의 주식 사무실로 찾아오자 그를 오해하기도 한다. 하지만 그를 깨우친 것은 동성애를 거부하기 위한 의사의 진료도 최면술사도 아닌 어릴 적 바닷가에서 성교육을 시켜주던 선생님과의 만남이었다. 알렉과의 사랑은 계층 차이를 극복하고 사회의 편견에 저항하는 욕망, 자유, 소통이다. 그 둘의 관계가 대담한 이유는 성적인 것이 아니라 금기가 주는 긴장감이다. 알렉이 시골의 하류 출신이라는 것  즉 계급이 그들이 동성이라는 것에 금기를 하나 더 얹는다.


클라이브가 모리스를 향한 일방적인 시선, 사랑하기까지 서로를 훔쳐보는 시선, 둘이 사랑하면서 마주하는 시선, 다 아는 듯한 집사 심콕스의 시선, 리슬리 경을 외면하던 시선, 알렉을 사랑하게 된 모리스를 바라보는 클라이브의 시선, 그런 남편 클라이브를 바라보는 아내 앤의 시선, 동성애를 바라보는 영국 사회의 일상적인 냉엄한 시선... 수많은 시선들이 그들을 둘러싸고 있다. 상류층 엘리트이기에 더 억압적일 수 밖에 없는 상황에서 모리스는 알렉과 진정한 사랑을 찾는다.


동성애에 대한 억압의 역사는 19세기 말부터 시작되어 동성애를 일종의 정신질환으로 취급했다. 이성애를 유일하게 지배적, 합법적, 바람직한 성관계, 성 정체성으로 규정 내렸기에 동성애자는 단지 타락한 사람일 뿐이었다. 1967년이 되어서야 영국에서 동성애 금지법이 폐지되었다.




그들은 연고도 돈도 없이 계급의 울타리 밖에서 살아야 했다. 그들은 죽을 때까지 노동하고 서로에게 충실해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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