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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Erin Park Aug 30. 2020

익숙해서 사랑스러운 영화 <남매의 여름밤>

 비어 버린 집을 돌아보며 아쉬움이 가득한 얼굴을  옥주(최정운) 여름 방학을 보낼 할아버지(김상동) 집으로 향한다. 할아버지 집은 낡은 이층 양옥집이다. 2층으로 올라가는 곳엔 중문이 있고 남향으로 볕이  드는 2층엔 빨래도 널고 남매들만의 여자들만의 이야기도 나눌  있는  트인 공간이 있다. 오래된 물건들과 담금주들이 가득하고 정리가  것인지 안된 것인지 구분이  되는 물건들이 가득하다. 달마 그림이 벽에 걸려있고 입춘대길 문구가 아직도 붙어 있다. 오래된 공업용 미싱이 있고 흑백의 결혼사진 속에는 아버지 할머니의 젊은 모습이 있다. 옥주는 할아버지 집에서  핑크색 모기장으로 자신만의 공간을 만들었다. 옥주가 화가  퉁퉁거리고 올라가면 계단이  소리를 담아낸다. 할아버지  마당엔 고추, 방울토마토, 포도가 열린다. 무성하게 잘도 자란 것들이 식재료가 되고 후식이 되고 그걸 따면서 동주(박승준) 할아버지 곁을 지키고 옥주는 동주가 건네  방울토마토에 웃음을 짓는다. 옥주의 시선에 담긴 할아버지의 집은 어른들의 사정들이 흐른다.


할아버지 집은 옥주 남매, 옥주 아버지(양흥주) 남매의 모든 사소한 사건이 일어나는 장소로 현실감을 더해 주었다. 윤단비 감독은 이 집을 촬영 장소로 결정하고서 집에 맞게 이야기를 보충했다 한다. 이렇듯 할아버지 집은 스토리가 시작되고 마무리되는 장소의 개념이 되기도 하지만 공간을 캐릭터화 하여서 영화의 인물처럼 숨을 쉬며 연기를 하는 듯하다. 단순한 배경으로의 공간이 아닌 명확한 성격을 드러내며 이야기의 분위기를 형성하는 역할을 했다.



영화엔 신중현이 만든 <미련>이란 곡이 임아영, 김추자, 장현의 세 가지 버전으로 나온다. 할아버지가 듣던 장현의 <미련>은 감정을 격하지 않게 적당히 생략해 부름으로 여백에 몰입하게 만드는 절제된 표현력의 돋보이는 노래이다. <남매의 여름밤>의 정서와 상당히 비슷하다. 할아버지 생일 파티가 끝나 모두 잠이 든 시간, 옥주는 거실에서 혼자 노래를 듣고 계신 할아버지를 말없이 바라보기만 한다. 쓸쓸한 노래 가사와는 달리 할아버지와 손녀는 따뜻한 정서적 교류 그 순간을 담았다.



옥주의 여름 이야기는 파란 하늘, 여행, 바다 같은 기대와 설렘을 담지 않았다. 이혼한 엄마에 대한 그리움과 미움의 교차, 노쇠한 할아버지의 건강, 자신의 외모와 남자 친구에 대한 고민, 불안정한 아버지 경제상황으로 옥주는 조숙한 10대의 여름을 보낸다. 싸운 뒤 옥주가 건넨 사과에 태연하게 ‘우리가 싸운 적이 있었나? 잘 기억이 안 나네’ 대답하는 동주, 옥주가 허락하지 않아서 자전거도 못 타고 할아버지 오디오도 못 틀고 모기장 안에도 못 들어가던 동주가 옥주의 모기장 아래서 잠이 들던 그 여름, 남매는 한 뼘쯤 성장해 있다. 할아버지 집이 보이는 동네 가게 앞 평상에서 함께 하는 아빠와 고모(박현영), 이 성인 남매의 이야기는 또 하나의 남매의 일상으로 그려진다. 옥주 남매와 옥주 아버지 남매의 이야기는 감정에 초점이 맞춰져 있고 제스처나 대사 사이의 간격을 보면 인물에 집중되어 있다. 자신의 상처를 보듬는 동시에 또 다른 작별을 마주하게 되는 각별한 순간으로 채워진 여름의 정취는 지극히 일상적이다. 평범하고 보편적인 기억들이 가장 빛나는 순간으로 그려진다.


여름날 해 질 녘 하늘의 색, 여름 음식과 과일, 함께 듣던 음악, 같이 있던 공간 등 수많은 사소함들이 모여서 하나의 이야기를 이룬 <남매의 여름밤>은 익숙하다. 여름이란 계절감과 공간감은 교집합이고 비록 옥주의 일상과 처지는 비슷한 접점이 없는 여집합일지라도 섬세한 터치로 그려낸 이야기는 공감과 위로를 준다. 새로운 것은 환영받지만, 익숙한 것은 사랑받는다. 익숙해서 더 사랑스러운 <남매의 여름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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