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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Erin Park Nov 17. 2020

살아 남기 위해, 영화<내가 죽던 날>



워너브라더스 코리아 제공


미스터리 스릴러의 기조를 가졌으나 드라마 형식이 더 강한 듯하다. 태풍이 몰아치는 날, 섬에서 증인 보호 프로그램 중인 소녀 세진 (노정의)이  자살을 하는 사건을 쫓는 형사 현수 (김혜수)의 이야기다. 자살이란 사건의 이면에 감춰진 진실을 파헤치는 데에 복잡한 편집도 극의 속도감도 없다. 서스펜스가 없어서 줄거리의 전개 과정에서 꾸준히 지속하는 긴장의 분위기는 없으나 감춰진 진실을 파헤치는 집요함이나 내면의 아픔을 가진 인물들의 심리묘사에 공을 들인다. 장르란 틀 안에서 일어나는 변칙은 또 다른 장르물이 된다.  
 




워너브라더스 코리아 제공


배우 김혜수는 몸도 마음도 건강한 배우라는 가장 익숙한 수식을 가졌다. 극단적인 장르물에서도 그녀는 건강함이란 매력을 잃지 않았다. 하지만 이 영화에선 김혜수는 남편의 오랜 외도로 이혼 소송 과정에서 정신적으로 피폐하며 또한 사고로 인해서 마비를 겪고서 침체되고 불안하며 내면이 무너졌다. 여태껏 수많은 드라마와 영화에서 보여준 캐릭터와는 다른 독보적인 모습을 만들어냈다. 직업적으로 강인함을 요구하지만 끝없이 무너지는 자신을 잡으며 살아남기 위해 몸부림친다. 흔적 없이 사라진 소녀에게서 자신의 모습을 발견하고 실종, 자살 추정이란 수사 종결을 머뭇거린다. 사고로 목소리를 잃고 아픈 조카이자 자식을 키우면서 묵묵히 스스로 고립되어 살고 있는 순천댁 (이정은)은 상처 그 자체이다. 그녀는 연기를 하는 것이 아니라 순천댁 그 자체였으며 박지완 감독에게는 오랜 기다림이었다. 세진 역의 신예 노정의, 김선영, 이상엽, 문정희, 섬의 할머니들 역을 한 배우들까지 다들 구멍 없는 연기를 펼쳤다. 도플갱어 같은 좀 더 통통한 순천댁의 모습을 한 섬의 주민 역의 배우 모습도 재밌었고 드라마 구미호뎐에서 어둑시니로 나온 심소영 배우의 출연도 반가웠다. 
 



아무 관계없는 사람들이 서로 영향을 주는 이야기를 만들고 싶었다는 박지완 감독의 의도는 말을 못 하는 순천댁 (이정은)과 아무도 기댈 곳 없는 소녀 세진(노정의) 그리고 인생이 송두리째 흔들리는 현수( 김혜수), 이들이 어떻게 연대하는가에 대한 그림을 그린다. 조용규 촬영감독은 국내 다양한 작품을 찍은 풍부한 경력을 가졌다. 섬의 유려한 풍경과 배우들의 감정표현, 빛의 쓰임을 잘 잡았다. 영화는 수많은 이야기를 담는 그릇이다. <내가 죽던 날>은 누구나에게 존재하는 상처에 대한 이야기와 살기 위한 어떤 선택을 했는가에 대해 결말을 담아낸다. 인간이 지닌 상처의 탐구와 그 상처를 벗어나서 삶을 지속해가게 하는 연대를 그린다. 후반부의 반전을 위해 가림막은 어렵게 그리지 않았다. 그만큼 형식보다는 주제를 더 강조한 듯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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