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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Erin Park Dec 14. 2020

사랑한 사람이 더 성장하는, 영화 <조제>

김종관 감독의 책 <골목 바이 골목>에서의 글로 보던 공간을 구현한 것 같았다. 차분하고 사연이 있는 공기가 부유하는 장소가 눈앞에 펼쳐있었다. <춘몽>과 <경주>의 조영직 촬영감독이 영화를 맡았다. 느릿하고 서정적인 영화를 그리기엔 적격인 선택이다. 김종관 감독 전작의 인물을 잡는 방식과 유사한 느낌을 받았다. 인물의 상반신을 주로 잡는 장면이 많아서인지 감독의 색이 더 잘 나타난 듯했다. 김종관 감독의 창작물들은 일관적이다. 조제(한지민)와 영석(남주혁)의 첫 만남의 부감 샷 장면은 인상적이었다. 고레에다 히로카즈의 <세 번째 살인>에서 복잡한 전깃줄의 부감 샷과는 다르지만 그때처럼 뭔가 이 둘의 사랑은 평탄치 않을 것이라는 느낌이 오는 순간이다. 



워너브라더스 코리아 제공


다나베 세이코의 책, 이누도 잇신 영화, 김종관 감독의 <조제>는 하나의 이야기가 어떻게 변주하는 가에 대한 그 차이를 제대로 보여준다. 30여 페이지의 짧은 소설이 스토리가 더해져서 영화가 되더니 이젠 한국의 두 남녀의 이야기가 되었다. 사랑이 싹트는 순간이 되는 밥이란 매개는 고등어구이와 계란말이에서 스팸과 분홍 소시지가 되어 있다. 책도 프랑수아즈 사강의 소설 ‘한 달 후, 일 년 후'에서 '브람스를 좋아하세요’로 바뀐다. 하지만 책이 내포하는 이들의 앞날은 바뀌지 않는다. 해피엔딩과 새드엔딩이라 단정 짓는 것 자체가 <조제>에겐 무의미한 것 같다. 한국의 청년 취업난과 주거 문제를 담았다. 할머니의 존재감과 의미도 영화 <조제>가 더 각별하다. 가장 큰 변화는 캐릭터의 변화이다. 조제란 인물이 굉장히 어두워졌다. 책에서 츠네오의 표현에 의하면 조제는 고압적이다란 표현을 하는데  앞뒤 서술로 보면 그 단어에는 그녀의 통통거리는 매력이 담겨있었다. 실제로 띠동갑이라는 두 배우( 한지민, 남주혁)의 외형상 그림은 좋은데 극의 캐릭터의 구현은 이누도 잇신의 영화가 주는 각인이 커서 어느 순간 자꾸 비교하게 된다. “네가 떠나면 몸도 성치 않은 여성을 범했다고 주변에 말할 것”이라고 하는 것은 ‘조제답지 않다’고 느낄 만하다. 하지만 이 대사는 책에서도 비슷하게 나온다. 당돌하면서도 사랑스러운 조제가 이 말을 할 때와는 상당한 어감의 차이가 느껴진다. 같은 상황인 표현임에도 캐릭터 자체가 다르니 당황스러울 수밖에 없다. 신체적 장애를 가졌지만 영석과의 사랑을 이루면서 세상으로 나온 조제의 변화에 대해 서사가 부족하다. 조제는 끝까지 활짝 웃질 않는다. 


연출을 맡은 김종관 감독은 ‘여기는 버려진 것들의 쉼터 같은 곳이야’라는 대사를 통해 조제를 버려진 것을 모으고 그 안에서 아름다움을 발견하는 사람으로 연출했다는 의도를 밝혔다. 하지만 이 대사 하나로 조제란 캐릭터를 관객에게 이해시키는 것은 어려움이 따른다. 사랑과 이별을 장애인 여성과 비장애인 남성이 아닌 두 인격체의 만남으로 보편적인 서사와 성장으로 그렸던 이누도 잇신 영화와는 많이 달랐다. 그들의 이별 과정이 많이 축약되고 메타포였던 호랑이와 물고기 역시 의미가 퇴색되어 버려졌기 때문이다. 


"사랑한 사람과 사랑받은 사람 중에 누가 더 성장할 것 같아요?” 하는 질문의 대답은 사랑한 사람이다. 5년 후의 그들의 모습을 보면 아마도 더 많이 사랑한 사람은 조제였을 것 같다. 영화 <조제>는 그들이 가장 아름답고 사랑했던 시간을 그렸다. 하지만 온전한 동의와 공감을 구하는 것은 쉽지 않았다. 퀄리티는 얻었지만 밸런스를 잃어버린 듯했다. 영화 음악도 밸런스 부분을 표류하게 하는데 한몫을 하지 않았나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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