金금치와 추석

by Erin Park

명절! 며느리들이 시집, 시댁 때문에 스트레스받는 날의 또 다른 이름.


우스개 소리로 시금치의 '시 '자도 싫다고 하는 말을 들었다.


특별히 제사를 지내지 않지만, 추석이 다가오니 결혼해 분가한 오빠 가족이 오니 간단한 상차림을 위해 장을 봐야 한다.


엄마는 결혼해서 같은 주소의 주민등록이 아닌 오빠는 명절에나 오는 손님이라 하시며 상 차리는 준비를 하신다.


아침 뉴스에 金금치 金배추... 치솟는 추석 물가에 흔히 볼 수 있는 풍경.


시금치 값을 보고 사뭇 놀라지 않을 수 없다.



오프라인 마트의 시금치 다발은 온라인 마트 사진보다 빈약해서 실망하고 발길을 돌렸고, 재래시장 상자 속에 있는 시금치도 내 발길을 잡지 못했다.


마지 노선으로 택한 어느 버스 정류장 노점의 할머니 시금치는 쇼핑 마스터의 팁 <잎과 줄기가 일정하고 가지런하며 진한 색의 잎으로 모여져 풍성한 모습을 띤다> 과는 너무나 멀다.


할머니의 부정확한 발음과 가녀린 목소리에 가격을 잘못 들었나 하는 생각이 번뜩 들었다.


그래서 천 원짜리 몇 개 대신 만 원짜리를 꺼내 들었다.


할머니는 계량을 하지 않은 시금치를 검은 비닐에 담아서 건넨다.


"한 근이면 400g이죠?" 하며 왜 저울에 재서 안 주시냐고 물었다.


할머니께서 내 손이 실제로 한 근보다 더 푸짐하다며 무게를 재 보시는데 정말로 500g 정도의 눈금을 가리킨다.


많이 파시라며 정중히 인사를 하고 돌아서는데 나도 모르게 뒤통수가 화끈하다.


인정이란 걸 잊어버리게 되는 주머니 사정이며, 체온이 담긴 손보다 저울이 가까웠던 내가 부끄러웠던 것 같다.



많이 싸게 사 왔다며 엄마와 한바탕 이야기보따리를 푼 후, 뿌리가 정리된 시금치는 정말 씻어 놓고 보니 잎의 크기도 줄기의 굵기도 일정치 않은 자태를 하고 있다.


푸릇한 숨이 죽은 시금치는 온갖 야채와 고기, 계란 지단과 함께 당면 속에서 빼꼼 모습을 내미는 잡채의 일원이 되어서 한가위 우리 가족 식사상에 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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