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에 대한 남다른 열정과 완벽을 추구하는 성향으로 인해 젊은 나이에 이미 임원의 자리에 오른 분을 만나 뵌 적이 있다.
어떤 일이 주어지던 수많은 시나리오를 만들어 머릿속으로 시뮬레이션 해보고 만족 할 때까지 일의 완성도를 높이는 스타일이다보니 업무적으로 탁월한 결과물을 내었을 뿐만 아니라 치밀하고 완벽하다는 대외적인 이미지도 얻게 되었다. 문제는 임원이 된 이후에는 관리의 범위가 넓어지고 의사결정할 사안의 수가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게 되었는데, 이전에 하던 업무수행 방식을 고수하다보니 집에 와서도 일에 대한 생각을 멈출 수가 없었고, 결국에는 장기적인 불면으로 인해 몸과 마음이 피페해지게 된 것이다. 어느 날 30분 정도면 처리할 일을 3일이 지나도 붙잡고 있는 자신을 보며 번아웃이 왔음을 인정하게 되었다고 한다.
위의 상황은 우리가 가장 일반적으로 인식하는 번아웃의 상황으로 막중한 업무를 동시에 여러개 수행하며 전력투구를 하다가 어느 순간 심신이 완전히 소진되어 무기력해져버리는 상태다. 하지만 번아웃은 단순히 바쁘거나 지치는 것 이상의 뉘앙스로,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더 복잡하고 다양한 원인에 의해 발생된다. 최근의 연구에 따르면 대상자의 업무 환경, 일에 대한 몰입, 자주 사용하는 스트레스 대응 전략에 따라 1)과부하에 의한 번아웃, 2)단조로움에 의한 번아웃, 3)방치에 의한 번아웃으로 세분할 수 있다고 한다.
1. 과부하에 의한 번아웃
가장 일반적이고 익숙한 형태의 번아웃으로 일에 최우선적인 가치를 두는 사람들이 자신의 건강이나 개인적일 삶까지 희생하면서 커리어적 성공이나 야망을 향해 열정을 쏟음으로써 나타난다. 이러한 사람들은 업무 몰입도가 굉장히 높아 불가능한 속도로 일을 추진하며 신체적으로 정식적으로 소진이 일어나는 지점까지 본인을 몰아붙인다.
문제는 이런 스타일은 자신의 부정적 감정을 다른 사람들에게 화나 짜증의 형태로 분출하며 스트레스를 해소하려는 경향이 있는데, 같이 일을 하거나 생활을 하는 사람들이 매우 괴로울 수 있다. 감정적으로 고조되어 있다 보니 이성적인 판단이 흐려지기 쉽고, 부담을 덜어내고자 하는 성급한 마음에 오히려 실수가 생겨 일이나 책임이 많아져 스트레스가 가중되는 경우도 있다.
이러한 유형의 번아웃에서 탈출하기 위한 두가지 방법을 제안한다.
첫째, 감정관리 스킬을 개발하는 것이다. 현재의 감정을 정확히 인식하고, 그 감정을 건강하게 처리하는 방법을 배우거나, 스스로에게 하는 부정적인 self talk을 긍정적인 문장으로 바꾸는 노력 등이 포함된다. 예를 들면, "항상 최고가 되어야 해" 대신에 "나를 아끼고 내 삶을 즐기는 것이 오히려 더 성공에 도움이 될 거야"라고 말하는 것이다. 휴식은 성공에 대한 보상이 아니라 성과를 내기 위한 전제조건임을 기억할 필요가 있다.
둘째, 일과 자존감을 분리하는 것이다. 일에서 일정 수준의 거리를 두는 법을 배우면 지나치게 업무에 매몰되거나 번아웃 되는 것을 막을 수 있다. 일 외의 영역에도 시간과 에너지를 투입함으로서 자신의 정체성을 다각화 할 필요가 있다. 회사에서 리더일 뿐만 아니라 배우자, 부모, 친구, 동료로서 역할에도 시간을 늘리는 것이다.
2. 단조로움에 의한 번아웃
일이 너무 단조롭고 도전적이지 않아도 반아웃을 경험할 수 있다. 과부하에 의한 번아웃과 상반되는 개념으로 이해할 수 있다. 일이 너무 재미가 없고, 미래의 성장에 전혀 도움이 되지도 않고, 상사나 동료와 의미있는 관계를 이어나갈 수도 없다는 생각이 들면 의욕이 저하될 뿐만 아니라 어느 순간 좌절감을 느낄 수 있다. 이런 상태가 장기화 되면 열정이 식고, 냉소적이 되며, 무기력해 진다. 많은 리더들이 의욕이 없어보이는 구성원을 보면 사람에게 문제가 있는 것으로 판단하는 경향이 있는데, 후천적으로 저성과자가 된 케이스로 도전 과제를 주지 않은 리더에게도 책임이 있다.
단조로운 일로 의욕이 저하되면 만사가 귀찮게 느껴질 수 있다. 도전의 부재로 인해 스트레스를 받으면 상황을 회피하거나 자신의 욕구를 억제함으로써 자신을 지키고자 하는데 일에 더 이상 깊이 관여하지 않거나, 일 외의 다른 흥미를 끄는 것들에 주의를 분산시키는 모습이 나타날 수 있다.
더 이상 꿈이 없다거나, 조용히 주어진 과제만 하다가 은퇴하고 싶다는 구성원이 있다면 비난 보다는 번아웃이 아닌지 우선 살펴볼 필요가 있다.
번아웃의 신호는
지금보다 더 어렵고 도전적인 일을 하고 싶다는 갈증을 느낌
업무가 성장 기회를 제공하지 않는다고 느낌
현재 역할이 역량과 재능을 개발하는데 오히려 방해가 된다고 느껴짐
이럴 때는 기대치를 내려놓고 흥미나 재미를 느낄 수 있는 것이라면 작은 것이라도 찾아 시도해보는 것이다. 예를 들면 매일 20분간 전화영어를 한다거나, 30일 동안 새로운 기술을 배우는 것을 목표로 할 수 있다. 현재 하고 있는 일과 직접적인 관련이 없더라도 스필오버 효과에 의해 삶에 생기를 불어넣고 일에 대한 열정을 되찾는데 긍정적 영향을 줄 수 있다. 새로운 기술을 배우다보면 새로운 커리어 도전하고 싶은 마음이 생길 수도 있다.
물론 HR부서나 직속상사와 이야기를 해서 원하는 직무로 옮기는 방법도 있다. 이때 중요한 것은 욕심내지 않고 아주 조금이라도 한발씩 내딛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것이다. 작은 변화를 점진적으로 해나가다 보면 나중에 큰 결과가 기다리고 있을 수 있다.
리더 입장에서는 의욕이 없어보이는 직원이 답답하게 느껴질 수 있다. 구성원이 아무런 꿈도 의욕도 없어보인다면 사람에게 문제가 있을 것이라 가정하기 보기보다는 일이 너무 쉽거나 커리어에 도움이 안되는 것으로 인식되는 것은 아닌지 살펴볼 필요가 있다.
3. 방임에 의한 번아웃
세번째 유형은 도전의 상황에서 무력감에 빠지는 상태를 의미한다. 직장에서 과업을 부여할 때 충분한 구조, 방향성, 가이드 등이 주어지지 않은 채로 알아서 해결할 것을 반복적으로 요구받다보면 기대에 부응하지 못할 것 같은 걱정과 심리적 압박감을 느끼게 된다. 시간이 지날수록 본인이 무능하게 느껴지고, 불확실한 느낌이 들며 좌절감에 빠지게 된다. 스스로 상황을 통제할 수 없다는 생각이 들면 학습된 무력감에 빠지게 되는데, 본인의 환경을 긍정적으로 변화시킬 수 있는 방법이 있어도 수동적이 되거나 해결하려는 시도를 하지 않게 된다.
방임에 의한 번아웃의 증상은 다음과 같다.
계획대로 상황이 진행되지 않으면 노력을 멈춘다
업무 중 장애를 만나거나 성과가 나지 않으면 퇴행한다
아침에 일어나 회사에 가서 일할 생각을 하면 의욕이 없게 느껴진다
방임에 의한 번아웃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는 역할 담당자라는 인식을 되찾을 필요가 있다. 우선 "해야하지 않을" 일의 목록을 정하고 치우는 작업을 한다. 명백히 "No"라고 말해야 하는 일을 찾아 명확하게 경계를 설정한다. 목록에서 가장 분노를 야기하는 상황부터 시작한다. 분노의 감정은 상황이 위협적이기에 건강한 한계를 지울 필요가 있다는 신호를 줄 수 있다.
마찬가지로 업무로드에 대해 상사에게 이야기하는 것도 고려한다. 현재 시간을 어떻게 보내고 있는지를 설명하고 자신의 우선순위와 상사의 우선순위가 일치하는지 질문한다. 그리고 상사가 무엇을 원하는지, 본인이 무엇을 원하는지 허심탄회하게 이야기 한다.
"제가 어떻게 변화하기를 원하나요?"
"만일 프로젝트 A에서 저를 빼주시면 팀의 전략적 우선순위와 궁극적으로 도달하고자 하는 목표에 집중할 시간을 더 확보할 수 있게 됩니다"
많은 사람들이 상사가 싫어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 침묵하며 혼자 고민하는 일이 많다. 하지만 상사는 오히려 당신이 빅 픽쳐를 가지고 무언가를 주도적으로 시작하는 것을 보며 환영할 것이다. 가장 중요한 점은 통제할 수 있는 것에 초점을 맞춘다. 사무실 밖에서의 시간은 자신을 돌보는데 사용하고, 걷기나 글쓰기와 같은 루틴과 의식을 만들어 지킨다.
이처럼 번아웃은 똑같은 이유로 발생하지 않기에 어떤 종류의 번아웃을 겪고 있는지를 구분하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이 세가지 타입은 항상 독립적으로 발생하는 것이 아니라 2,3 가지가 혼합적으로 나타날 가능성이 높다. 하지만 무엇이 원인인지를 안다면 문제를 훨씬 더 수월하게 해결할 수 있을 것이다.
참고문헌: Wilding, M., 3 Types of Burnout, and how to overcome them, HBR, August 22, 20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