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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명희 Jan 15. 2024

삶을 음미한다는 것

Savouring the life


몇해 전에 스페인의 한 코치님과 나누었던 대화 내용 중 삶의 한복판에 서 있을 때마다 아지랑이처럼 피어오르는 문장 하나가 있습니다. 


Savouring the life


그 문장은 저의 마음 깊숙히 들어와 내가 삶을 돌아보게 하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생각해보니 살아가면서 기쁨이라는 감정은 그리 자주 오지 않았습니다. 중립적이거나 부정적인 감정을 느끼게 되는 날들이 훨씬 많기도 하고, 삶 자체가 up and down의 연속이다보니 행복감에 벅차오를 때 앞으로 다가올 불행의 순간을 걱정하고, 행복하지 않은 순간에는 애써 상황에서 벗어나려는 노력을 하며 삶을 제대로 느껴보지 못했던 것을 깨닫게 되었죠. 


그렇게 삶을 느끼기 위한 저의 노력은 매 순간의 감정에 집중하는 것으로 시작되었습니다.


그런데 감정을 충분히 느끼며 살아가는 것 만으로 삶이 드라마틱하게 변하지는 않았습니다. 우리는 삶이라는 긴 여정을 걸어가고 있기에 현재를 느끼며 즉흥적으로 반응하거나 행동할 필요도 있지만, 장기적인 비전을 가지고 그날의 즐거움을 뒤로 미루거나 심지어 포기해야 할 때도 있기에 감정만으로 삶을 느낀다고 하기에는 뭔가 부족했습니다. 


그렇게 삶을 음미한다는게 무엇인지, 왜 필요한지에 대한  고민은 다시 시작되었죠.


오늘은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굳이 쓴 약을 입에 물고 천천히 음미할 필요가 있을까?'

'쓴 맛은 빨리 목에 넘기고 몸에 효과가 날 때까지 천천히 기다리고, 달콤한 맛은 입 안에서 천천히 음미하며 내 몸이 단맛에 취하지 않도록 하는 편이 더 좋지 않을까?'


이런 저런 생각을 해보다가 삶을 충분히 음미하는 것과 감정을 충분히 느끼는 것은 다르다는 것을 깨달았네요이렇게 간단한 것을 깨닫는데 그렇게 많은 시간이 소요된 것은 아마도 삶의 상당부분이 감정의 지배를 받기 때문인지 모르겠습니다.


우리가 감정을 느끼며 살아야 하는 것은 감정 그 자제가 목적이 아니라, 감정은 내가 가는 방향이 맞는지, 현재의 상황이 나에게 유익한지, 위험하지는 않는지를 판단하는데 도움을 주기에 필요한 것 같아요. 감정을 느낌으로서 고통(통증, 불안, 역겨움 등)을 최소화하고 쾌락(행복, 기쁨, 사랑 등)을 극대화하기 위해 무엇을 해야하는지 판단이 가능해지기 때문이에요.


스쳐 지나가는 생각의 자락을 잡고 생각의 생각을 거듭하다보니 결국 삶을 음미한다는 것은 성찰하며 살아가는 것이라는 결론을 내리게 되었네요. 물론 조만간 생각이 바뀔 수도 있고, 새로운 무언가를 깨달을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중요한건 제가 지금 이렇게 생각한다는 것이에요.




"용감한 사람들은 계속해서 철저히 정직하려고 애쓰고, 그러는 한편 필요한 때는 진실을 모두 밝히지 않는 능력도 가져야만 한다. 자유로운 사람이 되려면 우리는 자신에 대해 전적으로 책임을 져야 한다. 동시에 진실로 우리 책임이 아닌 것은 거절할 줄 아는 능력을 소유해야 한다. 정돈이 잘 되고 효율적인, 현명한 삶을 위해서는 그날그날의 즐거움을 뒤로 미루고 미래를 내다볼 줄 알아야 한다. 하지만 기쁘게 살려면 파괴적이지 않은 한도 내에서 현재에 살고 즉흥적으로 행동할 수 있어야 한다." 

- 아직도 가야할 길, p89 中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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