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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물음 Oct 26. 2021

바버샵이요? 이발소는 아는데요…

촌스러워 보여도 전 좋은데요 #01

머리가 길어지면 고민도 깊어진다.


    ‘이번에는 어디서 자르지?’


‘어디서 자를 것인가?’는 미용 최대의 난제다. 어느 곳이 잘 자르는 지도 잘 모르겠고, 그곳의 어떤 디자이너가 잘 자르는지도 모르겠다. 정보를 얻으려고 인터넷으로 이곳저곳 뒤져봐도 그 가게의 광고 글만 잔뜩 나올 뿐, 실제로 잘 자른다는 후기는 보기 어렵다.


    “어떻게 잘라드릴까요?”


막상 미용실을 찾아가도 어떻게 잘라드리냐고 묻는 디자이너의 질문에 딱히 할 말이 없다. 펌을 할 것도 아니고, 염색할 것도 아니라 마땅한 헤어 스타일이 생각나지 않는다. 잠깐 고민하다 “머리 스타일은 유지해주시고, 길이만 깔끔하게 잘라주세요”라고 말한다.


    “마음에 드세요?”


약 20분 후 미용이 다 끝나자 디자이너가 묻는다. 솔직히 마음에 드냐 안 드느냐 할 정도의 드라마틱한 변화는 없다. 그렇지만 일단 마음에 든다고 하고 결제를 한다.




그렇게 미용실에 대해 권태로움이 생길 때쯤, 바버샵이라는 존재를 알게 됐다.


    ‘남성 전문’


이 말이 눈길을 끌었다. 관심이 가서 좀 더 찾아보니 클래식한 남성 헤어 스타일을 전문적으로 하는 곳이었다. ‘이번에는 한 번 바버샵에서 잘라볼까?’하고 동네 바버샵을 찾아봤다. 하지만 사이트에 들어가 가격을 확인하는 순간, 조용히 뒤로 가기 버튼을 누르고 나왔다.


    ‘커트 30,000원’


아무리 멋도 좋다지만 머리 한번 자르는데 3만 원은 사치처럼 느껴졌다. 너무 높은 가격에 잔뜩 높아졌던 기대감은 실망감으로 바뀌었다. 여운이 남아 바버샵에 대해서 구글링을 하고 있었는데, 한 커뮤니티에서 작성된 글에 눈이 갔다.


    ‘님들 바버샵이나 동네 이발소나 같은 거 아심?’


나와 비슷한 고민을 하고 있던 한 필자가, 바버샵의 대안을 찾다가 동네 이발소에 가봤다는 후기였다. 사실 이름만 놓고 보자면 바버샵과 이발소는 같은 말이기는 했는데, 나에게 이발소는 ‘옛날 머리’라는 선입견이 심해 거부감이 들었다. 그런데 필자가 말하길 몇십 년 동안 커트만 전문적으로 하신 분들이라, 커트로만 치면 미용실/바버샵보다 훨씬 잘 자른다고 했다. 게다가 가격은 바버샵의 절반이라 충분히 도전해볼 만한 가치가 있다는 것이었다.




하루 이틀 고민하다 한번 이발소에 도전해보기로 했다. 어차피 미용실은 이제 권태롭고, 바버샵은 너무 비싸니 대안이 없었다. 필자의 말대로 원하는 스타일 사진을 갖고 찾아가 보기로 했다.



어릴 때 아빠랑 목욕탕에서 많이 봤던 삼색 봉이 밝게 빛나고 있었다. 이발소에 들어가니 나이가 지긋하신 사장님이 기분 좋게 맞아 주셨다.


    “사장님 혹시 사진 보여드리면 그거에 맞춰 잘라 주실 수 있을까요…?”

    “예. 한번 볼까요?”


나는 포마드 사진을 보여드리며 사진을 설명했다.


    “아! 어렵지 않네요. 옛날에 이런 머리 많이 잘랐어요”


별거 아니라는 듯이 말하는 사장님의 말에 뭔가 좋은 느낌이 들었다. 그렇게 머리를 자르기 시작했다.


*이발용 마스크를 쓰고 이발했습니다*


먼저 긴 머리카락들을 바리깡으로 깎고 나머지 머리카락들은 일일이 가위로 쳐내셨다. 생각보다 시간이 꽤 걸렸다. ‘이 정도면 끝날 시간인데?’ 해서 눈을 떠보면 아직 자르고 계셨고, 다시 눈을 떠도 또 자르고 계셨다. 그렇게 40분 정도 지나자 이발이 끝났다.


    “면도 한번 해볼래요?”


사장님의 권유에 한 번 해보겠다고 했다. 흰 거품을 바르고 따뜻한 수건을 덮었다. 1분쯤 지나고 면도를 시작했는데 서걱서걱하는 느낌이 참 좋았다.


면도까지 끝나고 머리를 감으러 갔는데, 예전에 TV에서 봤던 것처럼 머리를 숙여서 감는 시스템이었다. 사장님은 정성스럽게 머리를 감겨주시고 드라이까지 해주셨다.



결과는 아주 만족스러웠다. 바버샵처럼 과하게 스타일이 잡혀있는 것은 아니지만, 같은 모양에 데일리 한 스타일이었다. 머리를 자른 후 사람들을 만나도 훨씬 잘 어울린다고 했다.




그 이후 계속 이발소에만 간다.


한번 이발소에 맛을 들이니 다시 미용실에 갈 수가 없었다. 정성스럽게 깎아주시는 사장님, 서걱서걱하는 면도 느낌, 만족스러운 스타일, 저렴한 가격… 완벽했다.


덕분에 이제 머리를 자를 때 ‘어디서 자르지?’라는 고민도 사라졌다. 고민할 필요 없이 사진을 들고 이발소에 가면 됐다.


흔히 멋에는 트렌디함도 있지만 클래식함도 있다고 한다. 남 보기에는 이발관에서 머리 자르는 것이 촌스러울지 모르지만, 영화 <인턴>의 대사처럼 “올드한 게 아니라 클래식”한 멋이 아닐까 생각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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